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개헌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 권력구조를 개편하고 기본권과 지방분권을 강화하자는 요구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개헌이라는 말 옆에 ‘현직 대통령 연임’이 붙는 순간 미래의 제도는 현재 권력의 욕망으로 읽힌다. 조정식 국회의장의 한마디가 정치권을 뒤흔든 이유다.
조 의장은 지난 2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한 개헌에 관한 질문을 받고 “결국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국민의 선택 문제”라고 답했다. 정치 주체들의 합의와 국민의 선택이라는 개헌의 일반 원칙을 설명한 발언이었다는 게 조 의장 측의 해명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받아들인 메시지는 달랐다. ‘이재명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곧바로 뒤따랐다.
파장이 커지자 조 의장은 당일 밤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개헌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을 거론하며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개헌안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본의와 다르게 오해와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도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현행 헌법상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개헌은 불가능하며 조 의장의 발언은 청와대와 교감한 내용이 아니라고 밝혔다. 민주당 당권 주자들 사이에서도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과 사과 요구가 나왔다.
반면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은 이를 ‘정권 연장의 속내’로 규정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헌법 정신을 거슬러 연임 개헌을 추진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내란”이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이 대통령을 겨냥해 “‘독재명’이 되려 한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원론적 답변에서 시작된 한 문장이 순식간에 장기집권 논란으로 번졌다.
말 한마디가 만든 ‘권력 의심’
이번 논란의 출발점은 조 의장이 말한 내용보다 말하지 않은 내용에 있다.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묻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나왔어야 할 답은 “헌법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 의장은 국민 여론과 정치권의 합의, 개헌 논의 과정부터 언급했다. 법적으로 닫혀 있는 문을 정치적으로는 열어 둔 것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조 의장은 민주당의 친이재명계 핵심 인사로 분류돼 왔고 지난 5월까지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으로 활동했다. 국회의장이 된 뒤에는 당적을 떠났지만, 국민의 시선까지 과거의 정치적 관계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자리에서 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국회의장은 여야를 조정하고 헌정 질서를 관리해야 할 입법부의 수장이다. 개헌 논의를 주도하려면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다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그런 인물이 현직 대통령의 연임 문제를 정치권 합의와 국민 선택의 영역으로 올려놓은 순간, 개헌 논의의 중립성 자체가 의심받게 됐다.
조 의장으로서는 국민주권이라는 원칙을 강조하려 했을 수 있다. 개헌은 국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로 최종 확정된다는 원론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헌법이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한 사안을 두고 국민 선택을 먼저 거론한 것은 법적 한계와 정치적 가능성을 뒤섞은 답변이었다.
정치에서 해명은 처음 나온 발언보다 힘이 약하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설명이 이어질수록 국민은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조 의장이 같은 날 밤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연임 개헌’이라는 단어는 정국의 중심에 올라선 뒤였다.
청와대·여당의 ‘거리두기’
청와대가 “조 의장의 발언과 교감이 없었다”며 선을 그은 것은 논란이 이 대통령에게 직접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청와대가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야권은 조 의장의 발언을 권력 핵심부가 던진 ‘여론 탐색용 메시지’로 규정할 수 있다. 조기 차단이 필요했던 셈이다.
청와대가 현직 대통령 연임은 현행 헌법상 불가능하다고 못 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임론’을 정치적 논쟁의 영역에 그대로 두는 순간 대통령의 모든 개헌 구상은 장기집권을 위한 수단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개헌의 명분을 지키려면 이 대통령과 연임 개헌 사이에 분명한 방화벽을 세워야 한다.
민주당 역시 조 의장을 감싸기 어려웠다. 과거 야권이 ‘이재명 연임용 개헌’ 의혹을 제기할 때 민주당은 헌법 제128조를 들어 거짓 선동이라고 반박했다. 이제 와서 조 의장의 발언을 옹호한다면 스스로 내세웠던 논리를 뒤집게 된다.
