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30] 룩소르, 대지에 새긴 문명의 미학⑫ 룩소르 왕가의 계곡의 마지막 무덤: 람세스 5, 6세의 공동 무덤(KV9)을 찾아서①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지난 글에서 우리는 람세스 5세와 6세 공동 무덤의 입구부터 중간까지 걸어가며, 벽면에 새겨진 정교한 신들과 수호의 뱀, 그리고 파라오가 향을 피우는 다양한 부조들을 살펴보았다. 그 무덤 길만으로도 고대 이집트인들의 집착에 가까운 예술적 완성도에 흥분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발걸음은 이 무덤이 숨겨둔 진짜 보물, 즉 우주의 비밀과 영생의 클라이맥스가 기다리고 있는 무덤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
중간 통로를 지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바깥 사막의 미지근한 공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땅 깊은 곳 특유의 서늘함과 아득한 정적이 느껴진다. 손에 쥔 카메라를 다시 고쳐 쥐며 고요한 지하 공간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수천 년 전 고대의 예술가들과 석공들 역시 이 서늘한 어둠 속에서 기름등잔 불빛에 의지해 땀을 흘렸을 것이다. 람세스 5세의 안식처로 시작되어 람세스 6세의 거대한 야망으로 확장된 이 지하 공간은, 깊어질수록 건축적 웅장함과 색감의 아름다움을 더해가며 관람객의 숨을 죽이게 만든다.
많은 이들이 이집트 무덤을 떠올릴 때 단순히 ‘죽은 자를 묻어두는 어둡고 차가운 굴’을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KV9 무덤의 하반부는 그러한 편견을 산산이 깨뜨린다. 이곳은 죽음의 정적이 감도는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태양신 라와 파라오의 영혼이 밤의 시련을 이겨내고 매일 아침 새롭게 부활하는 우주 공간이다. 벽면과 천장을 가득 채운 화려한 채색은 수천 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바로 최근에 그려진 듯 생생하며, 이제 우리는 우주의 은하수 같은 공간을 걸어 들어가게 된다.
더 깊은 방으로 들어서기 직전,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나도 모르게 “억!”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아마 누구라도 나처럼 탄성을 지를 것이다.
발아래의 목재 다리와 양옆의 벽화만 바라보며 걷던 시선이 천장 향했을 때, 무덤 천장은 온통 활짝 펼쳐진 독수리 날개들의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날개 사이사이로는 람세스 6세의 이름이 정교하게 새겨진 황금빛 ‘카르투슈(Cartouche)’가 보석처럼 박혀 있다. 검은색,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으로 어우러진 이 천장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이집트 신화에서 날개 독수리는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아래에 있는 자를 신성하게 보호하는 상징이다. 즉, 석관이 있는 매장실에 들어가기 전 천장 전체가 파라오의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거대한 하늘의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천장을 올려다보느라 고개가 뻐근해지는 줄도 몰랐다. 고대 예술가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목이 빠져라 천장을 바라보며 이 세밀한 깃털 하나하나를 그려 넣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깃털의 대칭과 색채의 정교함에는 조금의 오차도 없다. 이 모습을 상상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타나 성당에 그린 ‘천지창조’ 작품이 떠올랐다. 수년간 목빠져라 천장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려 평생 목디스크로 고생했다는 그의 고난함이 떠오른다. 고대 이집트의 예술가들 역시 미켈란젤로처럼 먼지가 눈에 들어가고 목과 팔이 마비될 듯 아팠을 터인데, 미켈란젤로의 이 고단함은 후대에 위대한 미담으로 전해졌지만, 고대 이집트의 예술가들의 고단함은 아는 이들이 아주 적다. 심지어 수천 년을 앞선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드디어 KV9 무덤 예술의 정점이자 세계 미술사에서도 손꼽히는 명작, 바로 천장의 ‘누트 여신(Nut)의 낮과 밤의 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람세스 5, 6세의 무덤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의 장면이다.
