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안 하셨으면 30분 이상 대기하셔야 해요."
지난 24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종로5가역 인근 약국거리에 위치한 A의원 대기실. 탈모 성지로 유명한 곳답게 예약 대기자가 넘쳐났다. 이날 반차를 내고 병원을 찾았다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처방전과 약값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인터넷 검색 끝에 종로5가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예상보다 긴 대기 시간에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김씨가 이날 지불한 금액은 진료비 9900원, 약값 1년 치 10만8000원이다. 동네 일반 병원에서 처방받으면 진료비 1만~2만원대, 약값 1년 치 기준 15만원 안팎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저렴하다. 진료를 마친 김씨는 "온누리페이 7% 할인까지 받아서 1년 치 약값 비용이 10만원도 안 된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날 종로5가 길목에 '탈모전문'이라는 간판을 크게 내건 병원 대기실에도 젊은이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 탈모성지 병원 상당수가 탈모 상담을 하고 의사가 처방하기까지 짦게는 30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처방 이력이 있는 손님은 심지어 진료실 의자에 채 앉기도 전에 처방이 끝났다는 경험담도 전해진다. 진료 후 처방전을 받은 이들은 곧장 계단 아래 약국으로 향했다.
◆ 약국거리 새 손님은 젊은 층···본격 휴가철 앞두고 비만치료제 찾는 여성들까지 '북적'
종로5가 약국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약사 이모씨(60대)는 "젊은 남성들 대부분은 탈모약 처방전을 들고 온다"며 "약값이 싸다는 소문이 나면서 많이 찾아온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바쁘다"고 말했다. 이씨는 손바닥 두께를 훌쩍 넘는 처방전 묶음을 보여주며 "오늘 들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젊은 남성층의 탈모 고민은 병원을 찾는 환자 수에서도 엿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탈모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23만7009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탈모 치료를 받은 20대는 3만5803명, 30대는 5만712명이다. 20·30대가 전체 환자 중 36.5%를 차지했다.
최근 종로5가 약국거리의 새로운 고객으로 젊은 여성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다이어트를 하려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2030세대 사이에서는 종로와 마운자로 용어를 합친 '종로자로'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약사 박모씨는 "20·30대 여성들 문의가 지난 6월부터 부쩍 늘기 시작했다"며 "(마운자로나 위고비 처방을 받으려면) A병원 가격이 괜찮다"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이곳 인근 통증의학과 병원은 온라인상에서 '마운자로 성지'로 통한다. 처방전 비용은 5000원이다. 일반 동네 의원 진료비가 통상 1만~1만5000원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하 수준이다. 마운자로 가격 역시 최대 1만원가량 차이 났다. 1단계(2.5㎎)는 27만5000~28만원, 2단계(5㎎)는 36만5000~37만5000원 수준이었다. 3단계(7.5㎎)와 4단계(7.5㎎)는 53만원으로 비교적 비슷한 가격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방문한 20대 여성 이모씨는 "1만원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같이 왔다"며 "동네와 비교하면 1만~2만원가량 저렴해 오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스비즈맵이 종로5가 약국 상권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시장 규모는 141억6000만원에 달한다. 젊은 소비층 유입이 늘면서 약국 상권의 고객 구조도 변화했다. 이용 건수가 22만4785건으로 전월보다 2.2% 늘었지만 평균 결제 단가는 6만2988원으로 오히려 0.9% 줄었다. 20·30대 고객층이 증가했지만 소비 패턴은 '가성비' '절약형'으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종로5가 약국거리의 변화는 약국 상권의 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60대 이상 고객이 주를 이뤘던 공간이 이제는 탈모와 비만 관리 수요를 좇는 2030세대로 재편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탈모 치료와 다이어트는 단기간에 끝나는 소비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영역"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선 외모 관리와 자신감 회복과도 연결되는 만큼 지출을 완전히 줄이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20·30대는 인터넷을 통해 가격 비교에 익숙한 세대"라며 "고물가 국면에서 의료 분야에서도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가 확산되면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채널로 수요가 쏠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탈모치료제와 비만치료제를 둘러싼 처방 관행에 대한 오남용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병원 대기 시간은 길지만 전문의 상담은 대부분 1~2분에 불과해 환자 상태나 복용 목적을 충분히 따져보지 않은 채 '공장형 처방'이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비만치료제는 특히 이런 우려가 크다. 정상 체중임에도 대부분 병원에서 손쉽게 처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체질량지수(BMI) 30 이상 고도비만 또는 BMI 27 이상이면서 고혈압 등 동반질환이 있는 성인 과체중 환자에 한해 처방을 권고하고 있다.
식약처는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오남용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일부 비만치료제를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하는 고시 개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신중한 처방과 사용이 필요하다"며 "해당 의약품은 비만에 해당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허가된 용법대로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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