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SK하이닉스가 올해 2분기 6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다시 썼다. 인공지능(AI) 서버용 고부가 메모리 판매와 D램·낸드 가격 상승이 실적을 끌어올리면서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도 100조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실적 발표 직후 SK하이닉스 주가는 급등락을 거듭하다 장중 20% 가까이 밀렸다. 일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는 기초자산인 SK하이닉스 주가가 상승한 구간에서도 하락하는 가격 왜곡까지 나타났다.
이처럼 사상 최대 실적에도 주가가 급락한 것은 시장의 눈높이가 이미 실적 개선 속도를 앞질러 높아진 데다 실제 영업이익이 증권가 전망치를 밑돌면서 차익 실현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29일 공시한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60조542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57.2%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매출은 79조3187억원으로 256.8%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76%에 달했다. 순이익은 93조92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42.5% 증가했다. 영업이익보다 순이익이 크게 커진 배경에는 투자자산 관련 수익 반영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2분기 영업이익만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47조2063억원을 넘어섰다. 다만 연합인포맥스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 63조5526억원보다는 4.7% 낮았다.
상반기 누적 매출은 131조8950억원으로 반기 기준 처음 100조원대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8조1529억원으로 100조원에 근접했다.
▲HBM·서버 D램·eSSD가 실적 견인
실적 개선은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고성능 메모리 수요 증가와 제품 가격 상승이 이끌었다.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전분기에 이어 큰 폭으로 상승한 가운데 고대역폭메모리(HBM), AI 서버용 D램,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AI 학습용 HBM뿐 아니라 추론 과정에서 필요한 서버용 D램과 고용량 낸드 수요도 늘면서 AI 메모리와 범용 메모리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 모두 전분기에 이어 큰 폭의 가격 상승을 기록했다”며 “HBM과 AI 서버용 D램, eSSD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판매를 늘려 최고의 수익성을 창출했다”고 밝혔다.
현금 창출력도 대폭 강화됐다. 2분기 말 현금성 자산은 전분기보다 33조6000억원 증가한 88조원으로 집계됐다. 차입금은 7000억원 줄어든 18조6000억원으로, 순현금은 69조4000억원까지 확대됐다.
회사는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가 AI 서비스에서 발생한 수익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어 메모리 수요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바탕으로 핵심 고객사를 포함한 10여개 고객과 장기공급계약 협상을 마무리했으며 다른 주요 고객들과도 추가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
▲HBM4 출하 시작…하반기 생산 확대
SK하이닉스는 2분기 차세대 제품인 HBM4의 양산 출하를 시작했으며 하반기 생산량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회사는 HBM4가 고객사가 요구하는 동작 속도를 충족하면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전력 효율과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상반기 고객사 대상 샘플 공급을 마친 HBM4E에는 기술 성숙도와 양산 안정성을 고려한 공정을 적용했다.
저전력 AI 서버용 메모리 모듈인 SOCAMM2 판매도 2분기 들어 크게 증가했다. 10나노급 6세대인 1c 공정을 적용한 제품 공급도 본격화했다.
낸드 사업에서는 321단 제품을 중심으로 선단 공정 전환을 가속한다. 회사는 연말까지 321단 제품 생산 비중을 국내 낸드 생산능력의 약 50%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능력 확충도 추진한다. 청주 M15X의 양산 일정을 앞당기고 2027년 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의 클린룸 개방 이후 생산량을 신속하게 늘릴 수 있도록 투자를 진행한다.
첨단 패키징 공장 P&T7과 낸드 생산기지 M17,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 등 중장기 투자도 고객 수요와 투자 효율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집행할 방침이다.
▲최대 실적보다 높았던 시장 기대치
문제는 실적이 아니라 시장의 기대치였다. SK하이닉스 주가는 HBM 시장 지배력과 메모리 가격 상승 기대를 반영해 실적 발표 전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투자자들의 눈높이도 단순한 사상 최대 실적을 넘어 매 분기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에 맞춰져 있었다.
실제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6배 이상 증가했지만 시장 전망치를 4.7% 밑돌았다. 절대적인 실적은 역대 최대였지만 이미 주가에 반영된 기대를 추가로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했다는 의미다.
최근 증시 급락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실적 발표가 차익을 실현할 계기로 작용한 점도 주가 낙폭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실적 발표 직후 매수와 매도 주문이 충돌하며 주가가 급등락했고, 이후 외국인과 기관을 중심으로 매물이 확대되면서 장중 하락률이 20%에 근접했다.
향후 대규모 증설이 공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부담이다. SK하이닉스는 고객 수요가 공급능력을 웃돈다고 강조했지만 시장은 M15X와 용인 팹, P&T7 등 신규 설비 가동 이후에도 높은 메모리 가격과 70%대 영업이익률이 유지될 수 있을지를 주시하고 있다.
주가가 크게 오른 상태에서는 실적의 절대 규모보다 이익 증가율이 정점을 통과했는지 여부가 더 민감하게 반영된다. 이번 주가 급락은 실적 악화보다는 지나치게 높아진 기대치와 차익 실현, 향후 이익 증가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주식 올랐는데 레버리지 ETF는 하락
장 초반에는 SK하이닉스 주가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도 나타났다.
오전 9시 51분께 SK하이닉스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0.13% 오른 155만2000원에 거래됐지만, TIGER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는 1.84% 하락했다. KODEX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도 같은 시간 1% 이상 내렸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기초자산의 ‘하루 수익률’ 약 2배를 추종하도록 설계된 고위험 상품이다. 장기간 누적 수익률이 항상 기초자산 수익률의 정확히 2배가 되는 상품은 아니다. 금융당국도 단일종목 집중투자와 손익 증폭, 장기 보유 시 음의 복리효과 등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장중 가격이 엇갈린 직접적인 원인은 시장가격과 순자산가치 사이의 괴리로 볼 수 있다.
ETF는 펀드가 보유한 자산의 실질 가치인 순자산가치와 거래소에서 투자자 주문으로 결정되는 시장가격이 따로 형성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유동성공급자(LP)가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해 두 가격의 차이를 좁힌다.
그러나 실적 발표일처럼 기초자산 가격이 짧은 시간에 급등락하면 주문이 한쪽으로 몰리고 LP가 가격 변화를 즉시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전날 레버리지 상품이 순자산가치보다 비싸게 거래됐다면 다음 날 주가가 소폭 오르더라도 ETF의 고평가분이 해소되면서 시장가격은 하락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최근 한 달 수익률이 60% 가까이 하락하는 등 기초자산 변동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해당 상품들은 SK하이닉스 현물뿐 아니라 주식선물과 현금성 자산 등을 조합해 하루 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는 구조다.
금융당국이 지난 16일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보완 방안을 내놓은 것도 이 같은 변동성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SK하이닉스 주식의 연율화 변동성은 113%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주가 움직임은 실적이 나빠서라기보다 사상 최대 실적이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된 상황에서 전망치 하회와 차익 실현이 겹친 결과”라며 “레버리지 상품의 역방향 움직임은 기업 실적과 별개로 장중 수급과 괴리율, LP 호가가 만들어낸 가격 왜곡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중장기 성장 기회를 차질 없이 준비하는 동시에 설비투자 원칙을 유지해 생산능력과 재무 건전성을 함께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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