짙은 검은색 바탕으로 이루어진 밤하늘 위로, 황금빛 피부를 가진 하늘의 여신 ‘누트’가 웅크린 채 거대한 우주 전체를 감싸 안고 있다. 이 벽화가 담고 있는 신화적 상상력은 가히 압도적이다. 저녁이 되면 여신 누트는 서쪽 지평선에서 붉은 태양 원반을 입으로 삼킨다. 태양은 밤의 12시간 동안 여신의 황금빛 몸 내부(지하 세계)를 통과하며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정화된다. 그리고 마침내 새 아침이 오면, 여신은 동쪽 지평선에서 자신의 다리 사이로 붉은 태양을 다시 낳아 세상을 밝힌다.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황금색으로 빛나는 누트 여신의 몸체, 그 주변을 흐르는 별 기호들과 신성한 태양 선박들의 배치는 현대의 감각적인 일러스트나 그래픽 아트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여신의 몸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거룩한 순환일 뿐이라는 이집트인들의 철학과 믿음이 이토록 아름다운 시각적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어쩌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기보다 매일 밤하늘을 보며 우주의 품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여행을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여신의 황금빛 몸체 위로 또렷하게 남은 먹 선과 붉은 기호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품었던 부활에 대한 믿음이 단순한 신앙을 넘어 완벽한 예술적 이야기로 승화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누트 여신의 우주가 펼쳐진 천장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무덤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4기둥 방(Pillared Hall)’에 도달한다. 사방에 우뚝 선 네 개의 사각형 거대한 기둥들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고, 그 사이로 매장실로 내려가는 경사로가 길게 뻗어 있다.
기둥의 각 면마다 ‘오시리스(Osiris)’, ‘프타(Ptah)’, ‘하토르(Hathor)’ 등 왕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주요 신들의 모습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경사로 정면 멀리 보이는 벽면에는 오시리스 신이 좌우 대칭으로 의자에 앉아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벽화들이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우뚝 서 있다. 천장의 짙은 블루 우주화와 기둥의 황금빛 부조들, 그리고 수평으로 깊어지는 공간감이 어우러져 완벽한 3차원적 예술 공간을 완성한다. 이곳에 서면 람세스 6세가 왜 그토록 조카의 무덤을 확장하고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려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무덤의 입구에서는 단지 긴 굴처럼 느껴졌던 공간이 이 기둥 방에 이르러 비로소 매장실의 접견실 같은 위엄을 갖추게 된다.
정면의 오시리스 신상을 바라보며 경사로를 내려가는 기분은 마치 죽은 이의 영혼이 되어 마지막 심판과 부활의 자리로 나아가는 듯한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사방에서 시선을 던지는 신들의 부조 사이로 거닐다 보면, 스스로가 고대 신화 속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드는 것은 나뿐일까?
기둥 방을 지나며 기둥 표면에 새겨진 부조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특별히 어느 벽면 위로 살짝 솟아오른 양각 부조에는 화려한 깃털 왕관을 쓴 신이 두 손을 높이 들어 신성한 항아리에서 정화의 물을 붓는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은은한 조명을 받은 노란 표면 위에서 부조의 윤곽선들은 부드러운 음영을 만들어 낸다. 신의 손가락 끝 마디마디의 고운 마감, 팔찌와 목걸이의 섬세한 기하학적 패턴, 그리고 머리 위 왕관에 새겨진 정교한 장식은 당시 왕실 예술가들이 가졌던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집트 부조 예술의 참맛은 이처럼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미세한 입체감에 있다. 평면적인 그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돌을 미세하게 깎아내어 인체의 형태와 옷자락의 굴곡을 살려냈다. 수천 년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이 부조들이 현대의 인공조명을 받아 다시금 입체적인 그림이 발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고대인들의 관찰력과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기둥 측면에는 또 다른 인상적인 부조가 새겨져 있다. 꼿꼿하게 서 있는 황금빛 신의 머리 위로 신성한 새가 내려앉아 있고, 그 바로 옆 세로 칸에는 거대한 ‘우라에우스(Uraeus)’ 뱀 한 마리가 위에서 아래로 길게 내려온다. 그 주변으로는 풍요와 재생을 상징하는 ‘스카라베’(풍뎅이, Scarab) 문자와 신성한 상형문자들이 세로줄로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부조는 수직선과 곡선의 대치가 주는 조형적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신의 길고 매끄러운 다리 모양은 기둥의 수직 축과 완벽한 평행을 이루고, 그 옆에서 구불거리는 뱀의 곡선으로 역동적인 리듬감을 표현한다. 황토색과 노란색 위주의 따뜻한 색채는 기둥 전체에 묵직한 무게감을 더해준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부조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지만, 돌 표면에 단단하게 새겨진 선들의 명확함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남아 파라오의 영혼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고대 예술가들의 굳은 의지가 돌의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벽면 하단 칸막이 구획으로 시선을 옮기면, 지하 세계의 또 다른 이면인 ‘심판과 처벌’의 장면이 나타난다.
