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재개발‧재건축 지역에 사는 주민은 더 나은 주거 환경을 기대한다. 낡고 오래된 집을 떠나 새집에서 살기를 바라는 건 모든 주민의 공통된 생각이다. 문제는 그 바람의 내용이 각각 다르다는 데서 나온다. ‘좋은 집’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그 ‘좋음’의 기준이 전부 제각각인 것이다.
재개발은 낙후된 지역 전체를, 재건축은 기반은 아직 괜찮지만 오래된 아파트를 다시 짓는 사업을 뜻한다. 들어가는 돈과 걸리는 시간을 따지면 초대형급 사업이다. 통상적으로 최종 입주 단계까지 10~15년가량 걸리며 규모에 따라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된다.
시간=돈
장기 사업
재개발‧재건축은 ▲사업 준비 ▲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이주 및 철거 ▲착공 및 일반 분양 ▲준공 및 입주 등의 단계로 진행된다. 사업의 시작은 지자체장이 노후 주거지나 아파트 단지를 정비 예정 구역으로 지정하는 것부터다. 이후 일정 비율 이상의 토지 등 소유자, 구분소유자 등의 법적 동의를 받아 조합을 구성한다. 보통 조합 설립 전에 조합설립추진위원회 단계를 거치는데, 사업이 본격화하는 첫 기구라고 보면 된다.
사업시행인가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핵심 단계다. 지자체장으로부터 용적률, 건폐율, 세대수 등 구체적인 건설 계획 인가를 받는 과정이다. 이후 시공사가 선정되고 조합원별 분담금이 산정되면 기존 건물을 철거한다. 공사에 돌입한 뒤에는 조합원 분양분을 제외한 물량에 대한 일반 분양이 이뤄지며, 공사가 완료되면 지자체의 준공 인가를 받고 입주한다. 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면 조합은 해산 절차를 밟는다.
단계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정도 소요된다. 문제는 인허가, 조합원 간의 갈등 등으로 사업 기간이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워낙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갈등의 빈도가 잦고, 장기 사업인 만큼 그 골도 깊어질 수 있다. 또 모든 상황에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돈 관련 비리 문제도 자주 일어난다. 고소‧고발도 많다.
서울시는 10년 이상 소요되는 재개발‧재건축 기간을 줄인다는 취지로 지난 4월 ‘신속통합기획 2.0 공정관리 매뉴얼’을 내놨다. 평균 18년5개월에 이르는 정비사업 기간을 12년 이내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도입한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의 보완판이라고 보면 된다.
2021년 4월 ‘공공기획’으로 출발한 서울시 신통기획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초기 단계부터 공공이 개입해 인허가 등을 빠르게 추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서울시가 사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각종 인허가 절차를 통합, 심의해 5년 정도 걸리는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2년 이내로 단축하는 게 핵심이다.
신통기획 추진 과정서 찬반 나뉘어
머릿수는 600 대 100, 면적은 비슷
신통기획은 구청이 추진 단체의 신청 내용을 확인하고 서울시에 심사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서울시는 구청의 입안 요청이 올라오면 후보지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선정 여부를 결정한다. 두 달에 한번, 짝수 달에 후보지 선정위원회가 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가 공개한 ‘신속통합기획 주택재개발사업 입안요청을 위한 후보지 모집 안내문’에 따르면 ▲법·조례상 주택정비형 재개발 정비구역 지정 요건에 맞고 ▲토지등소유자 30% 이상 동의로 구역 지정을 희망하는 지역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신통기획 후보지 선정을 요청할 수 있다.
단 ▲공공재개발, 모아타운,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등 타 사업 공모 등에 신청했거나 후보지로 선정된 구역 ▲토지등소유자 25% 이상이 반대하는 구역 ▲전용주거지역 ▲지분쪼개기, 부동산 이상 거래 등 투기 발생 구역 등은 신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찬반 갈등 우려 구역 ▲여러 사업이 혼재된 구역 ▲현금청산 대상 세대수가 많은 구역 ▲투기 발생 우려·의심 구역 ▲노후 건축물 소유 주민 동의가 현저히 낮은 구역 ▲지난 공모 등에서 미선정 사유가 해소되지 않은 구역 ▲구청장이 재개발 추진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구역 등은 제외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후보지 선정위원회에서 후보지로 선정되면 그다음부터는 기존의 정비사업 절차대로 사업이 진행된다. 후보지 선정까지의 과정이 대폭 줄어드는 것이다. 이때부터 서울시와 자치구, 조합 등은 사업 추진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공공과 민간이 합심해 원활한 사업 진행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취지대로만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제도다. 조합 입장에서는 사업 초기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셈이고, 공공으로서도 빠른 사업 추진으로 시간과 비용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민 간의 찬반 갈등이다.
2021년
첫 도입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공통의 목표로 모였지만 사업 진행 방법에서 이견이 분출하면서 나중에 가서도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사례도 심심찮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1164번지 일대, 이른바 개포4동 1구역 주택재개발 현장도 그중 한 곳이다. 최근 개포4동 1구역 주택재개발사업 추진준비위원회(이하 추진준비위)는 신통기획을 추진하고 있다. 동의서 연번 부여를 마치고 주민 주도로 추진준비위를 구성해 동의서를 받은 후 후보지로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에도 신통기획을 추진했지만 노후도 문제로 보류됐다가 이번에 그 문제가 해소돼 다시 진행하고 있다.
