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눈
'인공지능'을 빼고는 언론 기사는 물론이고 일상의 대화조차 불가능한 시대다. 미국과 중국은 AI 개발 속도를 놓고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는 마치 나라의 명운을 AI 산업 하나에 다 건 것마냥 막대한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밀어붙인다. AI와 그 방계 산업을 향한 들뜬 기대 때문에 지금도 한국 주식시장은 널뛰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다중의 열광과 기대에 반하는 회의와 비판의 발언을 꺼내기란 쉽지 않다.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가 한국 사회 전체의 미래에 결정적 의미를 지님에도 사회운동의 대응이 생각보다 느리거나 소극적인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개전이 몰고온 애국주의 광풍 속에서 당대 사회운동가들이 느낀 당혹감과 좌절, 실의가 새삼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래도 AI 광풍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 몇 권이 우리말로 나와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를 심층 취재한 카렌 하오의 <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임보영 옮김, 생각의힘, 2026)처럼 이미 대중적으로 읽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비판적 연구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케이트 크로퍼드의 <AI 지도책: 세계의 부와 권력을 재편하는 인공지능의 실체>(노승영 옮김, 소소의책, 2022)가 있고, 크로퍼드의 책을 좀 더 친절하게 상술한 듯한 제임스 멀둔 외,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김두완 옮김, 흐름출판, 2025)가 있다.
<AI 지도책>과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는 우리가 영특하고 쓸모 많은 대화 상대쯤으로 여기는 인공지능이 실은 자원과 노동, 인류의 지식과 창조력을 게걸스레 빨아들이는 '추출 기계'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런 전례 없는 대규모 추출 기계를 통해 자본은 이제껏 장악하지 못했던 '불가지'의 영역들, 즉 노동자의 숙련과 암묵지, 지구 위 모든 사회의 세세한 정보와 문화적 역량까지 철저히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범용인공지능(AGI)이 과연 등장할지, 이른바 '특이점'이 정말로 도래할지 등의 물음과는 별개로 AI 산업이 현재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문제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한 달쯤 전에 AI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또 다른 중요한 저작이 우리말로 선보였다. 이탈리아 학자 마테오 파스퀴넬리가 2023년에 낸 저작을 번역한 <주인의 눈: 인공지능의 사회사>(김상민 옮김, 동녘, 2026)가 그 책이다. <주인의 눈> 역시 <AI 지도책>이나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처럼 AI를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추출 기계로 바라본다. 하지만 비슷한 시각에서 접근하더라도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주인의 눈>만의 장점이 있다. 그것은 '인공지능의 사회사'라는 부제에서 잘 드러나듯이, 이 책이 역사적 접근법을 취한다는 점이다.
이미 산업혁명의 순간에 시작된 인간 지능의 추출과 재배치
<주인의 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산업화 시대"는 19세기 초 제1차 산업혁명의 순간을 포착한다. AI를 논하는 책에서 증기기관과 면방직기의 전성기를 다룬다니 '이상하다' 여길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눈>을 읽어보면, 그게 그렇지가 않다. 현대 인공지능의 출현에 이르는 기술 발전의 긴 여정이 바로 이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찰스 배비지가 컴퓨터의 먼 선조 격인 '계산 기계'를 만들게 된 동기는 노동자의 작업을 분석해 이를 기계에 맡기려 한 당대 자본가들의 고민과 밀접히 관련돼 있었다. 이런 뜻밖의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 이 책의 독서가 주는 첫 번째 즐거움이다.
"2부. 정보화 시대" 역시 흥미롭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대목이 좀 어려웠다. 인공지능 등장에서 결정적 계기가 된 20세기 중-후반 사이버네틱스 발전의 순간들을 서술하다 보니, 현대 과학기술사의 생경한 용어들 속을 헤매야만 했다.
그러나 낯선 용어들을 헤치고 나아가다 보면, 이 책의 메시지가 점점 뚜렷이 다가온다. <주인의 눈>은 인간 두뇌나 신경 체계에 대한 연구가 인공지능 개발의 토대가 됐다는 상식을 뒤집는다. 더 직접적인 자극을 준 것은 오히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통해 정보가 형성, 유통되는 사회적 과정에 대한 탐색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이미 '정설'의 지위를 차지한 상식을 정색하고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얻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이 지면에서 <주인의 눈>의 내용을 더 소개하려고 만용을 부리지는 않겠다. 이 책은 AI에 대한 기본 상식 정도만 있다면 누구든 직접 읽어볼 만하다. 더구나 기술생태학자 이광석 교수(서울과학기술대)가 쓴 해제("기계 지능의 진정 새로운 주인은 누구인가?")가 이 책과 만나려는 초심자들에게 훌륭한 안내문 역할을 한다.
