그래픽=뉴스웨이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40% 수준의 점유율 확보'를 공식 목표로 내걸었다. 현재 HBM 시장을 주도하는 SK하이닉스의 과반 체제를 흔들겠다는 의미지만 이번 경쟁은 기존 시장을 빼앗는 제로섬 게임과는 다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HBM 수요 기반 자체가 커지는 가운데 양사가 확대되는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고객과 공급 물량을 확보하느냐가 새로운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31일 반도체 업계와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8%로 선두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21%로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의 전체 D램 시장 점유율이 38%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HBM 분야에서는 메모리 시장 내 위상에 비해 뒤처진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40% 목표는 D램 시장에서 확보한 경쟁력을 HBM에서도 재현하겠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전날 열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HBM4를 기점으로 현재 당사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D램 점유율과 동등한 수준으로 HBM 점유율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삼성전자의 목표는 SK하이닉스가 확보한 기존 물량을 단순히 가져오겠다는 전략과는 다르다. AI 가속기의 연산 성능이 높아질수록 HBM 탑재량도 증가하고 있고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신규 수요가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들은 향후 수년간 HBM 시장이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승부처로 삼은 제품은 차세대 규격인 HBM4다. 앞선 HBM3E 경쟁에서는 고객사 인증과 공급 일정에서 다소 뒤처지며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지만 다음 시장에서는 선제 대응을 통해 판도 변화를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4 상용 제품 출하와 고객사 검증을 진행하는 한편 후속 제품 개발에도 속도를 내며 차세대 시장 선점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세우는 경쟁력은 메모리부터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까지 연결되는 종합 반도체 역량이다. HBM4부터는 기존 적층 기술뿐 아니라 고객 요구에 맞춘 베이스 다이(Base Die) 설계와 제조 능력이 중요해지는 만큼 삼성전자는 수직계열화를 활용해 AI 반도체 공급망 내 입지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글로벌 5대 데이터센터 업체를 포함한 주요 고객사와 메모리 공급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장기공급계약(LTA) 확대를 통해 안정적인 물량 기반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선두 지위는 여전히 견고하다. SK하이닉스는 HBM3와 HBM3E 시장에서 엔비디아 등 주요 AI 가속기 업체와 협력하며 시장을 선점했고 양산 경험과 높은 수율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했다.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은 58%라는 현재 점유율 자체보다 시장 검증을 마친 공급 능력에 있다. HBM은 범용 메모리와 달리 고객사의 AI 가속기 설계에 맞춰 개발되는 맞춤형 제품이다. 초기 인증을 통과하고 대량 생산 과정에서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하는 능력이 향후 공급 물량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결국 차세대 HBM 경쟁의 승부처는 누가 먼저 제품을 내놓느냐가 아니라 확대되는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고 장기 공급 관계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삼성전자는 HBM4와 턴키 경쟁력을 앞세워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SK하이닉스는 고객 기반과 양산 경쟁력을 바탕으로 선두 유지에 나선다. AI 메모리 시장이 커질수록 두 회사의 경쟁은 제한된 시장을 나누는 싸움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영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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