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학 졸업장은 취업과 사회생활을 위한 필수 조건처럼 여겨졌다. 1990년대 고도성장과 함께 산업 현장의 대졸 인력 수요가 늘었고, 정부는 부족한 대학을 확충하기 위해 설립 요건을 완화했다.
그 결과 1995년 304개였던 전국 대학 수는 2005년 360개까지 증가했다. 전국 곳곳에 새로운 대학이 들어섰고, 더 많은 학생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KBS 1TV ‘시사기획 창-대학 부도의 날’ 예고편. / KBS 제공
그러나 대학을 대폭 늘린 지 불과 10여 년 만에 상황은 뒤집혔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면서 학생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했고, 정부는 이번에는 경쟁력이 낮은 대학을 골라 재정 지원을 끊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28일 방송되는 KBS 1TV ‘시사기획 창’은 ‘대학 부도의 날’ 편을 통해 대학 확대에서 폐교 압박으로 급선회한 정부 정책과 지방대 붕괴가 불러올 미래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대학 늘린 정부, 10년 만에 폐교 압박
KBS 1TV ‘시사기획 창-대학 부도의 날’ 예고편. / KBS 제공
2000년대 들어 대학 입학 자원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이어진 저출산 흐름을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변화였지만, 이미 전국에는 많은 대학이 설립된 뒤였다. 학생 수가 줄자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지방 사립대부터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대학에서는 재단 비리와 부실 운영까지 불거졌다. 신입생 모집이 사실상 중단되고 등록금 수입이 감소하면서 학교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는 사례도 이어졌다.
정부는 학생 충원율과 재정 상태 등을 기준으로 부실 대학을 선정한 뒤 재정 지원을 제한했다. 지원을 끊어 자발적인 폐교와 통폐합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2000년 이후 문을 닫은 대학은 전국 22곳이다. 이 가운데 20곳이 지방대였다.
폐교의 피해는 학교 법인이나 경영진에게만 돌아가지 않았다. 재학생들은 갑작스럽게 다른 학교로 편입해야 했고, 교수와 직원들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폐교 이후 남은 건물과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지방자치단체의 몫으로 남았다.
대학 하나 사라지자 지역 경제도 흔들렸다
KBS 1TV ‘시사기획 창-대학 부도의 날’ 예고편. / KBS 제공
지방에서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학생과 교직원은 지역의 주거와 소비, 교통, 상권을 떠받치는 핵심 인구다. 대학이 사라지면 원룸과 식당, 카페, 서점 등 주변 상권이 함께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젊은 인구가 지역에 머물 이유도 줄어든다. 대학 진학을 위해 지역을 찾는 청년이 사라지고, 졸업 뒤 지역 기업에 취업하거나 정착할 가능성도 함께 낮아진다.
전문가들은 지방대 폐교가 지역 소멸을 앞당기는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학교 한 곳의 폐교가 지역 경제 침체와 인구 유출로 이어지고, 다시 정주 여건 악화와 추가 인구 감소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사기획 창’은 실제 폐교 지역의 상황을 통해 대학 붕괴가 지역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들여다본다.
15년 뒤 학령인구 24만 명
KBS 1TV ‘시사기획 창-대학 부도의 날’ 예고편. / KBS 제공
대학이 맞닥뜨릴 위기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올해 대학 입학 연령대 학령인구는 5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15년 뒤에는 약 24만 명까지 줄어 현재의 절반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 수가 줄더라도 모든 대학이 같은 비율로 학생을 잃는 것은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선호도 높은 대학부터 정원을 채운 뒤 지방대가 남은 학생을 두고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같은 대학 정원이 유지된다면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미충원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일부에서는 상당수 지방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문제는 대학 구조조정의 부담이 지방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대학 정원 감축은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 중심으로 진행됐다. 반면 서울 주요 대학은 높은 경쟁률과 수도권 집중을 바탕으로 정원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다.
서울 대학도 정원 감축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과 수도권 대학도 정원 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서울 대학이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일부 서울 주요 대학은 해외 명문대와 비교해 학부생 수가 지나치게 많아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서울대학교 학부 재학생은 약 1만7000명이며,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는 각각 약 2만 명 수준이다. 반면 미국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 스탠퍼드대학교의 학부생 규모는 약 7000명 수준이다.
대규모 학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강의당 학생 수가 늘고, 교수와 학생 간 상호작용이 줄어드는 등 교육 여건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대학의 정원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면 수도권 대학의 교육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지방대에 가해지는 일방적인 구조조정 압박도 완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 정책의 원칙은 무엇인가
KBS 1TV ‘시사기획 창-대학 부도의 날’ 예고편. / KBS 제공
지난 30년간 정부의 대학 정책은 확대와 구조조정 사이를 오갔다. 1990년대에는 대학이 부족하다며 설립 규제를 완화했고, 이후 학령인구가 줄자 학생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을 골라 재정 지원을 중단했다.
정부 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대학이 다시 정부 정책에 의해 문을 닫는 상황이 반복된 셈이다.
‘시사기획 창’은 교육부에 대학 수 급증과 학령인구 감소, 폐교 정책으로 이어진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는지 묻는다.
KBS 1TV ‘시사기획 창-대학 부도의 날’ 예고편. / KBS 제공
지방대만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이 지역 불균형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주목한다. 대학 폐교를 시장 경쟁의 결과로만 볼 것인지, 지역 균형 발전과 고등교육의 공공성 차원에서 접근할 것인지도 핵심 쟁점이다.
학생이 줄어드는 미래는 이미 예고돼 있다. 어떤 대학을 남기고 어떤 방식으로 정원을 조정할 것인지에 따라 지역과 고등교육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KBS 1TV ‘시사기획 창-대학 부도의 날’ 편은 28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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