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정부가 보유세는 강화하고 양도세는 완화하는 방향의 부동산 세제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보유 부담을 높이는 대신 양도세 등 거래 비용을 낮춰 다주택자 매물을 시장에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은행권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강화되면서 연간 대출 공급 물량의 80% 이상이 이미 소진된 상태다.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 여력이 빠르게 축소되면서 세제 개편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은 이달 초 기준 금융당국에 제출한 연간 증가 목표치의 약 80%를 이미 소진했다. 일부 은행은 목표치를 초과하면서 하반기 들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모집인 채널을 제한하는 등 대출 관리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이달 말 발표하는 세법개정안에 보유세와 거래세 개편 방안을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지난 23일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는 보유세를 강화하는 대신 양도세 등 거래세 부담을 완화해 다주택자 매물을 시장에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양도세 부담 완화를 통해 매물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집값 상승세와 공급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보유 비용을 높여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동시에 거래세 부담을 낮춰 매물을 유도하는 방향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보유세 인상이 시장 안정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거래세 조정과 금융, 공급 정책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은행권은 가계대출 증가세에 대응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수도권과 규제지역은 물론 전국의 주택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최대 3억원으로 제한했고, 신한은행은 대출모집인을 통한 신규 접수를 중단했다. 마이너스통장 한도 역시 주요 은행들이 잇달아 축소했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도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 부담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6월 27일부터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최대 6억원으로 제한됐다. 기존에는 소득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따라 대출 가능 금액이 결정됐지만, 현재는 총액 상한이 적용되면서 소득이 충분하더라도 필요한 만큼 대출받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특히 7억~10억원대 주택을 구입하려는 실수요자의 부담이 커졌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주택을 매입할 경우 최대 대출은 6억원으로 제한돼 나머지 4억원은 자기자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지난해 7월부터 스트레스 DSR 3단계가 시행되면서 실제 대출 가능 금액은 더욱 줄어들었다.
공급 여건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R114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총 2만5281가구로 지난해보다 1만1822가구 감소한 3만7103가구로 전망된다. 올해 임대를 제외한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역시 지난해 대비 약 46.8% 줄어든 1만7210가구로, 2022년 이후 4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이처럼 물량 감소와 재건축·재개발 이주 수요가 이어지는 가운데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서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값 상승세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누적 8.98% 상승해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7월에도 서울 아파트값은 전월 대비 1.05%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중랑구와 강북구, 성북구, 노원구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지역의 상승폭이 서울 평균을 웃돌았다. 대출 한도 내에서 매입이 가능한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 화성 동탄 역시 두 달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전국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세제 개편과 금융정책, 공급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거래세 완화로 매물이 늘어나더라도 실수요자의 대출 여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거래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고, 공급 부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가격 불안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달 말 세법개정안을 통해 보유세와 거래세 개편 방향을 확정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세제 개편뿐 아니라 가계대출 관리와 공급 확대 방안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가 정책 효과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서울대 지리학과 김용창 교수는 부동산 조세를 단순히 세율 조정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보유세와 양도세를 어떻게 조정할지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생산을 통한 자본 축적이 아니라 자산 가격 상승과 거래를 통한 이윤 추구가 확산되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부동산 조세 정책은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자본이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정책 수단”이라며 “생산적 자본 축적 대신 자산 기반 이윤 추구가 지속되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경제의 지속 가능성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자원 배분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보유세 강화 등 자산 과세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명지대 경제학과 우석진 교수는 “전 정권에서 집을 짓지 않아 공급이 없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 것”이라며 “3~4년 뒤에 공급될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면 당장의 급한 수요를 제외하고는 수요가 좀 꺾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대출 제한의 경우 당장 풀어줄 수 없으니 필요에 따라 가장자리부터 완화해주거나 단기·중기·장기적으로 정책을 설계해 아파트와 비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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