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선 거물도, 3선 주지사도 무너졌다. 미국 정치권을 뒤흔든 민주사회주의(DSA) 돌풍의 본질은 기득권 정치의 무능과 안주에 대한 유권자들의 엄중한 심판이었다. 오는 8월 17일 전당대회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이 계파 간 세력 다툼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정 운영을 책임진 여당에 대해 서민들의 절박한 삶과 분리된 정치를 향한 민심의 경고음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 거물들을 줄줄이 무너뜨린 2030 신예들의 돌풍
미국 정치에서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매카시즘과 극단적 반공주의의 그늘 아래 금기시되어 온 불온한 표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오래된 금기는 민주당의 권력 지형을 아래에서부터 흔드는 파괴적인 동력으로 부상했다.
2016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터뜨린 균열의 물꼬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이라는 풀뿌리 정치 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이들은 밖에서 외치는 제3당 투쟁 대신, 민주당 예비선거(경선)라는 정당 내부 시스템에 적극 출마해 난공불락 같던 기득권 현역 정치인들을 상대로 릴레이 승리를 거두었다.
가장 결정적인 이변은 2018년 뉴욕주 제14 지역구 민주당 경선에서 터져 나왔다. 당시 28세의 무명 정치 신인이자 DSA 소속이었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는 차기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확실시되던 20년 경력의 10선 현역 조 크롤리 의원을 예비선거에서 완파했다. 막강한 정관계 네트워크, 압도적인 정치자금, 단단한 조직력을 갖춘 거물 정치인이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며 학자금 상환을 걱정하던 20대 여성에게 자리를 내준 사건은 미국 정당 역사상 손꼽히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이러한 반란은 일회성 이변에 그치지 않고 거세게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뉴욕시장 선거에서는 34세의 인도계 무슬림 청년 조란 맘다니가 3선 주지사 출신의 앤드루 쿠오모를 제치고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맘다니 발 민주사회주의 돌풍은 미국 전역으로 무섭게 확산하며 기성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연방하원 예비경선에서 현역 거물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지난 6월 콜로라도 제1선거구(덴버) 경선에서는 29세의 에티오피아 이민자 출신 변호사 멜라트 키로스가 30년 이상 의석을 지켜온 15선 현역 다이애나 디게트 의원을 51.3% 대 41.7%로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뉴욕주 연방하원 경선에서도 맘다니 시장이 지원 사격한 민주사회주의계 신예들이 대거 등장했다. 제13선거구에서는 반인종차별 운동가 출신 다리알리자 아빌라 슈발리에가 5선 현역 아드리아노 에스파이야트 의원을 꺾었고, 제7선거구에서는 클레어 발데스 뉴욕주 하원의원이 큰 표 차 승리를 거두었다. 제10선거구 역시 맘다니의 오랜 동지인 전 뉴욕시 감사관 브래드 랜더가 현역 대니얼 골드먼 의원을 제압했다. 비주류에 머물던 민주사회주의 세력이 마침내 뉴욕 민주당의 판도를 바꿀 세력으로 부상했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돌풍이 거세다. 미국 서부에서는 '시애틀의 맘다니'로 불린 케이티 윌슨이 올 1월 시애틀 시장에 취임하며 맘다니에 이어 두 번째 대도시 민주사회주의자 시장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수도 워싱턴 D.C.에서도 DSA 출신 재니스 루이스 조지가 시장 예비경선에서 승리해 본선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더해 식당 노동자이자 셰프 출신의 한국계 2세 정치인 프란체스카 홍 위스콘신주 하원의원이 DSA의 지지 속에 주지사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위스콘신의 맘다니'를 자처하고 나섰다. 백인 비중이 80%에 달하는 중서부 보수 표심의 한가운데서 무상 보육과 돌봄 휴가 등 생활밀착형 공약을 내건 30대 유색인종 여성이 초기 여론조사 선두권에 포진하며 기성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이들 신예가 굵직한 거물급 정치인들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바탕에는 관념적 이념이 아닌 서민의 일상을 직격하는 '생활 밀착형 공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세입자 보호, 임대료 동결, 시내버스 무료화, 보편적 무상 보육 및 교육, 최저임금 인상 등 고물가와 주거 절벽으로 삶이 피폐해진 민초들의 일상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당신들의 일상이 왜 고통스러운지, 정치가 당장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담대한 공약 앞에 "조금씩 개선하겠다"며 기득권의 안전지대(Comfort Zone)에 안주하던 기성 정치인들의 점진주의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8·17 전당대회 앞둔 더불어민주당... 불평등 완화 대신 계파 정쟁 매몰
20여 일 뒤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앞둔 더불어민주당은 태평양 건너 불어오는 역동적인 변화의 바람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현재 한국 사회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중고 속에서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자영업자의 폐업과 청년층의 고용·주거 불안이 이어지는 등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심화하고 있다. 서민층의 생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집권당의 전당대회에서 불평등을 해결하고 민생을 살릴 담대한 정책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친명이냐 친청이냐'라는 계파 간 주도권 다툼이다. 상대 진영의 실책을 공격하고 당권을 잡기 위한 공학적 셈법에 정당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사이,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의 강령 전문 첫머리에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내 지분을 둘러싼 대립에 몰두할 뿐, 양극화를 극복하고 서민의 삶을 지켜낼 구체적이고 과감한 민생 비전 제시에는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기득권 안주' 더불어민주당에 던지는 3가지 준엄한 경고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의 돌풍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3가지 준엄한 경고를 보낸다.
첫째, 계파 싸움을 멈추고 불평등 완화라는 민생 경쟁으로 전환하라.
전당대회가 특정 파벌의 주도권을 확인하는 정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답게 주거·소득 불평등과 자산 양극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대안을 두고 정책 대결을 펼쳐야 한다. 유권자의 일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세력 싸움은 대중의 냉정한 외면을 피할 수 없다.
둘째, 엘리트 중심의 닫힌 구조를 깨고 2030과 풀뿌리 세대교체를 수용하라.
미국에서 바텐더와 식당 노동자 출신 신예들이 기성 주류 정치를 흔들었듯, 민주당 역시 기득권 중심의 정당 운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장의 삶을 체감해 온 미래 세대와 서민의 목소리를 당의 핵심 의제로 세우고 과감한 세대교체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정당으로서의 확장성과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셋째, 야당의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에 안주하지 말고 집권당으로서 국정 성과와 쇄신으로 평가받아라.
20년 차 10선 현역 의원도, 거대 정치 가문의 주지사도 시민의 삶을 지키지 못했을 때 유권자들의 냉혹한 평가 앞에 고배를 마셨다. 민주당이 국정 성과와 자체 쇄신 없이 상대 정당의 실책에만 기대려 한다면, 기득권 전체를 향한 민심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는 존재 이유를 증명할 때
미국 민주당의 거물들을 연이어 물리치며 자본주의의 심장부를 뒤흔든 민주사회주의의 돌풍은 전당대회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서늘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성 정치가 서민의 일상을 지켜주지 못할 때, 민심은 바닥에서부터 기득권을 흔든다."
민주당이 당권을 둘러싼 정치공학적 셈법과 계파 줄 세우기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이번 전당대회는 서민의 삶과 무관한 '그들만의 잔치'이자 '기득권의 안주'로 평가절하될 위험이 크다. 집권당으로서 국정 동력마저 상실할 수 있다. 민주당이 당 강령에 적힌 그대로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바꿀 담대한 비전을 내놓으며 정당 본연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낼 수 있을지, 국민의 눈과 귀가 8월 17일 전당대회장을 향하고 있다.
[폴리뉴스 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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