나는 다만 "1부. 산업화 시대" 가운데에서도 특히 흥미로웠던 "3장. 기계 문제"와 "4장. 마르크스의 일반 지성의 기원"을 읽으며 든 단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 대목에서 저자 파스퀴넬리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더는 예전과 같은 시각으로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인상적인 지적을 한다.
인공지능의 본질이 '주인의 눈', 즉 노동을 지배하려는 자본의 시각에서 고안된 추출 기계이지만, 이것은 또한 인공지능의 먼 선조인 최초의 기계들의 본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추출'은 이미 200여 년 전에 시작됐다. 숙련 방직 노동자의 손노동이 역직기에 이전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여기에서 대번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역직기가 방직 노동자의 동작을 모방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지적돼왔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지능이나 지식과는 상관없지 않은가? 기계에 이전된 것은 인간의 '육체노동'이 아닌가?
이런 반문에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엄격히 구분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리고 파스퀴넬리의 지적에 따르면, '육체노동/정신노동'의 이분법은 초기 산업자본주의에서 노동운동가들 자신이 전술적으로 활용한 무기였다.
당시 노동운동가들은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정신노동'은 자본의 기능으로, '육체노동'은 노동의 기능으로 분류한 뒤에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이들의 독자적 단결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수력이나 증기기관과 연결된 기계가 '육체노동'의 일부를 전유함으로써 노동력을 헐값으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초기 사회주의자 중 일부에게는 '육체노동/정신노동'의 구별이 이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이렇게 일도양단으로 나눌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인간 노동의 특징이었다. 인간의 모든 육체적 활동은 역사적-사회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지능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역으로,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 역시 생산과 재생산을 포함하는 개인적-집단적 생활 과정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역직기에 이전된 것이 단순히 육체노동의 일부 동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방직 노동자의 손노동이 이전된 만큼 그런 동작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의 지식과 지능 또한 이전됐다. 마치 인공지능이 오늘날 노동자의 숙련과 암묵지를 추출하듯이, 역직기 또한 당대 방직 노동자가 체현하고 있던 오래 된 공동체적 지식과 역량을 추출해 자본의 직접적 지배 대상으로 탈바꿈시켰다. 초기 사회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윌리엄 톰슨은 이 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노동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항상 노동의 방향 설정에 필요한 지식의 양을 그 용어에 포함시켜왔다. 이 지식이 없이는 노동은 어떤 유용한 목적도 향하지 않는 완력에 불과할 것이다. 지식이 생산적 노동자에 의해서, 또는 그의 노동을 지시하는 자에 의해서 전체든 부분이든 어떤 비율로 소유되든, 그의 노동을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지식을 소유해야만 한다." (<주인의 눈> 146쪽에서 재인용)
파스퀴넬리가 환기시키는 이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고 나면, 인공지능이 달리 보인다. <주인의 눈>이 강조하듯이, AI의 출발점이 단순히 20세기 사이버네틱스의 모험이 아니라는 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이 자동 기계라는 새로운 무기를 활용해 노동자의 지식을 추출함으로써 이를 직접적으로 지배하려 한 시도야말로 진정한 출발점이다. 이 점에서 인공지능은 산업혁명으로 생산 현장에 등장한 모든 자동 기계의 정점이며 그 궁극적 귀결이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인지자본주의였다
파스퀴넬리는 이탈리아의 독특한 신좌파 사상인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의 계보에 속한 연구자다. 자율주의 사상가들은 정보화 혁명 이후의 현대 사회를 연구하면서 '인지자본주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좁은 의미의 생산 활동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인지 활동 전반이 자본 축적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조정환의 <인지자본주의>(갈무리, 2011)가 이런 입장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대표적 저작이다.
그런데 <주인의 눈>에 전개된 파스퀴넬리의 역사 재해석을 좀 더 밀고 나가면, 상당히 흥미로운 논리가 도출된다. 인지자본주의의 역사적 상한선이 인지자본주의론의 애초 연구 대상인 현대 자본주의를 넘어 과거(제1차 산업혁명)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아니, 아예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자본의 시초 축적 시기부터 인지 활동의 포섭과 전유, 재배치가 자본 축적의 핵심 고리였다고. 자본주의는 처음 탄생할 때부터 인지자본주의였다고.
역사적으로 자본은 늘 인간 사회의 지식과 지능을 대규모로 전유하고 재배치함으로써 한 시대의 축적 체제를 구축해왔다. 이런 지식과 지능의 전유, 재배치는 자본과 국가의 입장에서 생산성의 획기적 증대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중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되기도 하지만, 생산성 증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본 권력의 확대이고 이런 자본의 모체 역할을 하는 특정 국가들의 전 지구적 지위 상승이다.