추진준비위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주민 60% 이상의 동의를 받아 후보지 신청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개포4동 1구역의 주민 수는 약 1100명, 이 가운데 600여명이 신통기획을 추진하는 데 동의했다는 뜻이다. 강남구청 재건축사업과 관계자에 따르면 반대 주민 수는 100여명 정도다. 전체 주민의 10%도 안 되는 수치다. 표면상으로는 큰 무리 없이 후보지 선정이 이뤄질 만한 차이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신통기획을 반대하는 이들이 숫자에 비해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통기획에 찬성한 주민 600여명이 가진 토지가 전체 면적의 30% 정도인데, 반대 주민 100여명이 가진 토지도 30%가량이라고 한다. 머릿수는 차이 나지만 서로 가진 토지 면적으로 비교하면 비등한 상황인 셈이다.
지난 20일 신통기획에 반대하는 주민 10여명이 강남구청에 항의 차원에서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후보지 선정 상정 절차 보류 ▲토지 등 소유자 수 기준과 토지 면적 동의율의 재검증 ▲대지분 소유주와 추진준비위 간 공식 숙의‧조정 절차 개시 ▲반대동의서, 철회동의서, 의견서 제출 기회의 실질적 보장 등을 요구했다.
민간+공공
좋은 취지
반대 주민 가운데 한 명은 “정비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아직 법정 추진위도 아닌 주민 주도의 추진준비위가 토지 면적 기준으로 중대한 이해관계를 보유한 대지분 소유주들의 실질적 참여와 숙의 없이 소액 지분자 중심의 인원수 동의율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강남구청이 서울시 상정을 서두른다면 향후 조합 설립, 사업시행계획, 관리처분계획 단계에서 심각한 행정 분쟁과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강남구청에서 후보지 신청 건이 서울시에 상정되기 전 ‘행정 필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1월 개포4동이 ICT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된 것과 관련해 사업이 중복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강남구는 지난 1월22일 ‘개포4동 ICT 특정개발진흥지구’ 지정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최종 통과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포이밸리’ 부활의 신호탄이라고도 적었다.
강남구는 “이번 지정은 서초구(111만㎡)와 강남구(46만㎡)를 아우르는 총 157만㎡ 규모의 ‘양재‧개포 ICT 특정개발진흥지구’ 통합 전략의 결실”이라며 “2021년 양재가 대상지로 선정된 데 이어 2023년 2월 개포4동 일대가 추가로 대상지에 올랐다”고 밝혔다. 2024년 4월 양재‧개포 지구 지정을 통합 추진하기로 한 뒤 올해 1월 도시계획 심의 절차를 통과한 것이다.
이어 강남구는 “개포4동은 1990~2000년대 ‘포이밸리’로 불리며 국내 최초 벤처타운이 자생적으로 형성된 곳으로 테헤란로와의 높은 접근성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가 강점”이라고 설명하면서 “강남구의 산업, 인력 기반이 개포4동으로 확장되면 포이밸리가 신성장 거점으로 재편될 수 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당시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개포4동 ICT특정개발진흥지구 지정은 포이밸리의 잠재력을 다시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출발점”이라며 “기업 성장 지원과 기반 정비를 병행해 수서-개포-삼성-테헤란로로 이어지는 미래산업 축을 단계적으로 완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남구 “요건 맞으면 추천”
후보지 선정 서울시에 달려
한 주민은 “올해 1월에 ICT특정개발진흥지구와 관련해 강남구가 대대적으로 발표해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포4동 1구역 신통기획 추진 소식이 들렸다”며 “서울시에 따르면 여러 사업이 혼재된 구역은 신통기획 후보지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추진준비위 관계자는 “다른 구역처럼 ‘세력’이라고 할 정도의 반대 인원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20~30분 정도라고 본다. 몇몇 주민분이 ‘결사 반대’라고 적은 피켓을 창문에 붙여둔 걸 보긴 했지만 실제 모였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다. (추진준비위) 사무실에 찾아오신 분도 없었다. 그분들이 감정평가 관련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있고, 반박 자료를 보내드렸다. 몇몇 건물주분들은 오셔서 상담한 뒤 납득하셨다”며 “오히려 찬성도 반대도 아닌 분들이 아직까지 꽤 많다. 1100명의 주민 가운데 600명이 찬성 의사를 밝힌 만큼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강남구청 재건축사업과 관계자는 “반대 동의율이 토지 등 소유자 25%, 토지 면적의 50%면 추전 제외”라며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수치에 근접하면 (추진이) 불가능하다 판단할 수도 있는 거고, 그건 서울시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강남구)는 (신청) 요건만 갖추면 무조건 추천한다. 요건이 충족됐는데 (서울시에) 올리지 않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ICT특정개발진흥지구와 주택재개발 사업이 상충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크게 상관없다는 것 같은데”라면서도 “그 부분도 나중에 서울시에서 판단할 때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에서 동의율이나 노후도 등 다양한 요소를 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2022년 문제 됐던 노후도는 기준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결론 나도
골은 깊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답했다. 관계자는 “전체 (주민이) 1100명 정도인데 100명이 넘는 주민이 반대하고 있으니 (반대가) 심하다면 심한 것”이라며 “그분들이 토지 지분이 커서 토지 면적으로 치면 30% 정도 반대하는 것이다. 적은 게 아니”라고 말했다. 강남구청은 서류 보완 작업 등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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