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7월의 무더위 속, 대전역을 빠져나와 소제동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손자국이 가득한 휴대폰 지도를 뚫어져라 본다. 자칫 길을 잘못 들었다간 이 징그러운 땡볕 아래서 몇 분을 더 태워야 할지 모른다. 가장 짧은 동선을 따라 소제동의 옛 관사촌 구역으로 걸어들어 간다.
이제 막 재개발에 들어간 서울의 어느 노후 동네보다도 한참은 더 오래되어 보이는 집들. 무너져 내리기 직전인 담장들이 집 안쪽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다. 틈새 너머는 얼마나 검고 무성한 풀숲이 우거져 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골목마다 나무에서 떨어진 찌그러진 과일들과 정체 모를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화창한 여름의 햇살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음산함이다.
푹푹 빠지는 열기 속에서 과일이 썩는 냄새인지, 햇볕에 말라가는 풀비린내인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후끈거리는 온도, 정체 모를 냄새, 그리고 어설프게 늘어진 그늘의 어그러진 조화는 걷는 내내 골목에 대한 호기심을 짓눌렀다. 콘크리트와 벽돌 틈새에 박힌 먼지는 세월을 먹고 검게 변했는지, 골목 전체가 마치 검은 이끼 한 겹을 덮어쓴 듯 어두컴컴했다. 좌우 집 마당에서 제멋대로 자라난 나뭇가지들이 하늘 위에서 서로 손을 잡으며 그나마 남은 빛마저 가렸다. 집집마다 비슷하게 어둡고, 담장마다 비슷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결국 골목 탐험을 포기했다.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아트사이트 소제’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눈앞의 풍경이 급반전됐다. 감각적인 카페와 근사한 식당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딱 그 한 줄의 거리에만 겨우 온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그 라인을 조금만 벗어나면 다시 재개발 직전의 서스펜스가 물씬 풍겼다. 겨우 도착한 소제에서 시원한 음료로 땀을 식힌 뒤,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섰다. 하얀 벽면을 따라 길게 둘러진 의자, 그 중심에 놓인 ‘머큐리 파티오’. 승차를 기다리는 대기실다운 공간이었다. 잠시 후, 맑게 트인 하늘 그림이 걸린 어느 지점에서 작가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미처 내리지 못한 승객인지, 아니면 승객을 가장한 인물인지 모를 누군가가 쿨쿨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스쳐 지나가며 얼핏 보았을 땐 외국인 같았지만, 제대로 눈을 맞추진 못했다. 그의 앞자리에 앉아 좌석에 놓인 헤드폰을 귀에 눌러썼다.
시동이 걸리고 버스가 출발했다. 헤드폰 사이로 나오는 사운드 틈새로, 바로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거친 코골이 소리가 뚫고 들어왔다. ‘드렁’, ‘컥’ 낮게 깔리는 낯선 도시의 소음, 라디오의 잡음 같은 전파 소리, 그리고 그 위로 겹치는 코골이와 버스 프레임이 흔들리는 소리. 헤드폰 안의 예술적 사운드와 헤드폰 밖의 쌩쌩한 일상음이 기묘하게 섞여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현실적인 소음들 덕분에 헤드폰 속 소리가 전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자연스러운 ‘일상의 언어’처럼 스며들었다. 늦은 깨달음이 스쳤다. 저기 자고 있는 누군가가 역시 이 도심 투어 작품의 정교한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덜컹거리는 버스의 울렁임 속에서, 무심하게 자고 있는 타인의 존재가 오히려 나에게 묘한 안도감을 선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버스는 아까 땀을 흘리며 지나왔던 그 좁고 아슬아슬한 재개발 골목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노선버스라면 절대 들어오지 않을 비좁은 길이었다. 무너질 듯한 담장이 창문 바로 앞까지 바짝 다가왔고, 제멋대로 자란 나뭇가지들이 버스 외벽을 드르륵- 긁고 지나가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마치 삭막한 콘크리트 사파리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삶터이자 폐허인 이곳을 관람하듯 구경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엔 엷은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무더위 속에서 온몸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걷던 골목을, 이제는 뽀송하고 시원한 버스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완벽한 대조를 이루며 엄청난 쾌감을 안겨주었다. 늘 발로 걸으며 헤매던 나에게, 버스의 속도로 골목의 풍경을 통과해 간다는 것은 일종의 통쾌한 해방감이었다.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사운드가 어떤 내용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버스 내부의 냄새, 에어컨의 바람, 덜컹거리는 진동, 그 모든 감각이 나를 과거 버스에 타고 있던 어떤 순간으로, 그리고 이 도시를 살아내던 수많은 기억 속으로 끌어당겼다. 세심하게 세공된 감각의 터치들 속에서, 나는 가장 흥미롭고 낯선 소제동을 관람하며 다시 대전역으로 향했다. 대전역에 도착한 버스는 또 다른 궤적을 그리며, 우리가 몰랐던 대전 소제동의 얼굴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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