물론 지식과 지능의 대대적 재배치는 이제껏 주로 커먼스 형태로 지식, 지능을 담지해온 대중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다. 생산, 재생산 등의 생활 과정과 분리되지 않았던 지식이 멀리 떨어진 곳(서유럽 식민주의 국가들)의 새로운 지식 생산-유통 시스템에 집적되거나, 인간 노동의 일부를 대신하는 자동 기계에 탑재되거나, 전면적 추출 기계인 인공지능에 대거 흡수된다. 그러면 대중의 상당 부분이 지식, 지능의 사회적 배치에서 주변으로 밀려나 전에 없던 시련에 부딪히며, 이 시련은 지적 역량의 새로운 배치를 새로운 투쟁력, 협상력의 근거로 반전시킬 때에만 비로소 해소된다.
이 짧은 글에서 감히 시도할 수 없는 과제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재서술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가령 대항해 시대 이후 상업자본주의 시기에 벌어진 일들, 즉 유럽인들이 열대에 진출해 식민지를 건설하고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전개되던 과정은 열대의 토착 지식이 식민 지배자들에 의해 전유되고 유럽 지식 시스템에 재배치된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열대 토착 지식의 전 지구적 이전, 재배치 과정이었다. 이를 통해 유럽 지배층과 나머지 대륙 주민들 간의 세력 균형이 전자에게 유리하도록 크게 뒤바뀌었다.
그 다음 단계로, <주인의 눈> 제1부가 밝히는 '기술 지능의 본원적 축적'(161쪽)이 시작됐다. 즉, 산업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이제는 식민 본국 내에서 생산자의 지식, 지능(대개 '육체노동'으로 협소하게 인식된 채로)이 기계를 통해 자본의 직접적 지배 대상이 되어갔다.
<주인의 눈>이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제2차 산업혁명 시기에 이런 기술 지능의 축적은 기계뿐만 아니라 '거대 기계'(루이스 멈퍼드, Pentagon of Power, 1974), 즉 기계와 결합된 전 사회적 국가-기업 관료 체계의 도움을 받아 전개됐다. 이 역시 민중의 생활세계에 뿌리 내렸던 지식, 지능의 전면적 재배치 과정이었으며, 이반 일리치는 '근원적 독점'이라는 말로 이 과정을 포착했다(Tools for Conviviality, 1973).
다만 이 시기는 대중의 상당수가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투쟁력, 협상력을 재건한 시기이기도 했다(대런 애쓰모글루 외, <권력과 진보>,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2023). 기계 설비의 중후장대화와 대량생산을 발판 삼아 대규모 산업별 노동조합을 건설한 자본주의 중심부 노동계급이 기술 지능 축적 과정의 중대한 교란 요소가 됐고, '거대 기계'의 성장에 따른 부수 효과로 국가-기업 관료체계의 운영자, 지식중간계급이 대거 육성됐다.
그러나 자본이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지식, 지능의 이러한 사회적 배열은 불과 한 세대도 버티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 지구화/금융화/정보화의 격랑에 휩쓸렸다. 이를 통해 우선 자본주의 중심부 노동계급의 투쟁력, 협상력이라는 첫 번째 장애물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다. 이 전 지구적 추출 기계는 인류의 지식, 암묵지, 지적 역량을 최종적으로 자본의 직접적 지배 아래로 이전, 재배치하려는 기획의 핵심 수단이다. 이 기획을 통해 지식중간계급마저 그 상당 부분이 와해될 게 확실하며, 기술 지능 축적의 최종 시도가 뒤에 남길 막대한 규모의 패배자들이 결국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중간 결산 정도는 가능하다. 이 모든 발상과 논의는 한 가지 지점을 가리킨다. AI는 결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특정한 산업 영역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를 위한 전 지구적 기획이다.
이런 역사적 국면에서는 이른바 '자생적' 운동과 '의식적' 운동을 나누던 고전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접근법이 새삼 현실적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사회운동의 '자생적' 수준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 기획의 승리를 상수로 놓고 그 피해의 최소화나 외부 전가, 혹은 보상책(낮은 수준의 기본소득 등)을 요구하는 태도다.
반면에 오늘날 '의식적' 수준으로 고양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AI를 통한 지식과 지적 역량의 이전, 재배치에 맞서 대중의 역량을 복원하고 최대화하기 위한 지식, 지능의 대안적인 사회적 배열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것이다. <주인의 눈>의 마지막 문장에 따르면, '집단적인 <대항 지능>'(412쪽)의 구축이다.
인공지능이 자본주의의 '최종' 기획인 것처럼, 이런 지향의 집단적 실천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역사적 운동의 '최종'적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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