사각형 틀 안에 무릎을 꿇고 양손이 뒤로 단단히 포박당한 검은 형상의 죄인이 몸부림치고 있는 듯하다. 그 양옆으로는 매 머리를 한 ‘호루스’ 계열의 신과 자칼 머리를 한 ‘아누비스’ 신이 엄숙한 자세로 이 심판을 인도하고 있다. 벽 위에 검은색으로 칠해진 죄인의 몸체와 붉은색, 황토색으로 채색된 신들의 대비는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단 몇 개의 간결한 윤곽선만으로 죄인의 절망적인 움직임과 신들의 단호함을 완벽하게 그려낸 예술가의 붓 터치가 감탄스럽다.
이집트인들에게 사후세계는 무조건적인 낙원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착하고 정직하게 살았던 자에게는 영생의 축복이 내렸지만, ‘마아트(정의)’를 위반하고 악을 행한 자에게는 이처럼 사슬에 묶여 영원히 소멸하는 혹독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죄인의 씁쓸한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 작고 정교한 그림 칸은 마치 어릴적 즐겨보았던 종이 신문 한구석에 실리는 짧은 만화처럼 직관적이다. 글을 모르는 무지한 이가 들어와 보더라도 단번에 뜻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각화한 셈이다. 이처럼 뛰어난 직관성과 명확성이야말로 이집트 미술이 수천 년 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전승될 수 있었던 진정한 비결일지도 모른다.
경사로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 매장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전경을 담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기둥 방의 거대한 기둥들이 사방에서 든든하게 호위하고 있고, 천장의 누트 여신 우주화는 아득한 은하수처럼 머리 위를 지키고 있다. 그 한가운데 배낭을 멘 관람객 한 명이 서서 넋을 잃은 채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실제 인물이 프레임 안에 들어오자 이 무덤 공간이 지닌 진짜 규모가 피부로 느껴진다. 수직으로 높게 솟은 기둥들과 까마득히 이어진 천장, 그리고 벽면을 빼곡히 메운 신들의 행렬 속에서 한 인간은 너무나 자그마하게 보인다. 3,000년 전 파라오의 영생을 위해 조성된 이 거대한 예술 공간에 오늘날 현대의 여행자가 서서 탄성을 지르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지 않은가…
고대 신들의 공간과 현대인. 시대도,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이 지하 무덤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완벽하게 만나는 순간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영원’이란, 어쩌면 이렇게 후대의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들이 남긴 예술에 감동하고 기억해 주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침내 도착한 무덤의 끝, 람세스 6세의 진짜 매장실(Burial Chamber) 내부 모습은 장엄함 모습이 드러난다.
방 한가운데에는 도굴꾼들의 무자비한 망치질에 처참하게 부서졌던 거대한 화강암 외장 석관 틀이 거칠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뒤편 벽면에는 철제를 설치하고 올라간 현대의 고고학 학자들이 벽화의 먼지를 털어내고 복원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화려하게 채색된 벽화들과 부서진 흑갈색 화강암 석관, 그리고 흰 연구복을 입은 학자들의 모습이 한 프레임에 담겨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정지된 과거의 무덤이 아니다. 파괴된 역사의 조각을 되살려내는 현재진행형의 생생한 현장이다.
과거 도굴꾼들은 불과 몇 그램의 황금을 탐내어 수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위대한 화강암 석관을 깨부수고 미라를 파헤쳤다. 인간의 눈앞에 놓인 욕망이 저지른 파괴의 흔적은 참으로 씁쓸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역사다.
