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부뚜막에 걸린 가마솥이 식구들 밥을 다 먹이던 시절이 있었다. 또다시 끼니때다. 씻어 둔 쌀을 솥단지에 안치고 뚜껑을 덮는다. 이젠 쌀이 밥이 되게 할 불이 문제다. 아궁이 앞에 앉아 부지깽이를 쥔다. 불 잘 붙게 생긴 그 무엇이든 찾는다. 불쏘시개로는 마른 솔가지가 좋겠다. 하다못해 신문 쪼가리이면 또 어떤가. 조심스레 불을 살려 아궁이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불땀을 키워야 밥맛이 좋다. 간격을 두어 부지깽이로 땔감을 거두어 넣고 헤치며 끌어내기를 되풀이한다. 땔감 타는 소리에 비례하여 얼굴도 달아오른다. 사사삭 화라락 따악딱 아궁이 불은 이글거리고 가마솥은 뜨거워진다.
혼밥이 흔한 요즘, 솥밥은 먹어도 가마솥밥은 먹기 어렵다. 옛적 식구들이 다 함께 먹던 대용량 솥단지의 가맛밥 말이다. 아주 크고 우묵한 솥, 곧 가마솥은 그 쓰임만큼이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속담에서도 제 속성을 드러낸다. '가마(솥)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 놋쇠나 구리쇠로 만든 작은 솥이 노구솥이다. 더 시꺼먼 가마가 덜 시꺼먼 노구솥을 검다고 하는 꼴은 숯이 검정을 나무라는 꼴이다. 다른 속담 '가마솥에 든 고기'는 꼼짝없이 죽게 된 신세를 빗대며 '가마목에 엿을 놓았나'는 가마목(가마솥이 걸려 있는 부뚜막이나 그 둘레)에 두고 온 엿이 녹을까 봐 서둘러 돌아가느냐는 뜻으로 집으로 빨리 돌아가려고 몹시 조급하게 구는 사람에게 놀리어 이르는 말이다.
그렇게 숱한 불에 달궈지고 그을린 것만이 가마의 상징일 리 없다. 그것은 '겉' 아닌가. 기름진 밥으로 식구들 먹여 살린 가마의 '속'을 속담이 놓칠 리 없다. '가마솥이 검기로 밥도 검을까.' 옛사람들은 그리 물었다. 겉으로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하여 속까지 좋지 않을 것이라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가마 속의 콩도 삶아야 먹는다.' 다 된 듯한 일이나 쉬운 일도 힘을 들여야 이익을 볼 수 있다. 소댕(솥을 덮는 쇠뚜껑)이 닫히면 타오르는 불로 물을 끓이며 콩을 삶는 것은 가마의 몫이다. 숱한 불에 달궈지고 꺼메지는 가마 속에서 콩은 삶아진다. 사람들이 그걸 놓친다. 속담의 쓸모다. '가마'는 '검다'에서 왔다는 학설이 있다. 일본어 가마(かま. 釜. 가마 부)도 솥이다. 사람들이 이걸 놓친다. 어원의 쓸모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장일구, 『혼불의 언어』, 한길사, 2003 (경기도서관 전자책, 유통사 교보문고)
2. 조항범, 『우리말 어원 사전』, ㈜태학사, 2022
3. 권재우 김강수 박길훈 윤승용 이정수 조배식, 『어른의 말 공부』, 상상정원, 2025
4. 엮은이 보리 사전 편집부, 『속담 사전』, ㈜도서출판 보리, 2024
5. 표준국어대사전
6. 고려대한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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