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 기타와 베이스,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지고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면 더위도 잠시 잊게 된다. 밴드 음악은 여러 악기가 동시에 움직이고 멤버들은 서로의 연주에 맞춰 호흡한다. 여기에 관객의 목소리와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음원으로 들을 때와는 또 다른 장면이 만들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밴드 음악은 혼자서 완성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노래하고 누군가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 등 악기를 연주한다.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각자의 역할이 나뉜다. 한 사람이 가져온 멜로디나 가사를 다른 멤버가 편곡하고 여러 차례 합주를 거쳐 무대에서 들려줄 형태로 다듬는다. 음악 취향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계속 의견을 나눠야 하고 합주와 공연을 위해 시간을 맞춰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
밴드가 설 수 있는 무대의 규모와 형태도 다양해졌고 음악을 알리는 방법 역시 달라졌다. 과거에는 공연장과 음반, 음원 사이트가 주요 통로였다면 지금은 SNS와 숏폼 영상도 빼놓기 어렵다. 밴드들은 짧은 영상으로 공연 소식을 알리고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다만 밴드 음악을 향한 관심이 커졌다고 해서 모든 밴드의 활동이 곧바로 쉬워진 것도 아니다. 발표되는 음악이 많아진 만큼 경쟁도 커졌다. 음원을 만들고 공연을 준비하며 팀을 꾸려가는 데는 꾸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멤버마다 생활 방식이 다르고 결혼이나 육아, 군 복무처럼 각자의 삶에서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같은 이름으로 음악을 계속하려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역할을 나눠야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무대 뒤에서 밴드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밴드를 어떻게 시작됐는지, 여러 사람이 함께 곡을 만드는 과정은 어떤지, 좋아서 시작한 음악을 직업으로 이어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물었다.
음악을 빠르고 짧게 접하는 시대에도 시간을 들여 한 곡을 만들고 관객 앞에서 직접 연주하는 이유도 살펴봤다.
첫 번째로 만난 팀은 OurR(아월)이다. OurR은 ‘당신의 외로움을 채우는 우리의 외로움’이라는 문장으로 자신들을 소개해왔다. 다만 지금의 OurR가 음악에 담는 감정은 외로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멤버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말을 전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9년 차인 지금까지도 관객과 만나는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OurR은 보컬과 기타를 맡은 홍다혜, 프로듀싱과 기타·신시사이저 등을 담당하는 이회원, 베이시스트 박진규로 이뤄진 3인조 밴드다. 세 사람은 2018년 8월 16일 디지털 싱글 ‘Desert’를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데뷔 9년 차를 맞았다.
이들은 ‘Swing’, ‘haaAakkKKK!!!’, ‘잠’, ‘소국’ 등 여러 싱글과 EP를 발표했고 각자가 맡은 역할을 바탕으로 세 사람이 함께 OurR을완성해왔다.
지난 18일에는 데뷔 이후 첫 번째 앨범 'Answer.'을 발매했다. 해당 앨범은 타이틀곡 '난그저까칠하게만들어진곰팡이야'를 포함해 총 12곡이 수록됐으며 곡마다 각기 다른 인간상이 담겨있어 눈길을 끈다. 'Answer.'의 음원은 현재 국내외 주요 사이트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유튜브 ,OurR / 아월
인터뷰에서는 멤버들에게 밴드를 시작한 이유와 음악을 만드는 과정, 지금도 무대에 서는 이유 등을 다양하게 물었다.
처음부터 모두 밴드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다혜: 회원이가 멤버를 모았고 함께 회사 오디션에 도전하면서 밴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밴드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밴드를 잘 모르기도 했고 늘 미래를 생각하면 멋진 여성 솔로 아티스트가 돼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밴드를 하고 있다.
회원: 기타같은 걸로 먼저 음악을 시작했다. 다만 악기 하나만으로 음악을 계속하기는 어렵다고 느껴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다.
