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윤의 디깅 #39] 매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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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윤의 디깅 #39] 매너리즘

문화매거진 2026-07-28 10:12: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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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전세윤 작가]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로 작업을 억지로 병행해 오던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기고를 하지 않았다면 모든 예술 활동을 중지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두렵기도 한 존재다. 예술이 아니더라도 반복되는 일로 흥미나 집중이 떨어지고, 무기력증이 심하다면 이 경우를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이 표현을 쓰면서 과연 매너리즘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미술사에서의 매너리즘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르네상스라는 완벽한 모범 답안을 거부하고, 더 자극적이고 더 기괴하며 더 독창적인 표현을 찾으려 했던 치열한 실험 정신의 시기가 매너리즘이다. 

▲ 파르미지아니노Parmigianino, 긴 목을 가진 마돈나 Madonna dal collo lungo. 목을 길게 늘여 르네상스의 비례를 깬 사례
▲ 파르미지아니노Parmigianino, 긴 목을 가진 마돈나 Madonna dal collo lungo. 목을 길게 늘여 르네상스의 비례를 깬 사례


매너리즘(Mannerism)은 미술사에서 16세기 르네상스 말기(약 1520년)부터 바로크 양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유럽에서 유행한 독특한 예술 화풍을 말한다. 스타일과 기교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인 ‘마니에라(Maniera)’에서 유래했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 같은 거장들이 르네상스 예술을 구성한 것을 보고 다음 세대의 예술가들은 “똑같이 모방해 봤자 2인자밖에 되지 않는다”는 정체성에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복제하되,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인 마니에라를 과장되게 표현하기 시작한다.

매너리즘 시기의 작품을 보면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신체의 비현실적 변형. 사람의 목이나 팔다리를 뱀이나 백조처럼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이거나 비튼다. 두 번째, 불안정한 구도와 공간. 안정적인 구도를 버리고 인물들을 복잡하게 꼬아 놓거나 원근법을 뒤튼다. 세 번째, 인공적인 색채. 자연스러운 색감 대신 차갑고, 강렬하며, 연극 조명을 받은 듯한 비현실적인 색을 사용했다.

▲ 주세페 아르침볼도 Giuseppe Arcimboldo, 사계 The Four Seasons, 1563~1573
▲ 주세페 아르침볼도 Giuseppe Arcimboldo, 사계 The Four Seasons, 1563~1573


매너리즘은 초현실을 예고하는 요소로 언급되기도 한다. (‘#디깅 3’ 참고) 앞에서 말한 르네상스의 비례를 깨고 목을 길게 늘이거나, 원근법을 뒤틀어 연출한다는 점이 초현실주의의 무의식적 변형과 통한다. 이를 현실의 물리적 법칙이나 해부학적 정확성을 무시하고 오직 작가의 주관적 미감과 환상성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을 가진 마돈나는 초현실주의적 변형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의 핵심 기법 중 하나인 상관 없는 물건들을 낯선 장소에 배치함으로써 충격을 주는 데페이즈망(Depaysment)과 매너리즘의 관련도가 적지 않다. 매너리즘 미술은 이미 오브제를 기발하게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사계’는 멀리서 보면 사람의 초상화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과일, 채소, 꽃, 물고기, 책등으로 정교하게 짜 맞춘 기괴한 형상이다. 아르침볼도는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초현실주의자들이 가장 열광했던 매너리즘 작가이기도 하다. 사물을 본래의 맥락에서 떼어내 새로운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20세기 초현실주의 오브제 미술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매너리즘과 초현실주의 두 사조가 닮았다는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의 시대적 공포와 불안에 있다. 16세기 매너리즘의 시대는 로마 약탈(1527년), 종교개혁 등으로 인해 르네상스의 절대적 이성과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무너지던 혼돈의 시기였으며, 당대 작가들은 눈앞의 처참한 현실이 아닌 내면의 불안과 환멸을 기괴하고 환상적인 예술로 도피, 승화시켰다.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시대에는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학살을 겪으며 서구의 합리주의와 과학 문명에 깊은 회의감을 느낀 예술가들이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다. 현실의 시공간과 비례를 비틀어 자신만의 예술관을 구축했던 매너리즘의 시도는 400년 후 합리주의의 은폐를 찢고 무의식을 해방하려 했던 초현실주의의 완벽한 미학적 예고편이 된 것이다. 

매너리즘이 찾아왔다면, 불안정함과 압박감을 심하게 느낄 것이다. 이럴 때야말로 새로운 것을 찾아 개발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사고를 전환해 보기를 바란다. 매너리즘의 유래인 마니에라의 뜻과 같이 새로운 스타일을 찾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자. 이성과 세계관이 무너진다면, 차라리 화끈하게 무너지고 그 안에서 발견하고, 예술로 승화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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