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내년 열리는 제69회 그래미 어워즈(이하 그래미)에 곡들을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29일 공식 SNS를 통해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제69회 그래미는 내년 2월 개최되며, 출품작 제출 마감일은 다음 달 21일(현지시간)이다.
표면적으로는 아티스트로서 음악적 소신에 따른 결정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선택을 미국 주류 음악계의 보수적인 시선과 배타적인 구조를 향한 문제 제기로 해석하고 있다. 단순히 그래미 도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음악 시장의 변화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장벽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그래미가 최근 신설을 발표한 ‘최우수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이 있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아시아 음악의 영향력 확대를 반영한 포용적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아시아 아티스트를 별도 범주에 묶어 주류 부문 진입을 제한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그래미 주요 본상 부문에서 경쟁하기보다 아시아 음악을 별도 카테고리로 분리하는 방식이 과거 라틴 음악이나 R&B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게토화’와 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시아 아티스트들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주류 무대와의 경계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이미 대표적인 글로벌 아티스트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입증했고, 언어와 국적을 넘어 음악 자체로 평가받는 시대를 열었다. 최근 군백기를 거쳐 완전체로는 3년 만에 발표한 정규 5집 ‘아리랑’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과 앨범 차트를 동시에 석권하며 글로벌 음악 시장의 최정상에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탄소년단이 새롭게 만들어진 아시안 팝 부문에 도전할 경우, 오히려 K팝과 아시아 음악이 ‘지역 음악’이라는 틀 안에 머무르는 선례로 남을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출품 거부는 자신들의 수상 가능성을 포기한 선택이 아니라, K팝을 특정 지역 장르가 아닌 글로벌 팝 음악의 한 축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선언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방탄소년단이 보이콧을 선언하자 레코딩 아카데미도 즉각 해명에 나섰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 최고경영자(CEO)는 방탄소년단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신설된 아시안 팝 부문이 아시아 음악을 본상 경쟁에서 배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아티스트들은 해당 장르 부문뿐 아니라 본상에도 동시에 도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이번 결정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중요한 것은 특정 부문의 신설 여부가 아니라,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아시아’라는 범주를 넘어 온전히 음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느냐는 점이다. 결국 방탄소년단에게 그래미는 단순히 인정받아야 할 권위의 무대가 아니라, 음악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 됐다.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는 한 그룹의 출품 여부를 넘어 글로벌 문화 산업이 다양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K팝을 비롯한 비영어권 음악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시대에, 여전히 언어와 지역을 기준으로 가치를 구분하는 기존의 평가 방식과 시상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다. 방탄소년단의 선택은 특정 분야를 넘어 글로벌 문화 산업이 보다 열린 기준으로 창작물의 가치를 바라봐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담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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