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다민족·다문화 국가로 변모했음을 확인했던 지난해의 취재 [대한移민국]에 이어, 이번 시즌2는 더욱 다채롭고 구체적인 이주민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려 합니다. 지자체 MOU로 재편된 농촌부터 동해안의 어촌, 도심 속 이주민 거점까지, 다양한 국적과 영역의 이주민 커뮤니티를 연속 취재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반영한 기록들이 단순 현장 스케치를 넘어, 한국 이민 정책의 빈틈을 채우고 통합적 조율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동력이 되기를 기원합니다.[편집자주] |
지난해 봄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이 영덕까지 번졌다. 연기가 마을을 온통 뒤덮었다. 주민들은 정신없이 피신하기 바빴다. 고령 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어르신을 챙긴 이들이 있었다. 영덕항의 선장들과 함께 일하던 인도네시아 선원들이었다. 인도네시아 이주민 비키 씨(23)가 앞장섰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법무부 표창을 받았고 이후 E-9보다 거주와 취업의 자유가 넓은 F-2 비자를 취득했다.
이달 초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비키 씨는 이제야 한국에서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아내 사진이다. F-2 비자를 취득함으로써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가장 반갑다고 했다. 아내가 한국에 오면 취업보다 먼저 K-뷰티 관련 공부를 하고 싶다는 계획을 세워뒀다고 했다.
비키 씨는 특별한 사례지만 영덕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민을 만나는 일 자체는 낯설지 않다. 전국적인 대게 산지인 영덕은 겨울철 대게뿐 아니라 물가자미, 오징어, 삼치 등 사계절 내내 조업이 이어지는 대표적인 어촌이다. 그러나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내국인 선원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어촌 현장은 고용허가제(E-9) 등을 통해 입국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이 많은 이유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군도국가로 오래전부터 한국 어선에 선원을 공급해온 대표적인 국가다. 기존에 영덕에서 일하던 선원들이 현지 지인이나 친척에게 취업 정보를 전달하고 같은 송출기관을 통해 입국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지역 내 인도네시아 공동체도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선주들 역시 기존에 거래하던 송출기관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특정 국가 출신 선원들이 한 지역에 집중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청어철 축산항···그물을 걷는 인니 청년들
영덕군 축산항. 부두를 따라 흰색 어선 수십 척이 늘어서 디젤 연기를 피운다. 뜨거운 햇볕 아래 바다 냄새와 디젤 엔진 냄새가 뒤섞여 퍼졌고 선착장 바닥에는 방금 잡아 올린 생선 비늘과 녹아내린 얼음물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여름철에도 알이 굵은 청어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축산항은 이른 오후부터 분주한 모습이었다.
여성경제신문이 찾은 축산항에서도 청어 조업을 준비하는 어선들이 연이어 출항했다. 배는 항구를 떠나 약 한 시간가량 바다로 나간 뒤 길게 연결된 그물을 내리고 30여 분을 기다렸다가 다시 그물을 걷어 항구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조업한다.
그물을 싣고 항구로 돌아온 어선은 기계를 통해 그물을 올리기 시작한다. 인니 이주민들은 엉키지 않도록 한 줄 한 줄 정리하고 그물을 모두 걷은 뒤에는 바닥에 둘러앉아 청어를 한 마리씩 떼어낸다. 손놀림이 조금만 늦어져도 작업 속도는 눈에 띄게 떨어진다.
이날 작업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비키 씨와 함께 작업하기로 했던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예정 시간보다 늦게 항구에 도착한 탓이다. 선착장을 서성이던 일성호 선장 유씨는 몇 번이고 시계를 들여다보며 애를 태웠다. 청어는 신선도가 상품성을 좌우하는 만큼 잡아 올린 직후부터 얼음을 계속 뿌려줘야 한다.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얼음이 녹아버릴까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선장은 얼음을 새로 가져오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서 비키 씨에게 배를 잠시 맡겼다. 비키 씨는 늦게 오는 동료들을 대신해 혼자 그물을 정리하고 갑판 위 작업을 이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 인니 청년들이 합류했고 이들은 별다른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청어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익숙한 품앗이 문화···이웃 배 선원이라도 똑같은 '아들'
유씨는 지난해 겨울부터 처음으로 외국인 선원을 고용했다. 그전까지는 혼자 배를 몰며 조업을 이어왔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맞춰가는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소규모 어업 특성 상 선주와 선원은 하루 종일 바다 또는 항구에서 함께 보내야 한다. 파도가 높아 조업을 쉬는 날도 있고 물때에 따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배를 타야 하는 날도 있다.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를 챙기게 됐다고 유씨는 설명했다. 선원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미리 사두거나 담배를 피우는 선원에게 담배를 한 보루씩 건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축산항은 강구항 등 영덕 남부 항구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낮은 편이다. 필요한 인력을 즉시 구하기 어려운 만큼 오래 전부터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품앗이' 문화가 자리 잡았다. 손이 남는 배는 다른 배의 일을 도와주고 외국인 선원 역시 소속된 배를 넘어 일손이 부족한 어선을 돕는 일이 흔하다.
