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하고 낯선, 마치 다른 차원 같지만, 실은 수년 전 모두가 느껴본 적 있는 세계. 박세영 감독이 영화 <지느러미>를 통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려낸 팬데믹의 감각과 정서들.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 사회.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선은 사라졌지만, 오염된 바다와 육지 사이 4,000km에 이르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게다가 유전적 돌연변이로 지느러미가 생긴 ‘오메가’와 인간 사이를 구분하는 사회적 선은 장벽보다도 더 거대하고 뚜렷하다. 경계와 의심만 남은 음울하고 황폐한 세계에 대해 박세영 감독은 이는 이미 우리가 겪어본 적이 있는, 그리 낯설지 않은 감각이라 말한다. 감독은 의심과 불안의 정서가 팽배하던 코로나19 시기의 감각에 자신만의 독창적 상상력을 더해 SF영화 <지느러미>를 완성했다. 기묘하고 낯선, 마치 다른 차원 같지만, 실은 수년 전 모두가 느껴본 적 있는 세계가 그려진 이 영화를 7월 22일부터 극장에서 감각할 수 있다.
3년 전, 마리끌레르에서 취향을 밝히는 기획 기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영화 작업을 위해 베를린에 머물렀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작품이 <지느러미>였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다. 어쩌다가 베를린에서 후반 작업을 하게 된 건가?
공동 제작자 필립 보베르의 제안이었다(영화 <슬픔의 삼각형>과 <더 스퀘어> 등을 만들어온 세계적인 제작자 필립 보베르가 박세영 감독의 <지느러미>에 참여했다). 그의 베를린 사무실에 편집과 상영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서 편집 작업을 하고, 매주 두세 번씩 시사를 진행하며 영화를 완성해나갔다. 거의 매일 편집실에서 밤 10시까지 작업하고, 마치면 필립을 비롯해 그곳의 친구들과 새벽 2~3시까지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이 영화에 대해 “오직 감각에만 의존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지느러미>는 감각에서 출발한 영화라 봐도 될까?
아니다. 이 영화는 예산이 먼저였다. 나는 영화를 위해 돈을 번다. 뒤집어 말하자면 돈이 생기면 영화를 만든다. 이 맥락에서 일정 금액이 생겼을 때, 이 예산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지 고민했고, 당시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하나는 완성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단편영화였고, 다른 하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SF 장르인데다 장편에 간단한 줄거리 정도만 나와 있는, 말하자면 야심만 거창한 영화였다. 비효율적이지만 이번엔 후자를 택해보자 싶었고, 그렇게 완성한 영화가 <지느러미>다.
유전적 돌연변이로 지느러미가 생긴 오메가와 그들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인간이 공존하는 근미래 세계라는 영화의 설정은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가?
할머니가 코로나19로 돌아가셨는데, 당시 정부 방침상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들은 모두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바로 화장을 해야 했다.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전통적 의식을 치를 기회가 없던 우리는 나름대로 대안적 장례 행사를 했다. 마스크를 쓰고, 할머니가 좋아하던 장소들을 돌아다닌 거다. 그럼에도 충분한 애도의 시간조차 주지 않고, 뒤처리하듯이 진행되는 과정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와 더불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불안해하던 코로나 19 시절의 정서를 상기하게 됐고, 이 상황과 감각을 영화에 담아내자 싶었다. 통일되어 남북을 가르던 휴전선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그 선은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걸로 바뀌었고, 그래서 차별이 변두리(육지 밖)로 몰려난 사람들로 전이됐다는 설정을 잡고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코로나19 당시 한국의 규칙이나 정서들을 조금씩 비틀어 넣으려고 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마스크 안 쓰면 범죄자 취급하고, 기침만 살짝 해도 경계하고, 가벼운 접촉에도 나도 감염된 건 아닐까 의심하지 않았나.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생기는 두려움의 정서가 영화에 담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사를 듣고 나니,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오메가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오메가라는 건 사실 실체가 없다. 신체의 일부가 조금 다르면 오메가로 분류되는 것일 뿐. 어릴 때 내 새끼발가락이 약간 휘어서 자랐는데, 의사가 교정하거나 아니면 나중에는 잘라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불편하지만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살았는데, 학교에 가니까 그게 놀림거리가 되더라. 그러니까 못생기고 이상하면 멸시의 대상이 되는 거다. 그걸 오메가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만 오메가의 신체가 유전적 영향인지, 방사능 물질에 감염된 것이 원인인지는 모호하게 설정하려고 했다.
전반적으로 기묘하고 음습한 기운이 꽉 차 있다. 특히 주요 인물들이 마주치는, 실내 낚시터가 그 기운을 잘 드러내는 공간이라고 느꼈다.
기본적으로 음의 기운이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하에 창문이 없고 물이 고여 있고, 그래서 곰팡이가 많이 핀 장소를 일부러 찾았다. ‘고여 있는 것’이 포인트다. 왜냐하면 낚시터가 이 영화에서 제일 핵심적인 공간인데, 기억과 미래와 꿈과 희망이 물과 같이 고여 있는 것이 그저 비극만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영화 안에서 무척 소중한 공간으로 작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때때로 장면 전체를 감싸는, 색색의 빛 또한 인상 깊은 부분이다. 다만 그 빛이 매끈하고, 밝고, 아름답게 그려지진 않는다. 이 부분에는 어떤 의도를 담은 건가?
