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류석만 기자] "좋은 값을 준다며 소나무를 사겠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선조들이 지켜온 나무라며 끝내 팔지 않았습니다. 그 소나무가 재선충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쓰러졌습니다.“
충남 청양군 화성면 화강리. 수백 년 동안 마을을 감싸며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 그늘을 내주던 노송들이 사라졌다. ▶본보 7월 30일 사회면 참고
주민들이 평생 바라보며 살아온 푸른 솔숲은 집단 고사와 대규모 벌채로 흔적만 남았고, 익숙했던 고향의 풍경도 함께 사라졌다.
올해 청양군에서 확인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목은 모두 3만 1717그루. 군은 약 37억 원을 투입해 피해목 제거와 예방나무주사, 수종 전환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백 년을 버틴 숲을 되돌리기에는 턱없이 긴 시간이 필요하다.
■ "소나무 때문에 귀촌했는데…그 숲이 모두 사라졌다“
화강리는 청양에서도 아름다운 소나무 숲으로 이름난 마을이었다. 주민들에게 노송은 단순한 조경수나 목재가 아니라 선조들이 물려준 역사이자 삶의 일부였다.
화강리 새마을지도자 안길수(72) 씨는 "외지에서 집을 지으며 소나무를 비싼 값에 사겠다는 제안도 있었지만, 어르신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나무'라며 단 한 그루도 내놓지 않았다"며 "그렇게 지켜온 숲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2010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화강리로 귀촌한 안 씨 역시 마을을 감싸고 있던 울창한 솔숲에 매료돼 이곳을 선택했다.
그러나 16년이 흐른 지금, 그를 불러들였던 숲은 대규모 벌채지로 변했고, 어린 편백 묘목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 "한두 그루에서 시작…행정보다 병이 더 빨랐다“
재선충병은 처음부터 대규모로 번진 것이 아니었다.
산속에서 말라가는 소나무가 한두 그루씩 발견되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초기부터 위험을 알렸다.
안 씨도 약 2년 전부터 군과 도의회 등에 조기 방제를 요청하며 확산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예산 확보와 행정 절차가 진행되는 사이 재선충병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처음에는 산발적이던 피해가 지난해부터 급속히 확산됐고, 결국 화강리 일대는 집단감염 지역으로 변했다.
주민들이 어제까지 푸르렀던 소나무가 누렇게 변하고 붉게 말라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3만 그루 넘게 고사…숲 자체를 바꾸는 '수종 전환’
청양군은 올해 확인된 피해목 3만 1717그루를 제거하기 위해 약 37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
피해가 가장 심한 화강리 일대는 감염목만 골라 제거하는 방식으로는 확산을 막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정 구역의 소나무를 통째로 벌채한 뒤 편백과 낙엽송 등을 심는 수종 전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군은 보령시와 맞닿은 집단감염 지역을 우선 정비하고, 공주시 방향으로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예방나무주사와 차단 방제도 병행할 계획이다.
또 화강리를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해 일반 방제 기간에 제한받지 않고 연중 대응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 하루 만에 베어낸 숲…다시 숲이 되기까지는 수십 년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를 베어내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심어진 어린 편백이 다시 산을 뒤덮기까지는 한 세대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벌채지에는 손바닥만 한 편백 묘목이 심어졌지만, 과거처럼 울창한 숲을 이루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한다.
안길수 씨는 "예전의 소나무 숲은 다시 볼 수 없겠지만, 지금 심은 편백이라도 잘 자라 후손들에게 새로운 숲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나무는 잃었지만 또 다른 숲이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양군은 올가을부터 고사목 제거와 파쇄, 예방나무주사 등 집중 방제를 재개하고, 조림과 생육 관리까지 연계해 재선충병 확산을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번 피해는 단순한 산림 병해충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공동체의 기억을 송두리째 흔든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노송은 하루 만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다시 숲으로 채우는 일은 앞으로 수십 년, 어쩌면 한 세대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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