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으로 보는 무속 판타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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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으로 보는 무속 판타지 세계

일요시사 2026-07-27 12:32: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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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귀신과 무당, 악귀와 혼령이라고 하면 무더운 여름날 반짝 흥행하던 공포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렇듯 한때 B급 장르로 취급받던 오컬트에 투자자들이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매일 최첨단 인공지능(AI)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쩌다 비과학적이고, 어쩌면 해묵었다고도 할 법한 귀신에 매료된 걸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동궁>이 공개 직후부터 줄곧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1위를 차지했다.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비영어권 TV 부문 2위에 오르며 49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했다. 전 세계 27개국에서 TOP 10에 이름을 올렸고, 한국과 태국에서는 정상에 올랐다.

27개국
TOP 10

<동궁>은 공개 전부터 기대작으로 꼽혔다. 넷플릭스가 올해 초 공개한 ‘2026 글로벌 라인업’ 영상에 포함된 유일한 아시아 작품이었기 때문. 여기에 약 400억원대, 넷플릭스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것 역시 알려져 기대감은 한껏 증폭됐다.

<동궁>은 동양풍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극 판타지다. 궁궐에 귀신이 등장하고, 왕을 중심으로 왕실을 둘러싼 저주가 사람들을 집어삼킨다. 귀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무녀 생강(노윤서 분)과 귀신을 보고 베어 죽일 수 있는 퇴마사 구천(남주혁 분). 이 두 사람이 만나 궁궐에 얽힌 비밀을 추적한다.

생강은 비밀스러운 과거를 품었으며, 구천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경험을 바탕으로 귀신 세계를 넘나든다. 사연 많은 이 둘을 궁궐로 불러들인 왕(조승우 분)을 중심으로 수수께끼가 한 가닥씩 실마리를 풀어낸다.

궐 안에서는 왕의 핏줄을 전부 끊어내기라도 할 듯 세자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고, 이 모든 원흉이 ‘연못 귀신’이 내린 저주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진다.

“뱀의 허물이 용의 새끼를 죽였다.” 구천과 생강은 이 말 한마디에 기대어 저주를 풀고자 한다. 한고비를 넘으면 또 한고비. <동궁> 속 귀신은 그저 평범한 귀신으로 남기를 거부한다. 원귀, 악귀와 귀매 등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거듭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공개 전부터 <동궁>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궁중 미스터리와 오컬트를 결합한 ‘좀비 사극’ <킹덤>에 버금가는 작품이 될 거라 예상하는 이들도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품이 공개된 이후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다.

우선 호평을 내놓는 이들은 작품 설정이 신선하다고 말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동궁>이 구현해 낸 독보적인 세계관은 단연 이 작품의 최고 장점이자 관전 포인트”라고 보도했다.

특히 구천을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소형 귀매(나쁜 기운이 한자리에 오래도록 쌓이면서 생겨난 험한 존재) ‘꺼먹살이’가 신스틸러로서 <동궁> 인기에 한몫을 톡톡히 한다. 꺼먹살이는 오컬트 장르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각종 귀신 속에서도 작고 귀여운 발랄함을 발산한다.

때로 구천을 구하겠다며 원귀(원한이 깊어 특정한 곳에 묶인 존재)를 먹고 몸을 키우는 장면에서는 꺼먹살이가 듬직하기까지 하다. 반면 다른 원귀에 공격당해 양기가 쪽 빠진 채 구천에게 기대는 꺼먹살이는 지켜주고 싶을 만큼 애틋하고 앙증맞다.

K-콘텐츠 시장서 바빠진 악귀
총제작비 400억원 투입 시리즈

온라인상에서는 꺼먹살이를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등장하는 ‘그루트’에 빗대 ‘조선판 그루트’ ‘동양 그루트’ ‘반려 귀매’ 등으로 칭하는 이들이 늘었다. “키링으로 나오면 가방에 달고 다니고 싶다”는 등 인형이나 굿즈로 출시해 달라는 말까지 나온다.

