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정부가 먹거리 담합을 겨냥해 역대급 과징금을 부과하고 식품업계에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CJ제일제당과 오뚜기, 롯데칠성음료, 사조그룹 등 주요 식품기업이 한 달 사이 주요 제품의 가격을 잇달아 올렸거나 인상을 예고했다.
기업들은 고환율과 원재료·포장재·물류비 상승을 이유로 내세운다. 중동 전쟁과 해상 수송로 불안도 새로운 비용 변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가격 인상 직전 기업들의 실적은 대체로 개선됐다.
<뉴스락>뉴스락>은 정부의 담합 단속에도 식품 가격이 다시 오르는 배경과 전쟁 리스크가 실제 원가에 미친 영향, 과점시장에서 반복되는 가격 인상의 구조를 짚어봤다.
전쟁이 키운 원가 부담…포장재·물류비 동시 압박
정부가 식품업계의 담합과 독과점 행위를 옥죄고 있지만 주요 먹거리 가격은 다시 오르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 설탕 가격을 담합한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에 총 40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부는 밀가루와 전분당, 계란 등 다른 먹거리 품목으로 조사 범위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CJ제일제당은 햇반·만두·생선구이 등 27개 품목 가격을 평균 8% 올리기로 했다. 햇반 인상률은 평균 12%다.
오뚜기는 카레·당면·케첩·후추 등 29개 품목의 출고가를 조정했다. 후추류는 평균 17%, 당면류는 10% 오른다.
롯데칠성음료는 44개 음료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했고, 사조그룹도 참치캔 10%, 수산 통조림 20%, 장류와 식용유지류 12% 인상을 예고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반기를 든 것처럼 보이지만 가격 인상과 담합은 법적으로 다른 문제다.
경쟁사들이 가격과 인상 시기 등을 사전에 합의하지 않았다면 개별 기업의 가격 조정은 경영 판단에 해당한다.
다만 정부가 담합 제재와 가격 인하 압박에 나선 직후 대형 식품기업들이 잇달아 가격을 올렸다는 점은 행정적 압박만으로 민간 가격을 장기간 통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들이 주장하는 비용 부담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은 국제유가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과 해상운임, 선박 보험료를 밀어 올릴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생산·냉장·운송비가 증가하고, 나프타에 연동되는 페트병과 필름 등 석유화학계 포장재 가격에도 상승 압력이 발생한다.
음료업계는 캔과 페트병 등 포장재 비중이 높고 일부 원액을 수입한다. 수산 통조림은 원양 조업과 해상운송 과정에서 유류비와 운임의 영향을 받는다. 후추와 카레 원료 등 수입 농산물도 환율 변동에 민감하다.
반면 국내산 쌀을 사용하는 즉석밥은 국제 곡물가격보다 용기와 에너지·물류비 등 간접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는다. 모든 제품을 ‘전쟁발 원가 상승’이라는 동일한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 음료업계 관계자는 “지정학적 불안이 커지면서 당초 예상보다 포장재와 운송 관련 비용 부담이 빠르게 확대됐다”며 “원재료 가격뿐 아니라 환율과 물류비가 동시에 움직인다는 점이 부담”이라고 말했다.
식품산업 전문가는 “수입 원료와 해상운송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전쟁과 환율 영향을 실제로 받을 수 있다”면서도 “제품마다 원가 구조가 다른 만큼 이를 모든 가격 인상의 포괄적인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적은 개선…'생존'보다 '수익성 방어'
가격 인상 직전인 올해 1분기 실적은 기업들의 ‘한계 상황’ 주장과 온도 차를 보인다.
CJ제일제당은 바이오 부진으로 전사 영업이익이 감소했지만, 가격 인상 품목이 포함된 식품사업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9%, 11.2% 증가했다.
오뚜기는 매출 9552억원, 영업이익 594억원으로 각각 3.7%, 3.3% 늘었다.
롯데칠성음료의 영업이익은 478억원으로 91.2% 증가했고, 가격 인상 대상이 포함된 음료 부문 영업이익도 211억원으로 62% 늘었다.
사조대림 역시 매출 8863억원, 영업이익 238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보다 개선된 흐름을 보였다.
기업 존립이 위협받을 정도의 실적 악화로 보기는 어렵다.
이번 가격 조정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보다 원가 상승으로 이익률이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익성 방어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제학계 관계자는 “기업의 전체 영업이익이 늘었다고 개별 제품의 원가 부담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실적이 개선된 상황에서 생존 논리를 강조하려면 가격을 올린 품목의 원가율과 수익성 변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회사 전체 실적에는 해외사업 성장과 판매량 증가, 제품 구성 변화, 비용 절감 효과가 함께 반영된다.
특정 제품의 원가율이 악화되는 상황과 기업 전체의 영업이익 증가는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가격을 올린 제품의 원재료비와 포장비, 물류비 증가 폭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햇반을 12%, 후추를 17%, 수산 통조림을 20% 올려야 했던 구체적인 산식을 확인하기 어렵다.
합의 없어도 가격은 따라간다.
국내 가공식품 시장은 품목별로 소수 대형 업체의 브랜드와 유통망이 강한 구조다.
이런 시장에서는 선도 업체가 가격을 올린 뒤 판매량이 크게 줄지 않으면 경쟁사도 가격을 조정하기 쉬워진다. 명시적인 합의가 없어도 경쟁사의 결정을 기준점으로 삼는 가격 추종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법적 담합과는 다르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결과는 비슷하다. 여러 기업이 순차적으로 가격을 올리면 저렴한 대체 제품을 선택할 여지가 줄어든다.
유통업계 전문가는 “시장점유율이 높은 업체가 가격을 조정하면 경쟁사들도 소비자 반응과 유통 현장의 판매 추이를 살피게 된다”며 “선도 업체의 인상 가격이 사실상 시장 전체의 기준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정부가 모든 가격 인상을 일률적으로 억제하면 사실상 가격 통제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며 “그동안 누적된 원가 부담이 일정 시점에 한꺼번에 반영돼 오히려 가격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책의 초점은 가격 인상 자체를 막는 데 두기보다 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맞춰야 한다”며 “경쟁사 간 민감한 정보가 오갔는지 살피는 동시에 기업이 주장하는 원가 상승 폭과 실제 인상률이 적정한지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기업들도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원재료비와 포장재비, 물류비 증가율과 가격 반영 수준을 제시해야 한다”며 “전쟁과 고환율을 이유로 가격을 올렸다면 유가와 환율이 안정된 이후에는 가격 인하나 할인 확대 등 소비자 부담 완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원가 상승분은 소비자에게 전가하면서 원가 하락분은 기업의 이익으로 남기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불가피한 가격 조정’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며 “이번 인상은 정부에 대한 반기나 기업 생존의 문제라기보다 전쟁발 비용 충격과 정부의 가격 억제, 과점시장의 가격 추종, 기업의 수익성 방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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