그 파괴의 흔적에 굴하지 않고, 수천 개로 조각난 돌멩이를 다시 주워 모아 제자리를 찾아주는 현대 연구원들의 집요한 손길은 또 다른 의미의 감동을 선사한다. 과거의 파괴와 현대의 보존이 격돌하는 이 매장실은 KV9 무덤이 가진 가장 역동적인 역사적 현장이다.
매장실 안쪽에 놓인 복원된 람세스 6세의 인간형(Anthropoid) 화강암 석관 뚜껑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아난다.
수십, 수백 개의 파편으로 잘게 부서졌던 것을 고고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완벽하게 복원해 낸 완성품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오시리스’의 형상을 한 파라오는 가슴 위에 손을 모은 채 눈을 조용히 감고 평온하게 누워 있다. 얼굴과 가슴을 질러가는 수많은 거친 균열 자국들은 이 석관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수난의 역사를 훈장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그 깊은 상처들 속에서도 파라오의 조각된 얼굴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한 평정심과 위엄을 유지하고 있다. 조명을 받아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코의 날카로운 선, 살짝 다문 입술, 그리고 세련되게 처리된 눈매의 곡선은 고대 이집트 화강암 조각 기술이 도달했던 최상급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단단하기로 이름난 검분홍색 화강암을 쇠망치와 정만으로 이렇게 매끄럽게 인체 곡선으로 깎아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모든 부귀영화와 권력을 내려놓고 영원의 잠에 든 파라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예술로 부활시킨 인간 지성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부서졌으나 다시 복원된 이 석관이야말로 참된 ‘부활’의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매장실 한편, 거대한 화강암 석관 부속 조각 옆에서 백의를 입은 이집트 연구원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마스크를 쓴 채 가만히 석관 조각을 주시하는 고고학자의 진지한 눈빛 너머로, 수천 년 전 그려진 황금빛 수호신들의 행렬 벽화가 밝게 빛나고 있다. 난 이 정물화 같은 풍경은 우리가 1부의 첫 장면([사진 001])에서 보았던 석관 복원 현장과 완벽하게 수수께끼가 풀리듯 연결되는 수미상관의 결말을 완성해 보았다.
1부의 시작이 깊은 매장실에서 역사의 조각을 맞추는 학자의 손길로 시작되었다면, 2부의 마지막 역시 그 보존의 현장을 다시 조명하며 끝을 맺는다. 파라오가 꿈꾸었던 영원한 부활은 옛 미라나 황금 보물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3,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무덤을 지키며 붓끝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조각난 돌을 맞추며 그들의 예술과 역사를 되살려내려는 이 사람들의 세심한 손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부활’이 아닐까?
고대의 장인들이 바위산 깊은 곳에 새겨놓은 영원의 꿈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학자들과 관람객들의 애정 어린 시선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고 있다.
1부와 2부에 걸쳐 우리는 룩소르 왕가의 계곡, 람세스 5세와 6세의 공동 무덤(KV9)이라는 거대한 예술 공간을 함께 탐험했다. 혼란스러웠던 제20왕조 말기의 비정한 역사 속에서 시작된 이 무덤은, 두 파라오의 엇갈린 운명과 욕망을 품어 안은 채 세월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후세계의 어둠을 뚫고 아침 태양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가장 간절하고도 유려한 예술적 상상력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람세스 5세와 6세의 무덤을 끝으로, 이제 왕가의 계곡을 뒤로하고 매표소 밖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수많은 파라오들이 영원을 꿈꾸며 바위산 깊은 곳에 묻었던 안식처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장엄한 벽화와 조각들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마저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인간 지성의 증거이자 수천 년 세월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다.
무덤을 나와 다시 마주한 룩소르 서안지역의 사막 태양은 여전히 뜨겁다. 사막의 바람 속에서도 내 머리 위에서 나를 보았던 ‘누트’ 여신의 황금빛 날개와 어둠 속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던 파라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수천 년 동안 이 메마른 골짜기를 지켜온 왕가의 계곡이 전해준 신비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나의 기억 속에 깊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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