실제로 축산항에서는 외국인 선원과 원주민 사이의 거리가 제조업 밀집 지역 대비 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원주민이 이름을 모르는 인니 청년에게 "아들"하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처음에는 이주민 선원들끼리의 상부상조로 시작된 이 관행은 이제 선장과 선원 사이 나아가 이웃한 배들끼리도 자연스럽게 손을 빌려주고 빌려 쓰는 구조로 확장됐다. 일손이 몰릴 때는 어느 배 소속인지를 굳이 따지지 않고 그날 바다에 나온 사람들끼리 서로의 그물을 함께 정리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그물 걷고 나면 SNS 켜고 맥주 한 잔
작업을 마친 뒤 비키 씨는 인근에 거주하는 고향 동료들과 모여 식사를 준비했다. 동료 딜파이(29) 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켰다. 한국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라이브 방송 방식은 조금 달랐는데 카메라를 향해 말을 하고 상황을 전달하기보다는 휴대전화를 켜둔 채 일상을 그대로 송출하는 방식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고향의 시청자들이 하나둘 접속했고 댓글을 남겼다. 낮에는 몹시 더웠던 터라 캔맥주를 따는 손길은 자연스웠다.
비키 씨의 이날 점심 메뉴는 돼지국밥이었다. 한국 음식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마라탕과 순두부라고 했다. 비키 씨를 비롯한 영덕의 인니 이주민은 대부분 무슬림이지만 종교 규율은 비교적 유연하게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 특유의 온건한 이슬람 문화가 반영된 탓이다.
겨우 손발과 마음 맞추면 떠나야 하는 현실
영덕 축산항의 인니 이주민 대부분은 E-9 비자로 한국에 체류하며 여러 명이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계약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1만8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국가지만 영덕에 와서야 바다를 처음 본 이들도 많다. 낯선 바닷일을 견디지 못해 사업장을 옮기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미등록 체류자가 되기도 하지만 한국인 원주민들은 대부분의 인니 청년들이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인력난은 심각하다. 특히 외국인 선원을 고용하는 어선들은 현행 고용허가제(E-9) 체계 아래에서 비자 기간이 제한되는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다. E-9 비자는 최초 3년에 재고용 시 1년 10개월이 더해져 최대 4년 10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고 이후 '성실근로자 재입국' 제도를 통해 한 차례 더 연장하면 최장 9년 8개월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다만 그 사이 반드시 본국으로 출국해 최소 한 달을 머문 뒤 재입국해야 하는 만큼 현장에서는 숙련된 인력이 자리를 비우는 공백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이날도 유 선장과 함께 일하던 외국인 선원 한 명은 지난 봄 계약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상태였다. 청어철이 시작되면서 일손은 더 필요해졌지만 새로운 선원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간 약속에 늦은 인니 일손을 기다리며 유 선장은 "손발이 맞을 만 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요즘 바쁜데 내 새끼가 없으니까 힘드네"라고 짧게 웃어 보였다.
원전 건설이라는 새로운 변수
하지만 영덕 어촌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지역사회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추진 중인 원전 건설이 이주노동자의 이동에도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덕군은 올해 2월 정부에 원전 유치를 공식 신청했고 같은 해 6월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규 대형 원전 2기 부지로 영덕을 최종 확정했다. 2027년 착공해 2038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지역 정치권은 지역경제 회복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는 조업 환경 변화와 온배수에 따른 해양생태계 영향 수산물 소비 심리 악화 등을 우려하고 있다.
수산업에만 20년 넘게 종사한 전대헌 선장(53)은 찬반보다 그 이후에 벌어질 변화를 더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는 원전 착공과 함께 대규모 건설 인력이 영덕으로 유입되면 지금 어선을 채우고 있는 외국인 선원들의 자리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건설 현장은 어업보다 임금 조건이 좋은 경우가 많아 같은 E-9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라도 조업보다 공사장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선장은 "지금도 일손 한 명을 새로 배정받기까지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인데 공사가 본격화되면 그 기다림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바다 일은 몸은 힘들어도 배우면 오래 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건설 현장에 익숙해지면 다시 바다로 돌아오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다"라며 앞으로 몇 년 안에 어촌의 이주노동자 구성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원전이 지역에 사람과 돈을 다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는 것 자체는 반길 일이라며 그 흐름 속에서 어촌 몫의 일자리와 정주 여건도 함께 챙겨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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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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