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그룹의 사이판 호텔 사업이 잇따른 대내외 악재로 차질을 빚고 있다. 핵심 고객층이던 중국인 관광객이 코로나19와 미·중 갈등 여파로 급감한 데 이어 국내에서는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 이후 사고 항공기와 같은 보잉 737-800 기종이 사이판 노선에 투입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행 심리가 위축됐다. 여기에 올해 4월 슈퍼태풍 '신라쿠'가 현지를 강타해 켄싱턴호텔 등 주요 리조트가 대규모 시설 피해를 입으면서 복구 비용과 영업 부담까지 가중되고 있다.
사이판은 이랜드그룹 호텔 사업의 핵심 해외 거점으로 꼽힌다. 이랜드는 지난 2012년 피아이시(PIC) 사이판과 코럴오션 리조트를 인수한 데 이어 팜스리조트를 리모델링해 2016년 켄싱턴호텔 사이판을 개장하며 글로벌 호텔 사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회사 연혁에서도 사이판 3개 호텔·리조트 인수를 글로벌 호텔 사업의 발판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랜드의 사이판 호텔 사업은 개별 호텔을 각각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복수의 운영법인을 거느리는 구조다. 마리아나 이랜드 코퍼레이션(Mariana E-Land Corporation)을 비롯해 마이크로네시아 리조트(Micronesia Resort, Inc.), 인터퍼시픽 리조트 사이판(InterPacific Resorts (Saipan) Corp.), 수와소 코퍼레이션(Suwaso Corporation) 등 총 4개의 사이판 현지 법인이 연결 종속회사로 등재돼 있다.
이 가운데 마리아나 이랜드 코퍼레이션은 사이판 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투자·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다. 마이크로네시아 리조트는 켄싱턴호텔 사이판을, 인터퍼시픽 리조트 사이판은 피아이시(PIC) 사이판을, 수와소 코퍼레이션은 코럴오션 리조트를 각각 운영한다. 사실상 주요 숙박·레저시설을 하나의 사업권역으로 묶어 운영하는 형태다.
사업 초기만 해도 이랜드의 사이판 전략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사이판은 한국과 중국 관광객이 꾸준히 찾는 대표적인 휴양지였고, 이랜드는 고급 호텔과 올인클루시브 리조트, 가족형 워터파크, 골프 리조트를 연계한 차별화 전략을 앞세워 현지 최대 규모의 호텔 사업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사이판을 둘러싼 관광 환경은 급격히 악화됐다. 코로나19로 국제선 운항과 해외여행이 중단된 데 이어 미·중 갈등 장기화와 중국발 해외여행 수요의 회복 지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미국령인 사이판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2022년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와 중국의 대만해협 군사훈련 등으로 양국 간 긴장이 한층 고조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더욱 뚜렷해졌다. 북마리아나 관광청에 따르면 사이판을 포함한 북마리아나제도의 중국인 관광객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8만5526명에서 2020년 1만8550명으로 급감했다. 2021년에는 12명까지 줄었고 2022년 271명, 2023년에도 7178명에 그치면서 직격타를 맞았다.
무안참사 여파에 대규모 태풍 피해, 재무 검증 논란까지…흔들리는 사이판 거점 전략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수요 기반이 약화된 가운데 한국과 사이판을 연결하는 항공 접근성도 악화됐다. 한때 사이판 노선은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이 사실상 양분하는 구조였지만 2024년 초 티웨이항공이 유럽 노선 확대를 추진하면서 사이판 운항을 대거 축소했다.
항공편 선택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는 사이판 관광시장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했다. 사고 항공기와 같은 기종인 보잉 737-800이 제주항공의 인천~사이판 노선에도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여행객들의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이판 노선을 운항하던 제주항공의 예약 취소와 신규 예약 감소가 이어졌다. 현지 호텔업계도 관광객 감소에 따른 수요 위축을 체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랜드는 관광 수요 위축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고객 확보 전략도 추진했다. 대표적으로 켄싱턴호텔 사이판은 방학 기간 가족 단위 고객을 겨냥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앞세워 한국인 관광객 유치에 집중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약 한 달간 사이판에 머물며 휴양과 영어교육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한 장기 체류 상품이다. 자녀는 현지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부모는 휴양이나 원격근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켄싱턴호텔은 이를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이라는 콘셉트와 연계해 교육과 휴양 수요를 동시에 공략했다.
그러나 관광 수요 회복을 위한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대외 여건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슈퍼태풍 '신라쿠(Sinlaku)'가 사이판을 강타하면서 이랜드가 운영하는 현지 호텔과 리조트에 대규모 시설 피해가 발생했다. 켄싱턴호텔 사이판은 유리창이 대거 파손되고 엘리베이터가 침수된 데다 각 층 천장이 무너지는 등 피해를 입었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다른 리조트들의 피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PIC 사이판은 조경시설과 야외 부대시설을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했고, 코럴오션 리조트 역시 골프장 곳곳에 나무가 쓰러지고 일부 골프카트가 파손되는 등 시설물이 크게 훼손됐다. 직원 상당수의 주택까지 태풍 피해를 입으면서 복구 인력을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리조트 사업은 객실뿐 아니라 수영장과 워터파크, 골프장, 조경시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정상적으로 운영돼야 수익을 낼 수 있는 만큼 시설 피해가 장기화하면 복구비용과 매출 감소가 동시에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잇따른 악재로 사업 부담이 커진 가운데 현지에서는 이랜드의 재무 여력과 추가 투자 능력을 둘러싼 우려도 제기됐다. 지난해 9월 북마리아나 상원은 이랜드 계열사인 마리아나 이랜드 코퍼레이션이 추진한 옛 마리아나 리조트 앤 스파 부지 임대안을 부결했다. 당시 상원 자원·경제개발·노동위원회(RED&W)는 회사가 임대 심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요구받은 감사·미감사 재무제표를 제출하지 않은 채 은행 잔고증명과 투자금액 자료만으로 사업 수행 능력을 입증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상원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회사의 재무 상태와 투자 여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임대안을 승인하지 않았다.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회사 안팎에서는 사이판 중심의 해외 호텔 사업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는 오래전부터 사이판을 해외 호텔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당시 전략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내부 의견도 적지 않다"며 "해외 리조트 사업의 무게중심을 사이판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관광 수요 감소와 복구비용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면 단기간에 실적을 정상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 관광객 감소와 항공 수요 위축으로 실적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태풍으로 인한 대규모 시설 복구 비용과 영업 차질까지 겹치면서 이랜드의 사이판 사업 부담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며 "호텔·리조트업은 시설 정상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객실 판매와 부대시설 운영에도 제약이 불가피한 만큼 단기적인 수익성 악화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랜드 관계자는 "사이판 관광 수요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해 인천과 부산에서 출발하는 전세기를 운영하는 등 항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또한 한국과 북마리아나제도 간 트래블버블과 현지 관광청의 관광 재개 투자계획(TRIP)에 참여해 관광객 유치와 현지 관광시장 정상화를 위한 노력에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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