당권 경쟁을 벌이는 민주당 인사들이 앞다퉈 조 의장을 비판한 데에는 원칙과 함께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 이 대통령과 연임론을 분리함으로써 정권의 부담을 덜어 주고, 동시에 자신은 헌법과 민심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댙을 수 있다. 조 의장과 거리를 둘수록 대통령과는 오히려 보조를 맞추는 역설적인 장면이다.
여권의 신속한 거리두기는 연임론이 내부적으로도 얻을 실익보다 감당해야 할 부담이 훨씬 크다는 판단을 보여준다. 민생과 경제, 사법·검찰 개혁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장기집권 논란은 국정 동력을 소모하는 자충수가 된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조 의장의 발언을 개인적 실언으로 정리하려는 이유다.
야권의 ‘장기집권 프레임’
국민의힘 입장에서 조 의장의 발언은 놓칠 수 없는 정치적 소재다. 개헌 논의에서 수세에 놓였던 야당은 ‘제도 개혁’이라는 추상적 의제를 ‘이재명 연임’이라는 권력 문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개헌의 내용보다 대통령의 속내를 묻는 구도가 야당에는 훨씬 유리하다.
장동혁 대표가 ‘진정한 내란’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한 것도 지지층의 경계심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전략이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입법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개헌까지 정권 연장의 도구로 삼으려 한다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것이다.
한동훈 의원의 “‘독재명’” 발언도 같은 문법에 놓여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름과 독재를 결합한 조어는 법리적 논증보다 이미지 각인에 목적이 있다. 조 의장의 발언이 해명됐더라도 국민에게 ‘혹시 권력 연장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만 남기면 야권으로서는 성과다.
다만 야권의 공세 역시 과도해질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헌법상 현직 대통령 연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곧바로 내란이나 독재로 연결하는 것은 정치적 과장에 가깝다. 실제 추진 계획이나 청와대와의 교감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혹을 사실처럼 단정하면 개헌 논의를 정쟁의 도구로만 소비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야권이 해야 할 일은 자극적인 별칭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개헌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에 찬성하는지, 현행 5년 단임제를 유지할 것인지, 국회와 대통령의 권한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연임 논란만 반복하면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헌 자체를 회피하는 정당으로 비칠 수 있다.
민심이 경계한 것은 ‘제도’가 아닌 ‘욕망’
국민이 대통령 중임제나 연임제 자체를 무조건 반대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5년 단임제가 정책의 연속성을 떨어뜨리고 대통령 임기 후반의 조기 레임덕을 초래한다는 문제 제기도 꾸준히 있었다. 잘한 대통령에게 한 번 더 평가받을 기회를 주자는 주장도 제도적 범위에서는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직 대통령의 연임 문제가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제도 변경의 수혜자가 누구인지가 너무 선명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경기 규칙을 바꾸려 한다는 의심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강한 거부감을 일으킨다. 개헌이 국가의 미래가 아니라 특정인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읽히는 순간 국민적 합의는 멀어진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바로 이런 의심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권력자가 자신을 위해 헌법을 고치는 길을 막고 있다. 국민투표를 거치더라도 현직 대통령의 이해관계와 개헌을 분리해야 한다는 헌법적 결단이다.
이번 논란은 개헌 논의에서 법적 가능성만큼 정치적 신뢰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개헌은 어느 한 정당의 힘만으로 추진할 수 없다.
국민투표도 넘어야 한다. 여야의 합의와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개헌은 출발조차 어렵다.
결국 조 의장의 한마디는 개헌의 문을 연 것이 아니라 의심의 문을 열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황급히 닫으려 했고, 야당은 그 틈을 더 벌리려 한다. 정작 국민이 원하는 것은 누가 한 번 더 대통령을 할 수 있느냐는 권력의 계산이 아니라, 어떤 헌법이 자신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답이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첫 번째 원칙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새 제도는 현직 권력자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권력구조뿐 아니라 기본권, 지방분권,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시대의 국가 책임까지 국민의 삶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세 번째는 여야가 상대의 의도를 공격하기 전에 자신들의 개헌안을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번 조정식 의장의 ‘국민 선택’ 발언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역설적이다. 국민에게 선택을 맡기기 전에 정치가 먼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연임 개헌 소동이 드러낸 정치의 문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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