진규: 음악 시작한 이유가 밴드를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악기를 잡았을 때에도 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외로움에서 더 많은 감정으로
다혜: 음악이라는 게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다만 예전에는 우리의 외로움으로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채우려고 했다면 지금은 꼭 외로움이 아니더라도 음악으로 채울 수 있는 감정이 많다고 느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는 너무 외롭지만은 않은 음악도 담으려고 한다.
진규: 처음부터 멤버들이 직접 만든 소개 문장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음악을 만들고 난 뒤 “이 음악은 이런 느낌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혜: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곡이라는 정도만 전달했는데 회사 관계자 분들이 음악을 듣고 그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주셨다.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곡들’이라는 설명을 공감의 문장으로 만들어준 셈이다.
한 사람이 꺼낸 이야기를 세 사람이 음악으로
다혜: 어떤 이야기를 전달했을 때 듣는 사람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듣는 사람이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이런 게 ‘멋진 소통의 방식’이라고 여긴다. 음악은 나에게 중요한 소통 방식이다. 하나로 정해진 해석보다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고, 듣는 사람과 많이 주고받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회원: 다혜가 주는 키워드나 가사를 더 구체적인 이미지로 들을 수 있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다혜가 곡을 시작하면 소리와 편곡을 통해 그 이미지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진규: 무엇보다 밴드는 라이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원도 중요하지만 음악이 완성된 뒤에는 무대에서 관객에게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가장 많이 고민한다.
다혜: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쿠스틱 알앤비를 하고 싶었다. 지금도 종종 찾아 듣는다.
회원: 시기마다 듣는 음악이 달라진다. 다만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들리는 음악은 자주 듣지 않는 편이다.
진규: 듣는 폭이 넓다. 아주 강한 메탈이나 지나치게 복잡한 재즈를 제외하면 여러 장르를 듣는다. 가사가 없는 연주곡, 부드러운 음악, 아이돌 음악, 해외 팝도 듣는다. 그래도 그중에서는 록을 가장 많이 듣는다.
다혜: 당연히 부딪힐 때가 있다. 처음에 생각한 분위기를 설명하고 모두 같은 방향을 이야기해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때가 있다. 결국 최종적인 이미지와 분위기는 회원이가 만드는 방향으로 많이 정리되는 것 같다.
회원: 세 사람의 취향이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겹치는 지점이 있고 그 교집합에서 OurR의 음악이 나오는 것 같다.
떨어져 지낸 뒤 알게 된 밴드의 소중함
진규: 많이 달라졌다. 먼저 생활이 있어야 그 위에 음악이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이 항상 먼저일 수는 없었다.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면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도 했다. 복무를 마친 뒤에는 음악을 더 진지하게 대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회원: 사실 대체복무를 해서 이전 생활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음악에 관한 생각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음악에 몰두할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다혜: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을 처음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멤버들이 곁에 없으니까 밴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밴드가 한 명만 있어서 되는 게 절대 아니니까. 곡을 만들면 빨리 들려주고 싶었고 새로 생각한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진규가 휴가를 나오면 데모에 베이스를 쳐달라고 하기도 했다. 멤버가 다시 돌아온 뒤에는 이 관계가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더 크게 느꼈다.
관객의 웃는 얼굴에서 찾은 음악의 이유
다혜: 최근에 문득 느꼈다. 공연에서 ‘YAYA(야야)’를 부를 때였다. 우리 곡 중에 밝고 빠른 곡이다. 마지막에 “야아아아~”하면서 부르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부르며 객석을 봤는데 관객들이 나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 함께 따라 불러주는 것도 감사하지만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면서 ‘내가 이래서 지금 여기에 서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울컥했다.
