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사연 없는 히어로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독 측은하고 눈에 밟히는 히어로는 있습니다. '당신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 MCU를 떠나 있다가 '홈 커밍'한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은 연령이 낮아진 대신 인생의 쓴맛 농도는 높아졌습니다. 타노스(조쉬 브롤린)의 핑거스냅에 한 번 소멸됐다가 부활하니 정신적 아버지였던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을 잃고, 이내 전 세계에 복면 아래 정체를 들킵니다. 그러더니 욕심을 과하게 부린 대가로 사랑하는 숙모를 잃고 모두에게 '피터 파커'라는 진짜 모습을 잊히는 신세가 됩니다. 모든 게 그가 10대 때 벌어진 일입니다.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브랜드 뉴 데이)는 이 엄청난 사건의 끝에 홀로 남게 된 피터 파커의 나날을 보여줍니다. 스파이더맨은 여전히 뉴욕의 수호자고, 그의 활약 덕에 범죄율은 곤두박질치지만 피터 파커는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입니다. 수트를 입었을 때는 모두와 함께지만 벗었을 때는 철저히 혼자죠. 매일 메이 숙모의 무덤에 들렀다가 절친 네드(제이콥 배덜런)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MIT 일상을 보고, 사건이 터지면 출동하는 게 그의 하루 루틴입니다. 이 와중에 DNA 변형으로 인한 손목 통증까지 얻게 된 스파이더맨은 어느 날 기이한 적과 마주합니다.
탈취된 탱크가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향한 곳에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에게 당했던 스콜피온(마이클 맨도)이 있었습니다. 그가 직접 탈옥 계획을 꾸민 것인가 했더니, 흑막은 따로 존재했어요. 스콜피온의 도주를 돕는 사람들은 귀신이 씌인 듯 인격이 바뀌었는데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옮겨다니며 스파이더맨을 방해하는 미지의 존재가 진짜 악당이었습니다. 어딘가에 있는 건 분명한데 보이지는 않는 이 존재를 스파이더맨은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스파이더맨이 적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피터는 MJ(젠데이아 콜먼)와 네드 주위를 맴돕니다. 정체를 밝히지 않는 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리란 두려움, 다시 친구들을 곤경에 처하게 하기 싫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지의 존재는 스파이더맨과 피터가 동일인임을 알아채고, 그가 사랑하는 MJ를 인질로 이용하려 합니다.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이 와중에 스파이더맨의 DNA 변형은 점점 심해집니다. 거미 유전자가 활성화되면서 감각이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으로 예민해지죠. 진짜 거미줄이 손목을 뚫고 생성되면서 수트에 달린 웹슈터는 쓸 수 없게 됩니다. 이상 증상을 제어하기 위해, 피터는 비슷한 고통을 겪는 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를 찾아갑니다. 그가 팔에 꽂고 있는 억제기를 본따 자신도 유전자 활성화 억제기를 만들어요. 인간이면서 동시에 특수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이 기기로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게 된 거예요. 스파이더맨은 빌 메츠거(트라멜 틸먼)가 이끄는 대미지 컨트롤과 함께, 억제기를 이용해 악당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모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브랜드 뉴 데이〉는 스파이더맨 서사가 MCU로 복귀한 후 네 번째로 나오는 솔로 무비입니다. 당초 '홈커밍 트릴로지'라 불린 3부작 이후에 나온 '세컨드 트릴로지'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스파이더맨이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선보인 액션은 하이틴 시절보다 묵직해졌습니다. 캐릭터도 전작부터 해결되지 않은 고뇌를 품고 있는 탓에 '톰스파' 만의 재기발랄함은 줄어든 편입니다. 덕분에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가 공유하고 추구하는 희망이 더 간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지금껏 스파이더맨의 동력은 개인적 고뇌보다 사건의 해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10대의 끝자락에서 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20대를 보내며 그렇게 살고 싶지도, 살 수도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스파이더맨에게 '함께'의 진리를 전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 뿐이 아닙니다. 그가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한 건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입니다. MCU 히어로 중에서는 드물게 초월적 능력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이들을 보며 그는 변화합니다. 이 변화는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의 경계에 선 〈엑스맨〉 스타일로도 보이는데요. 철이 없어 가끔 민폐도 끼치던 스파이더맨의 인간적 성장을 보여 준 훌륭한 성인식이었습니다.
다만 여기까지만 했어도 좋았을 솔로 무비로서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건 MCU의 고질병입니다. 〈브랜드 뉴 데이〉에는 곳곳에 서사와 크게 관계 없는 마블 캐릭터들이 유독 많이 등장합니다. 닌자 집단 핸드는 비주얼적 양념이라고 쳐도, 예고편에서는 임팩트 있던 툼스톤(마빈 존스 3세)이 나오는 건 딱 한 장면에 불과합니다. 세컨드 트릴로지에서 아이언맨을 대신해 스파이더맨의 조력자로 내세운 듯한 퍼니셔(존 번탈)의 투입 방식도 억지스럽습니다. 퍼니셔는 이번이 첫 MCU 영화 출연인데요. 그럼에도 능력은 심하게 너프된 상태에 성격도 평면화됐습니다. 스파이더맨의 '불살'과 퍼니셔의 '필살'을 대비시킬 목적이라 선해해도 이야기의 전체적 흐름에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스파이더맨과 대미지 컨트롤이 쫓는 최종 빌런의 정체는 〈브랜드 뉴 데이〉의 최고 반전입니다. 오히려 주인공보다 존재감이 큰 수준인데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에도 줄곧 MCU를 사랑해 온 팬들이라면 이 반전을 통한 세계관 확장을 반가워 하겠지만, 마지막일수도 있는 '톰스파'가 다소 아쉬워진 건 사실입니다. 영화는 29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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