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 비대기 맞았지만 '수분 부족'해 크기 작년 70~80% 수준
열하루째 폭염특보에 강수량 태부족…저수율은 40%대로
(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 "원래는 주먹 두 개 합친 것만큼 굵어져야 하는데, 비가 안 오니 통 크질 않네요."
28일 오전 8시께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한 배 과수원.
8천평 규모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안모(49)씨는 과수에 물주기 위한 관수 장비를 새로 설치하거나 점검하느라 나무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서생면에서 28년째 배 농사를 지어온 안씨지만, 올해 같은 극심한 가뭄은 좀처럼 겪어보지 못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예년 같으면 7월 말은 과실이 한창 굵어지고 당도가 높아져야 할 비대기(肥大期)다.
하지만 올해 여름에는 이달 들어 계속된 극심한 폭염과 가뭄 탓에 배나무마다 이파리가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안씨가 하루 3시간 남짓 자면서 24시간 관수 시설을 가동하고 있지만, 바짝 마른 토양에 지하에서 끌어올리는 수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과수원 전 구역 수압을 유지하고 골고루 물을 주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노즐을 옮겨 끼우고 밸브를 여닫는 고된 작업을 몇시간마다 반복해야 한다.
더위 탓에 노후 파이프가 터지거나 노즐이 막히는 일도 비일비재한데, 물길이 잠시라도 막힌 구역은 어김없이 잎이 노랗게 변하고 과실이 말라가고 있었다.
안씨는 "잠도 못 자고 파이프를 고쳐서 물을 대고 있는데 과수원 전체를 골고루 적시기엔 역부족"이라며 "다음 주에도 비 소식이 없는데 이대로라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고 호소했다.
서생면은 원래 풍부한 일조량과 해풍 덕에 배 농사를 짓기에 최적의 입지를 갖춘 곳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지속된 가뭄에 수확을 앞둔 과실 크기는 좀처럼 커지지 못하고 있다.
그는 "토양 습도가 떨어지면 나무가 열매의 수분을 다시 빼앗아 가 알이 작아지고 맛도 떨어진다"며 "조만간 수확인데 과실 크기가 작년 대비 70∼8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다른 농가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올해 첫 수확에 나선 서생면 위곡리의 한 1만평 규모 배 농원에서는, 보통 때라면 전체 수확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해야 할 대과(大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배 분류 작업을 하던 한 농민은 "작년엔 장마 때 비라도 적절히 와줬는데, 올해는 비가 거의 안 오는 마른장마에 폭염만 이어졌다"며 "원래 중과(中果)로 분류하던 과일 크기를 올해는 대과로 분류해야 할 정도로 생육이 안 좋다"고 털어놨다.
관수 시설을 갖추지 않은 소규모 농가들은 대책 없이 가뭄을 견디고 있다.
안씨는 "그나마 관수 시설이 있는 집은 힘들어도 물이라도 대지만, 그렇지 않은 집들은 그 정도 수분조차 유지하지 못한다"며 "이렇게 비쩍 마른 상태에서 갑자기 비가 오면 과육이 수분을 급격히 흡수해 터지는 '열과'(裂果) 피해를 보기 십상이라 다들 밤잠을 설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수천만원대 관정 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은 대부분 농가는 공공 용수에 의존해야 하지만, 부실한 농업용수 인프라로 인해 농가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서생면 위곡마을 농민들에 따르면 인근 마을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양수장 펌프 2개 중 1개는 수년 전 고장 난 뒤 철거됐다.
그나마 최근 몇 년간은은 제때 비가 와서 거기에 의지하며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는 비조차 오지 않아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실제로 이날 방문한 한 과수원에서는 관수 시설 밸브를 열어도 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바짝 마른 배나무 아래에는 물을 주지 못해 녹지 못한 비료 알갱이들이 하얗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최건오 위곡마을 이장은 "농업용수만 제대로 공급됐다면 작황이 이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을 것"이라며 "관계 기관이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양수장 복구 등 실질적 농업용수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8일 울산 전역에 발효된 폭염주의보는 22일 경보 단계로 격상된 뒤 이날까지 열하루째 유지되고 있다.
이달 들어 현재까지 울산지역 누적 강수량은 28mm로 평년(285.1mm)의 9.8% 수준에 그쳤다.
울산지역 82개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이달 3일 59.8%를 기록한 이후 줄곧 떨어져 이날 44.6%(평년 대비 81.1% 수준)까지 급감했다.
jjang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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