회원: 다혜와 같은 곡인데 ‘YAYA’를 만들 때부터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후 실제로 펜타포트 무대에서 그 곡을 연주했다. 많은 밴드가 서고 싶어 하는 무대에서 처음 생각했던 역할대로 곡을 들려줬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진규: 특정한 한 무대보다 공연할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는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한다. 몸이 힘들거나 손목과 목이 아픈 날도 있지만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한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면 음악이라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을 보며 음악을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숏폼은 음악이 아닌 전달 방식의 변화
다혜: 최근 ‘소국’ 활동 때도 여러 개의 챌린지 영상을 촬영했다.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찍은 영상도 있었다. 다만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해서 음악 자체가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홍보를 위해 음악을 그 방식에 맞춰 만들지는 않는다. 챌린지나 숏폼은 방법의 차이다. 음악 자체를 거기에 맞추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불편함'을 함께 넘을 때 생기는 밴드의 힘
진규: ‘불편함’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야 해서 시간도 맞추기 어렵고 과정도 편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이겨내고 무대에 서거나 음원을 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더 크다. 컴퓨터만으로도 음악을 만들 수 있고 AI 음악도 나오는 시대지만 밴드는 여러 사람이 세부적인 부분을 직접 다듬는다. 굳이 여기까지 했다는 디테일이 음악 안에 들어간다. 그 불편함이 매력이면서 양날의 검이다.
회원: 혼자서는 하지 못하는 일을 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노래를 잘하지 못하고 베이스도 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해줄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밴드라고 생각한다.
다혜: 솔로로 음악을 해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은 필요하다. 음악을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반드시 좋은 방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진규가 말한 것처럼 불편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만든 음악이 혼자 수월하게 만든 음악보다 좋은 것 같다. 밴드 활동 중 솔로 싱글을 한 장 내본 적이 있는데, 그때 멤버들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 느꼈다.
멤버들이 직접 고른 OurR만의 곡은?
회원: 최근에는 싱글 ‘잠’이다. 처음 의도한 것보다 더 결과물이 좋게 나왔다. 편곡뿐 아니라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모두 끝난 결과를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완성됐다고 느꼈다.
다혜: 이번 달 발매곡 ‘전시회’와 ‘난그저까칠하게만들어진곰팡이야’라는 곡을 좋아한다. 뒤의 곡은 줄여서 ‘까만 곰’이라고 부른다. 두 곡 모두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면서 내 이야기가 많이 담긴 곡이다. 이전 곡보다 표현은 간접적이지만 개인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갔다.
진규: 다혜와 마찬가지로 ‘까만 곰’을 고르겠다. 처음에는 내가 만든 음악이 씨앗으로 있었고 이후 다혜가 그 위에 가사와 멜로디를 붙였다. 다혜가 다른 버전으로 다시 가져오면서 지금의 곡이 나왔다. 처음의 데모가 없었다면 지금 곡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은 말하는 방식이고, 감정을 키우며, 삶에 쉼을 만든다
다혜: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다. 직업이기 때문에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음악이 없으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만든 음악이지만 나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시작했다. 음악은 말하는 방식이자 살아가는 방식이다.
회원: 직업이면서 취미다. 직접 만드는 음악은 직업이지만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듣는 것은 취미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더 신나고, 우울한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더 커진다. 음악은 감정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진규: 음악은 꽃이나 나무와 비슷하다. 도시에 꽃이나 나무를 반드시 심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걸리적거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꽃과 나무는 사람을 환기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는 쉼이 필요하고 음악은 그 쉼을 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OurR에게 밴드는 각자의 생각을 꺼내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한 곡을 완성해가는 일이었다. 시간을 맞추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늘 편한 것은 아니지만, 세 사람은 그 과정을 거쳐야만 나올 수 있는 음악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외로움으로 누군가의 외로움을 채우고자 했던 이들의 음악은 이제 더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떨어져 지내며 새삼 깨달은 멤버들의 소중함과 공연장에서 마주한 관객의 웃는 얼굴은 OurR이 음악을 이어가는 이유가 됐다. 이들에게 음악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감정을 나누는 방식이자 삶에 잠시 쉼을 더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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