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태환 인턴기자】서울역 11번 출구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면 높은 빌딩만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건물들 뒤로는 마치 암(暗)이라도 된다는 듯 가려진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밖으로는 카페도 음식점도 있지만 골목으로 들어서면 깨진 창문과 무너질 듯 곳곳이 갈라져 있는 오래된 외벽의 건물들이 쉴 틈 없이 붙어 있다. 그 안은 햇빛 한 줄기 들지 않고 전등도 켜지지 않아 어둡게만 보인다.
퀴퀴한 곰팡내와 지린내가 섞인 복도를 지나 한 사람도 겨우 지나갈 듯한 좁은 계단을 오르면서 보이는 것들은 바스러지고 녹슨 벽과 기어다니는 벌레들 그리고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다. 화장실도 없는 1평 남짓한 방에서 800여명의 주민들은 가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나무가 울창한 공원에는 주민들이 해를 피해 그늘에 앉아있다.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거나 옷을 걷은 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다. 그늘이라고 뜨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찜통 같은 방보다는 바람이라도 부는 밖이 낫다는 뜻이다.
이곳의 주민들에게 여름은 생존의 문제다. 비가 오면 빗물이 방 안으로 스며들고 폭염의 뜨거운 열기는 방 안에 고스란히 갇힌다. 창문조차 없어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쪽방에서 더위를 피해 길거리에 나와 있는 주민들을 만났다.
쪽방보다 작은 희망
“이 정도면 큰 방이야. 다른 데는 반밖에 안돼.”
이상준씨가 사는 방에 기자가 따라 들어가니 움직일 곳 없이 가득 찼다. 이씨의 방은 한 쪽으로 누울 수도 없어 대각선으로 누워야만 했다. 이씨의 방에 용도 없는 물건은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을 뒀을 뿐이다. 이씨의 공간은 물건의 공간보다도 좁았다. 그럼에도 이 방은 쪽방 중에는 큰 쪽방이라고 웃어 보였다.
이씨는 “부산 초량 출신이지만 이곳이 마음의 고향”이라고 했다. 이어 “이곳을 떠나도 봤지만 알고 지낼 사람이 없어 다시 돌아와 살다 보니 50년이 넘었다”며 “공공기관 임대주택으로 갔다가 쪽방 출신이라고 무시를 당하거나 적적해서 돌아오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쪽방에서 지내는 게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씨는 “이런 방 안에 있으면 무기력해져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잡생각이 들 때면 밖에 나가 앉아 하루를 보낸다”고 이야기했다.
집에서도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게 지긋지긋해요.”
이씨의 방은 곰팡이가 슬어 누렇게 된 벽지가 에워싸고 있었다. 이씨는 “비가 오고 나면 벽지에 곰팡이 스는 건 일상”이라며 “더울 땐 더워서 비 올 땐 비 와서 추울 땐 추워서 힘든 게 쪽방촌”이라고 설명했다.
길을 거닐다 만난 또 다른 동자동 쪽방촌 주민 A씨도 “비가 오면 장판을 깔아도 도배를 해도 여러 벌레가 생기는 건 막을 수가 없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청할 수도 없다. 동자동사랑방 차재설 대표는 “한 집은 비가 오면 위에서 물이 새서 대야를 바쳐둔다”며 “집주인에 수리를 요청해도 ‘싫으면 나가라. 다른 집 가서 살아라’라는 말만 돌아온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시에서도 주민들이 뭐가 필요하고 어려운지 알아주는 게 없다”며 “여기가 그런 동네”라고 한탄했다.
서울시는 폭우 대책에 힘쓰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2인 1조로 하루에 2번씩 순찰을 하면서 침수 피해가 없는지 확인하고 건강취약계층에는 매일 방문하고 있다”며 “전기와 가스는 검침으로 폭우 시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 대표는 이 같은 시의 조치가 “보여주기 식에 불과하다”며 “건물이 밖에서 볼 때는 온전한 것 같아도 안은 다른데 실제로 해주는 건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폭염도 그들의 몫이다
“여기 주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 편히 쉬고 더위와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인데, 현실에는 그런 공간이 없어요.”
차 대표의 말처럼 작은 방 안에서는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 바람만 나올 뿐 뜨거운 열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방문을 열어둘 수밖에 없다. 버티기 힘들어 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갈 곳은 그나마 그늘이 있는 공원뿐이다.
실내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쪽방에서 그들이 더위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용 화장실에서 수시로 샤워하는 것뿐이다. 많게는 17세대가 단 1개의 화장실 겸 샤워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고함과 욕설이 오가기 일쑤다. “야 이 XXX야. 빨리 나와.” 차 대표가 여름이 되면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라고 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더위와 함께해야만 한다. 여름은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닌다.
서울시는 지난 5월 15일부터 오는 10월 15일까지 ‘여름철 노숙인·쪽방주민 특별보호 대책’을 시행 중이다. 무더위 쉼터와 밤더위대피소를 운영하고 쿨링포그를 설치하는 등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폭염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실제 주민들이 체감되는 변화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차 대표는 “무더위 쉼터는 몇 사람 들어가지도 못하는 좁은 공간이어서 여럿이 들어가 붙어 있다 보면 다툼도 난다”고 말했다. 이어 “길에 물을 뿌리는 것도 큰 소용이 없다”며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본보에 “개인 공간 자체를 해결하면 좋겠지만 예산 문제도 있고 건물이 오래돼 전기 출력이 떨어져 개별 집에는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는 구조”라며 “공용 공간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전기 요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기 출력이 덜 필요한 서큘레이터나 선풍기도 지원하고 쿨토시·쿨조끼 같은 냉방용품도 지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폭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여름은 아니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에게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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