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굿바이는 최근 필자가 치렀던 건강검진이다. 비용만 보면 소비처럼 보이지만, 생각하면 가장 오래 남는 투자는 결국 (누가 뭐래도) 건강이다. 그런 속담도 있지 않은가. 인생에서 '돈을 잃으면 적게 잃은 것이고, 사람을 잃으면 크게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은 것'이라는 속담. 우리는 좋은 가방이나 시계에는 큰돈을 쓰면서도 정작 내 몸을 확인하는 비용은 쉽게 아까워한다. 필자도 (젊음에 기대어)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결론부터 말해, 올해 건강검진 결과지에 '정상'이라는 두 글자를 받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에 내가 산 것은 검진이 아니라, 앞으로도 평범한 일상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안심'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안심은, 어떤 소비보다 오래 남는 가치였다.
건강검진은 아픈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을 위한 소비다. 매년 건강검진 안내 문자가 오면 늘 비슷한 생각을 했다. '올해도 별일 없겠지.' 몸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도 꾸준히 하는 편이니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막상 예약을 하고 비용을 결제하는 순간에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돈이면 다른 걸 살 수도 있는데.'
이번 건강검진은 아내의 회사 건강검진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가족 혜택을 받아 약 40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종합검진과 대장내시경까지 함께 받을 수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라 망설였겠지만, 건강검진을 받은 지도 5년 여 전이었고 마흔을 앞둔 첫 대장내시경이기도 해서 오히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받아보자는 마음이 컸다.
대장내시경은 검사 당일보다 준비 과정이 더 큰 시험이었다. 검사 3일 전부터는 식단을 조절해야 했다. 씨가 있는 과일이나 잡곡, 해조류, 김치처럼 장에 오래 남는 음식은 피해야 했고, 채소도 마음껏 먹을 수 없었다. 대신 흰쌀밥, 흰죽, 계란, 두부처럼 소화가 잘되는 음식 위주로 식사를 했다.
검사 전날은 더 힘들었다. 흰 죽으로 식사를 마친 뒤 장정결제를 마셔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가장 고됐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양의 물을 함께 마셔야 했다. 저녁에도 한참을 마셨고, 한밤중에 다시 일어나 또 1.5리터 가까운 물을 마셨다. 잠결에 물을 억지로 들이켜는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장 안을 깨끗하게 비워야만 작은 용종이나 병변까지 놓치지 않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가 부족하면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검사 비용보다도 다시 처음부터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한 번에 끝내자'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성실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장정결제가 끝난 뒤 화장실에 갔는데 정말 말 그대로 물만 나왔다. 내 몸이 이렇게까지 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이 정도여야 제대로 검사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생경한 경험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대장내시경에서도 특별한 이상은 없었고, 다른 검사 결과도 전반적으로 좋았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혹시나 작은 용종이라도 있으면 어떡하지?' 혼자서 속으로 작은 용종 같은 걱정을 품었던 게 사실이다.
재미있는 건 결과를 듣고 나니 오히려 허탈한 기분이 조금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 동안 식단을 조절하고, 물을 억지로 마시고, 긴장까지 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니.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깨달았다.
건강검진의 가장 좋은 결과는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병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안심을 얻는 것 역시 충분히 값진 결과다.
돌이켜보면 이번 결과는 뜻밖의 우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올해 들어 식습관을 조금씩 바꿨다. 라면을 거의 끊었고, 듀럼밀 파스타처럼 조금이라도 더 좋은 탄수화물을 선택하려고 했다. 술도 줄였고, 러닝도 꾸준히 이어왔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작은 습관들이 모여 이번 건강검진 결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번 검진이 더 의미 있었던 이유는 가까운 사람의 경험 때문이었다. 얼마 전 주변에서 건강검진을 통해 종양을 조기에 발견해 큰 병으로 이어지기 전에 제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검진을 미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괜히 등골이 서늘해졌다. 병은 치료보다 발견이 늦어지는 것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처음에는 40만원이라는 비용이 조금 아깝게 느껴졌다. '안 해도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건강검진은 병을 사는 돈이 아니라 안심을 사는 돈이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가도 된다는 확신의 비용이었다. 더 큰 병원비를 막기 위한 예방이었고, 무엇보다 내 삶을 오래 이어가기 위한 투자였다.
여성경제신문 권혁주 쇼호스트
kwonhj1002@naver.com
권혁주 쇼호스트·방송인
동국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SBS강원(G1), CJ헬로비전 등에서 아나운서로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CJ ENM, 현대홈쇼핑+, 더블유쇼핑 등에서 홈쇼핑 및 라이브커머스 쇼호스트로서의 방송 경력을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활동에 겸하여 서촌에서 ‘이상서전’이라는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매주 한 권의 책을 큐레이션하는 독특한 콘셉트로 정체성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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