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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정보가 담기는 산부인과 진료기록. 만약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 의료진이 내 진료기록을 몰래 훔쳐봤다면 어떨까.
최근 대구지방법원에서는 타인의 산부인과 진료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한 간호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결과가 나왔다(2026나300000).
법원은 간호사의 행동이 환자 권리를 침해한 명백한 불법행위임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가 요구한 배상액을 전부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법정에서는 어떤 공방이 오갔을까.
은밀한 기록을 향한 빗나간 호기심
사건의 발단은 2022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자 A씨는 모 병원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던 평범한 환자였다.
그런데 같은 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B씨가 병원 전자의무기록시스템에 접속해 A씨의 산부인과 진료 기록을 무단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발생했다.
자신의 업무와 전혀 무관한 환자의 민감한 기록을 훔쳐본 B씨. 결국 이 행위가 꼬리를 밟히며 B씨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졌고, 벌금 70만 원 형을 확정받았다.
분노한 환자 "기록 유출도 의심돼"… 900만원 배상 청구
형사 처벌로 끝이 아니었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A씨는 B씨를 상대로 900만 원을 배상하라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이 위자료 200만 원을 인정하자, A씨는 항소심 문을 두드렸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민감한 산부인과 진료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한 것도 모자라, B씨가 이를 다른 사람에게 유출까지 했다"고 호소했다.
침해된 정보의 민감성과 반성하지 않는 B씨 태도를 고려할 때, 200만 원 위자료는 지나치게 적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의 일침 "고통은 분명하나, 유출 증거는 부족"
항소심을 맡은 대구지방법원 제8-1민사부(재판장 김미진)의 판단은 어땠을까.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B씨의 행동을 매섭게 질타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정당한 사유 없이 무단으로 열람하여 원고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다"고 명시하며, B씨의 행동이 민법상 손해배상 책임이 따르는 불법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환자의 상처에 대해서도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하여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분명하다"며 위자료 지급 의무를 짚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청구한 금액을 높여주지는 않았다. 항소심 역시 1심과 동일하게 위자료 200만 원이 적정하다고 판결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A씨가 주장한 유출 피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원고는 피고가 의무기록을 다른 사람에게 유출하였다고 주장하나,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선을 그었다. 입증되지 않은 주장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것이다.
재판부는 위자료를 200만 원으로 산정한 구체적인 이유도 덧붙였다.
▲B씨가 기록을 열람한 횟수가 단 1회에 그친 점 ▲실제 열람한 의무기록 내용 ▲두 사람의 관계와 사건 이후 정황 ▲관련 형사사건에서 벌금 70만 원이 선고된 점 등을 모두 종합해 내린 결론이었다.
결국 환자의 내밀한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린 간호사는 형사처벌에 이어 위자료까지 물어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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