영화가 못생겨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못생겼다는 건 완벽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은 질감을 말한다. 그 이유는 초반에 말한 예산에서 출발한다.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스태프들에게 값싼 커피, 저렴한 도시락을 사주고, 거친 환경에서 일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또 조명 장비를 많이 빌릴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빛이 없어서 노이즈가 많은 이미지로 찍힐 수밖에 없는데, 이런 환경에서 찍고 나서 노이즈를 밀어버리고 매끈한 장면을 만드는 게 모순이라 느꼈다. 그래서 우리의 환경과 태도, 기술적 결함을 다 품고 가자, 그걸 영화의 아이덴티티로 삼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서사 또한 그에 맞춰 후가공을 했다.
각본과 연출 그리고 촬영까지 모두 직접 담당했다. 그 또한 예산으로 인한 선택이었나?
그 부분은 예산과 관련 없다. 영화를 찍는 가장 큰 이유가 내가 즐겁기 위해서인데, 영화 안에서 나의 역할이 많을수록 즐겁기 때문에 그 모든 역할을 일임하게 됐다.
지금 나의 지향점은 죽을 때까지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행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에 깊이 몰두하는 중이다.
각본가로서, 감독으로서, 촬영감독으로서 각 역할의 고민이 상충할 때도 있었을 것 같다.
서로서로 눈치를 보면서 해나갔다. 촬영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집에서 편집할 때의 나를 상상하면서, 그때의 내가 혐오하지 않는 촬영감독이 되자고 다짐한다. 그래서 소스를 최대한 많이 따려고 한다. 또 각본을 쓸 때는 현장에서 사람들이 최대한 재미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하자, 연출할 때는 너무 도취되어 지나치게 예산을 넘기지 말자, 이런 식으로 각 역할의 주의점을 상기하면서 영화를 만든다.
그중 가장 즐겁게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편집이 제일 재미있다. 집에서 조용히 고양이들이랑 같이 머물면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반 작업에만 3년이 걸렸다고 들었다. 편집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
3년이 걸린 가장 큰 이유는 자기 확신 부족이었던 것 같다. 이제 완성한 것 같다고 판단해도, 다른 사람들이 부족하지 않으냐고 하면 그 말에 휘둘려서 다시 작업했다. 그래서 제일 고심한 것이 ‘나는 왜 이렇게 확신이 없는가?’ 하는 점이었다. 다음 작품은 누군가가 조언해도 ‘네가 뭘 아는데?’ 하는 정신으로 나가자고 다짐했지만, 여전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의외의 답변이다. 박세영 감독은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장에서도 스태프나 배우들의 의견을 더해가며 영화를 만들고, 후반 작업을 할 때도 주변의 조언에 쉽게 흔들리는 편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은 전혀 없다. 오히려 자기혐오를 가장 큰 동력으로 삼아 영화를 만든다.
예산이라는 제한적 조건에서 출발한 영화를 완성했다. 이후에 보다 풍요로운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면, 그때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예산이 충분한 영화는 세상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지느러미>도 충분했다. 전작도 충분했고, 앞으로 만들 다음 영화도 충분할 거다. 말하자면, 시작한 금액이 있으면 그 안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유용하게 쓰는 것이 감독의 역할 중 하나라 생각한다. 나는 10만원짜리 영화도 하고 싶고, 1백억원 규모의 영화도 하고 싶다. 최종 목적이 더 큰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적으로 가장 큰 목표이자 욕심은 서른이 되기 전에 내가 만든 영화가 칸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출품한 작품으로도 결국 칸에 가지 못했고, 내년에 서른이 된다. 거의 유일한 욕심마저 내려놓게 되었으니, 그런 면에선 더 여유로워진 것 같다.
일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로 차이밍량 감독의 <거긴 지금 몇시니?>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이유로 “관객에게 팝콘을 먹이듯 모든 걸 설명하려는 강박을 가지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두는 것. 그 태도를 이 영화에서 발견한다”라는 설명을 더했다. 이 점이 박세영 감독의 영화적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차이밍량 감독님도 지금은 완전히 다른 작품을 하시기도 하니까. 지금 나의 지향점은 죽을 때까지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행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에 깊이 몰두하는 중이다.
어떤 환경이면 죽을 때까지 영화를 할 수 있을까?
전 영화가 다음 영화의 재정적으로든 인프라적으로든 버팀목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유운성 평론가가 “영화를 찍을 때 이걸로 수익을 낼 생각으로 만들어야 된다. 그리고 그 수익으로 다음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해라”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되새기면서 영화를 찍고 있다.
‘서른 전에 칸영화제 가기’라는 목표가 사라진 지금, 새로운 목표를 세워본다면? 지금의 가장 가까운 미래에 이루고 싶은 바람은 무엇인가?
고양이들한테 맛있는 거 많이 해먹이기. 이건 매일의 목표고. 가장 가까운 미래의 바람은 <지느러미>가 잘 개봉해서 더 멀리 뻗어나가면 좋겠다. 이 영화에 참여한 5백여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주었는데, 그것이 보다 많은 곳에서 빛을 발하면 좋을 것 같다. <지느러미>에 함께해준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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