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 전시…유홍준 관장 기증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박영효(1861∼1939)는 1882년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한 특명 전권 대신 겸 제3차 수신사로 임명돼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에서 많은 사람과 만나며 개화사상에 본격적으로 눈 떴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근대적으로 바꾸고자 노력했다.
이후 그는 1884년 김옥균(1851∼1894)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갑오개혁에 참여하는 등 조선의 근대화를 꿈꾸며 여러 시도를 했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이런 '개혁' 열망은 적극적인 친일 활동으로 이어졌다. 후작 작위를 받았고 '합방'의 공로를 인정받아 포상받기도 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동농 김가진(1846∼1922)의 삶은 다르게 펼쳐진다.
근대 개항기 농상공부대신, 중추원의장 등을 지낸 그는 1910년 일제가 남작 작위를 수여하자 반납하고 비밀결사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이끌며 독립운동에 나섰다.
두 사람의 삶은 어떻게 기억될까.
격변의 시기, 다른 삶을 살아간 박영효와 김가진의 글씨가 박물관에 함께 전시됐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소장한 병풍을 박물관에 기증하면서다.
30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박물관은 최근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을 개편하면서 조선3실에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을 새로 전시했다.
두 폭의 병풍은 박영효, 김가진 두 사람의 글씨로 만들었다.
박영효의 글씨는 봄날 뜰에 풀이 자란 모습을 묘사했고, 김가진은 73세 나이에 원나라 시인이 썼다고 전하는 '죽창'(竹窓)을 옮겨 쓴 것이라고 한다.
"봄날 빈 뜰에 풀이 저절로 자라나고 / 푸릇푸릇한 것들은 인정을 위한 것이 아닌데 / 어찌하여 서쪽에서 온 뜻을 다시 묻는가…. 현현거사 박영효"
"대나무 비친 창가에 서쪽 해 지려 하니 더욱 밝아오고 / 계수나무 꽃향기 속에 학의 꿈이 맑구나. 시중드는 아이는 한가로이 꼼짝도 하지 않고…. 73세 동농 김가진"
병풍은 유홍준 관장이 올해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박물관 측은 "박영효와 김가진 두 사람은 모두 한학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근대적으로 바꾸고자 하였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며 "개화파 두 사람의 글씨를 나란히 보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날 새롭게 단장한 대한제국실을 공개했다.
90㎡ 규모였던 공간을 133㎡ 규모로 넓히고, '국새 칙명지보(勅命之寶)'와 '데니 태극기' 등 보물 7점을 포함한 65점의 자료로 꽉 채웠다.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을 철거할 때 남쪽 모서리의 머릿돌(정초석) 아래에서 발견된 은판, 전·현직 총독의 이름이 새겨진 상량문은 처음으로 공개된다.
유홍준 관장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약 13년의 역사를 공백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며 "이제는 당당하게 대한제국의 실체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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