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유럽이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에 휩싸이면서 냉방 인프라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5월 말부터 시작된 이른 더위는 스페인·프랑스·독일 등 주요국의 기온을 연일 최고 기록으로 끌어올렸고,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며 온열질환 사망자가 급증했다. 에어컨 없이도 버티던 온화한 기후에 의존해온 유럽의 가정용 냉방 보급률은 여전히 10% 수준에 머문다.
뒤늦게 에어컨 설치 수요가 폭발했지만, 이번에는 전력망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냉방 부하가 급증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전력 도매가격이 하루 만에 30% 가까이 치솟는 등, 여름철 피크 부하가 전력 시스템의 새로운 취약 지점으로 부상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폭염이 ‘이례적 사건’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상수가 되면서 냉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인프라가 됐다. 문제는 냉방 수요가 커질수록 피크 부하가 냉방 시간대에 집중되고, 산업 현장과 대형 건물의 냉방 부하는 국가 전력망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고밀도 전력을 소비하는 AI 데이터센터의 급증까지 겹치면서, 여름철 전력 수급 관리는 정책·산업계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이 상황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늘어나는 냉방 수요를 모두 전기로만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과 함께 오래된 기술 하나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열’로 냉방을 만드는 흡수식 냉동기다.
전기 대신 ‘열’을 쓰는 냉방, 흡수식 냉동기란
흡수식 냉동기는 전동 압축기를 돌려 냉매를 압축하는 일반 전기식 냉동기와 달리, 증기·온수·가스 연소열 등 ‘열’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설비다. 공장 배기가스나 공정 폐열, 열병합발전소에서 남는 잉여열까지도 냉방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전기를 거의 쓰지 않고 열로 차가움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이 오래된 기술이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세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전력 피크 분산 효과다. 여름철 냉방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에 흡수식 냉동기를 활용하면, 건물과 산업 현장의 냉방 부하를 전기에서 열로 옮길 수 있다. 같은 냉방을 하더라도 전력망에 걸리는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대형 건물·산업단지·병원 등 피크 부하 기여도가 큰 시설에서 열 기반 냉방 비중을 늘리면, 국가 전체의 여름철 전력 피크 관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둘째는 폐열 활용이다. 그동안 공장에서 버려지는 배기가스와 공정 폐열, 열병합발전소의 잉여열은 주로 겨울철 난방용으로만 인식돼 왔다. 하지만 흡수식 냉동기와 연결하면 이 열은 여름철 냉방 에너지로 전환된다. 계절에 따라 버려지던 열이 사계절 내내 활용되는 자원으로 격상되는 셈이다. 유럽에서 폐열 기반 지역난방을 넘어 ‘지역냉방’까지 논의가 확장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같은 네트워크와 열원을 활용해 난방과 냉방을 모두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셋째는 에너지 비용 리스크 관리다.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단일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냉방 구조는 그 자체로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전기요금이 급등하는 시기에 열 기반 냉방이라는 대안을 가진 사업장과 그렇지 못한 사업장 사이의 운영비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전기·열을 병행해 쓰는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비용·리스크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폐열 회수 기술과의 결합…굴뚝 열이 냉방 에너지로
물론 흡수식 냉동기가 만능 해법은 아니다. 설비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열원을 확보해야 하며, 초기 투자비에 대한 경제성 검토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산업단지, 병원, 대형 상업·업무시설, 지역냉난방 등 열원과 냉방 수요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에서는 이미 오랜 기간 검증된 기술로 평가받는다.
관건은 안정적인 열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있다. 이 지점에서 최근 주목받는 것이 폐열 회수 기술이다. 산업 현장에서 버려지는 열 중에서도 특히 배기가스에 포함된 수증기의 잠열은, 회수가 어렵다는 이유로 사실상 포기된 영역이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백연)에 숨어 있던 에너지가 그대로 대기로 사라져온 것이다.
최근에는 배기가스 수분을 흡수해 백연을 줄이는 동시에 응축 잠열을 회수하는 ‘잠열역흐름시스템(LHBS)’과 같은 기술이 등장하면서, 이 버려지던 잠열까지 활용 가능한 열원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렇게 회수된 열을 흡수식 냉동기의 구동 열원으로 연결하면, 굴뚝으로 사라지던 열이 여름철 냉방 에너지로 되살아나는 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폐열 회수와 열 기반 냉방이 하나의 에너지 순환 고리로 묶이는 셈이다.
냉방 인프라 패러다임 전환 요구하는 폭염 시대
올여름 유럽의 경험은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첫째, 냉방 인프라 없이 폭염 시대를 맞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둘째, 냉방을 전기에만 의존할 때 전력망이 얼마나 빠르게 한계에 직면하는지다. 냉방은 더 이상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 인프라이고, 그 인프라를 어떤 에너지원으로 설계하느냐가 국가 에너지 시스템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폭염이 매년 반복되는 상수가 되고, 전력이 점점 더 귀해지는 시대일수록 “냉방은 곧 전기”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열의 흐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냉방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설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에 가깝다.
흡수식 냉동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냉방을 둘러싼 에너지 구조를 다시 짜지 않으면, 폭염과 전력난이 동시에 찾아오는 ‘이중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다. 전력 피크를 분산하고, 버려지는 열을 자원으로 전환하며, 냉방 인프라를 다원화하는 전략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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