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히토 슈타이얼, 이미지는 어디에서 일하는가①에 이어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지난 글에서 히토 슈타이얼의 작업을 이미지가 어디서 오고, 어떻게 이동하며,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앞에 도착하는지 묻는 작업으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그 질문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옮겨보려 한다. 이미지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지나치게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요즘은 거의 모든 것이 기록된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CCTV에 남고, 검색하지 않아도 취향은 추적되며, 얼굴과 몸의 움직임도 데이터가 된다. 그래서 지금의 문제는 단순히 ‘무엇을 볼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보이게 되는가’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히토 슈타이얼의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은 이 질문을 아주 이상하고도 유쾌한 방식으로 다룬다. 제목 그대로 보이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교육 영상처럼 시작하지만, 그 교육은 처음부터 조금 수상하다. 작가는 사막의 해상도 측정 표적 앞에 서고, 얼굴과 몸을 가리거나, 초록색 화면 속으로 사라지는 방법을 시도한다. 영상은 마치 친절한 튜토리얼처럼 말하지만, 그 안에서 다루는 것은 디지털 감시와 위성 이미지, 해상도, 데이터화된 몸의 문제다. 보이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는 농담은 결국 너무 많이 보이는 시대에 대한 농담이 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감시 사회를 무겁고 진지하게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슈타이얼은 공포를 직접 설명하기보다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허술해 보이는 그래픽, 교육 영상의 말투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 가벼움 때문에 오히려 더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가 보이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점점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해상도보다 작아지기, 화면 속 배경과 구분되지 않기, 이미지에서 지워지기. 농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지금의 이미지 환경에 대한 꽤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 있다. 보이는 것이 곧 존재의 증명이 되는 시대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일일까, 아니면 살아남는 방식일까.
이 질문은 ‘The City of Broken Windows’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업은 인공지능 산업과 감시 기술, 그리고 ‘깨진 창문’이라는 소리와 이미지를 둘러싼 문제를 다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모든 것을 더 정확하게 보거나 듣게 만든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어떤 소리를 인식하고, 어떤 장면을 위험한 것으로 분류하며, 어떤 공간을 관리 대상으로 삼을지 결정하는 과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뒤에는 이미 정해진 기준과 학습된 데이터, 그리고 특정한 사회적 상상이 들어 있다. 깨진 창문을 알아보는 기술은 단순한 인식 기술이 아니라, 어떤 도시를 위험한 곳으로 보고 어떤 사람들을 감시의 대상으로 만들 것인지와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슈타이얼의 작업에서 ‘보는 일’은 순수한 감상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분류하는 일이고, 분류한다는 것은 권한을 갖는 일과도 가깝다. 이미지가 많아진 시대에 우리는 더 많이 보는 것 같지만, 동시에 더 많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무엇이 중요하게 보이고 무엇이 배경처럼 밀려나는지는 늘 다시 물어야 하는 문제가 된다.
생성형 AI 이미지 역시 여기서 멀지 않다. AI가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동시에 이미지를 설명하고, 분류하고, 학습하고, 다시 예측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지가 그럴듯한지를 확인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보게 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보이게 만드는지를 살피는 일이 함께 필요하다.
‘How Not to Be Seen’은 보이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척하지만, 사실은 너무 많이 보이는 세계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 작품이 아직도 오래된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그 이후로 더 많이 보이고 더 많이 기록되는 쪽으로 이동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음 글에서는 이 질문을 미술관 안으로 옮겨가 보려 한다. 이미지는 화면 속에서만 일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술관, 자본, 전쟁, 후원 구조 안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히토 슈타이얼이 미술관을 결코 안전한 장소로만 보지 않았던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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