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에 밀려 지난 5월 루마니아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IFV) 수주전에서 독일 라인메탈에 고배를 마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 자주포 시장을 정조준하며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미국 자주포 수주전 역시 경쟁 상대가 나토 회원국들이지만 격전지가 미국인 데다 최근 미국이 국방 조달에서 중요하게 보는 현지화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철저히 대응하고 있어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미 육군은 조만간 ‘차세대 차륜형 자주포(MTC)’ 개발 사업의 시제품 제작 및 시험평가를 수행할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 시제품 12대 인도...테스트 거쳐 내년 말 양산 업체 선정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달 중 최대 12대 규모의 시제품 제작·시험평가 업체가 선정되고 선정된 시제품은 오는 9월까지 인도될 예정이다. 미 육군은 2027년 실전 테스트·성능 검증을 거쳐 같은 해 4분기 최종 양산 사업자를 확정짓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번 달에 결정되는 것은 최종 수주가 아닌 시제품 개발 기업이다. 그럼에도 시제품 개발사 선정 단계에 진입하는 것 자체로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인 미국 지상무기 조달 체계의 첫 관문 통과라는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화에어로 관계자는 “28일 현재 MTC 사업과 관련 미국 측으로부터 시제품 제작·시험평가 업체가 선정됐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MTC 프로젝트는 미 육군이 운용 중인 155㎜ M777 견인포를 대체하기 위한 차륜형 자주포 도입 사업이다. 견인포와 달리 자체 이동 능력을 갖춘 자주포는 사격 후 신속하게 진지를 이동할 수 있어 적 포병 전력과 미사일을 찾아 타격하는 대화력전 능력을 제고할 수 있다. 동시에 아군 포대의 생존성도 증대시킨다.
▲ 한화에어로, 궤도형 K9 기반 차륜형 ‘K9MH’ 제안
미 육군이 자주포 현대화에 나선 배경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사격 이후 신속히 위치를 이탈하는 ‘슛 앤 스쿠트’ 능력이 포병 부대의 생존성과 직결되면서 기존 견인포 대신 기동성이 높은 차륜형 자주포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방산업계에서는 MTC 사업 규모가 500문에 달하며 최대 10조원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종 도입 물량과 양산 금액은 시험평가와 예산 심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는 궤도형 K9 자주포를 기반으로 개발한 차륜형 모델 'K9MH'를 미국 측에 제안했다. 이 모델은 K9A2 자동화 포탑을 8×8 차륜형 섀시에 얹은 형태다. 155㎜ 52구경장 CN98 주포를 장착해 나토 표준 곡사포 규격을 준수하며 로켓보조탄 사용 시 사거리 60㎞ 이상, 분당 최대 9발의 발사속도를 낼 수 있다.
이번 수주전에는 한화에어로 외에도 독일 라인메탈, 영국 BAE시스템즈, 이스라엘 엘빗시스템즈 등 글로벌 방산 기업들이 모두 참전했다.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GD)도 이번 수주전에 합류해 치열한 5파전 구도가 예상된다.
▲ K9MH에 K10 탄약운반차량 포함 패키지 부각
한화에어로는 ‘K9 자주포 패키지’를 앞세워 경쟁사들보다 비교우위에 있음을 미국 측에 부각하고 있다. K9 자주포 패키지는 K9MH에 K10 탄약운반차량까지 포함된 종합 포병체계다.
미 육군이 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MTC가 포함된 포병 연구개발 예산은 지난해 7677만달러에서 7억919만달러로 824% 증액됐다. 기존 팔라딘 자주포 성능 개량 사업에 쓰려던 예산을 MTC와 탄약운반차 사업용으로 전환한 것이다.
미 육군에서 탄약운반차 도입까지 감안해 증액된 예산을 배정받았음에도 라인메탈을 포함한 경쟁사들의 경우 탄약보급체계가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주전의 핵심 변수는 현지 생산 역량이다. 미 육군이 자국 탄약과의 호환성, 기술자료 권리 확보, 공급망 구축 능력을 주요 평가 요소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자동 장전체계의 안정성, 화력지휘망 연동 능력 등도 새롭게 입증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국방 조달에서 자국산 우선 조달 기조를 강화해 온 만큼 단순 K9MH 완제품 수출이 아니라 미국 내 생산·공급망 자체를 이식하는 전략이 승부수란 평가다.
▲ 한화디펜스USA, 통합·시험 시설 구축...현지화 안간힘
이에 한화에어로는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미국 법인 한화디펜스USA는 지난 4월 미국 앨라배마주 오펠라이카에 위치한 유휴 공장을 3년간 약 200만달러에 임차해 K9MH 시제품 통합·시험 시설 구축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지난 1월에는 미 육군으로부터 아칸소주 제퍼슨 카운티 소재 파인블러프 조병창 부지 사용권(예비 임대계약)을 받아 13억달러 규모를 투자해 탄약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 계약은 세부 협상과 실사를 앞둔 예비 단계에 있다.
다만 시제품 통합·시험시설인 만큼 향후 대규모 양산에 대비한 생산라인과 현지 부품 공급망의 추가 확보는 한화에어로의 몫이다. 양산 단계에서 미국 내 조달 비중을 얼마만큼 증대시킬지 여부도 수주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화에어로가 첫 관문을 통과한다면 미 육군의 실사격과 장병 운용평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후 시험평가 결과와 현지 생산계획 이행 여부가 최종 양산 사업자 선정의 당락을 결정짓게 된다.
이번 사업은 유럽 시장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내 생산 기반과 공급망 구축, 성능, 납기 준수 등이 핵심 평가 요소로 꼽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동맹국의 생산 역량을 자국 공급망에 편입시키려는 기조 역시 한화에어로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 육군이 전력 공백을 빠르게 메워야 하는 만큼 참여 기업이 제시한 자주포의 성능은 변별력을 갖기가 어렵다고 본다“며 ”오히려 지정된 기한 내에 안정적으로 시제품을 완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 도입 가격뿐 아니라 후속 군수지원과 정비비용을 포함한 총 수명주기 비용, 양산 전환 과정의 개발 위험 등이 사업자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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