<동궁>은 다크 판타지 특유의 분위기에 한복과 한옥이 주는 고풍스러우면서도 고아한 색상을 담았다. 홍콩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동궁>을 두고 “화려하게 구현된 세트와 의상은 물론, 시대극 특유의 묵직한 대사를 깊이 있는 연기로 소화하는 베테랑 배우들이 작품을 채운다. 다양한 초자연적 존재들의 디자인과 구천이 오가는 귀의 세계를 정교하게 구현한 시각 효과는 작품의 볼거리를 한층 풍성하게 완성하며,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선사한다”고 썼다. 영상미만으로도 제법 볼 만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동궁 조승우 미친 왕 연기 제발 봐줘”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특수 효과도 정말 훌륭하다. 주인공들 케미도 너무 좋아서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 연기도 좋고 반전까지 있어서 끝까지 재밌게 봤다. 꼭 추천하고 싶다” 등 국내와 해외 시청자들은 연기자 칭찬에도 인색하지 않다.

생강과 구천은 궐 안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앞에 두고 서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각자 잊고 싶은 과거가 있으며 매 순간 생사를 넘나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동병상련 관계라는 뜻. 이들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동질감을 느끼고 아슬아슬하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쌓는다. 뻔한 로맨스 대신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케미가 좋은 편이라는 평이 많다.

CG가 구현한 장면들은 꽤 사실적이어서 제작비 스케일을 실감케 한다. 최근 개봉한 나홍진 감독 영화 <호프>보다 “낫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온갖 귀신들은 각기 개성을 지닌 이미지로 형상화해 몰입감을 더한다.

한편 <동궁>을 혹평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고 드는 부분은 두 주인공의 연기력이다. 이들은 극 중 생강(노윤서)과 구천(남주혁)의 단조로운 표정이나 사극에 맞지 않는 발성이 몰입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궁중 암투를 벌이는 왕(조승우)과 대비마마(장영남)는 베테랑 연기자답게 각 신에 무게를 싣는다.

초반 전개가 더디다는 지적도 있다. 복잡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을 담다 보니, 스토리 전개가 느리게 이뤄진다는 것. 장르물 특유의 몰입감을 기대하던 시청자들이 빠르게 이탈할 수 있는 부분으로 평가된다.

대중 흥행 콘텐츠에 익숙한 시청자들도 오컬트와 판타지가 결합한 설정과 세계관이 낯설다고 말한다. 귀신을 전형적인 소재로 삼지 않고 극 중 각기 다른 형상으로 설정한 부분에 긴 설명이 필요해진 만큼, 다음 회차로 넘어가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호프>보다
낫다고?

공개 초기 반응으로만 보자면, 국내에서보다는 해외에서 반향이 더 큰 듯하다. 주요 외신은 다양한 호평을 내놨다.

미국 평론 매체 <콜라이더>는 “넷플릭스가 2026년 선보인 가장 매혹적인 판타지 대작”이라고 평했다. 미국 리뷰 전문 매체 <디사이더>는 “흥미로운 미스터리와 압도적인 영상미, 탄탄한 세계관이 시청자를 단숨에 사로잡는다”고 썼다. 400억원대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동궁> 공개 이전부터 최근 몇 년간 한국 콘텐츠 시장에는 귀신, 무속, 원혼, 저주, 퇴마 등을 소재로 삼는 작품이 잇따라 쏟아졌다. 2018년에 나온 OCN 드라마 <손 the guest>는 오컬트 드라마 장르를 대중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오컬트 열풍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작품이 바로 영화 <파묘>다. 2024년 개봉한 <파묘>는 누적 천만 관객 흥행을 기록하며 ‘귀신 콘텐츠’에 투자하기를 부추겼다. 풍수사와 장의사, 무당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전통 무속 신앙에 현대 공포를 결합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굿판과 풍수, 조상신 등 한국적 요소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대중성과 오락성을 확보해 해외에서도 호평받았다. 이때부터 K-오컬트가 하나의 장르로 굳어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파묘됐다’는 유행어가 생겼을 정도였다.

과거에도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등이 오컬트 장르 작품을 대표하며 명맥을 잇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파묘>는 K-오컬트가 특정 마니아층을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흥행을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례라 할 만하다.

영화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파묘> 성공 이후 투자사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말이 돈다. 과거에는 오컬트 소재를 실험적이라고 평가했다면, 이제는 오히려 흥행 가능성이 큰 장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K-오컬트 확장은 영화 시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귀신은 공포물 밖으로 뛰쳐나오고 무당은 굿판을 벌이며 로맨스와 코미디 장르로까지 뻗어나갔다. 지난해에 방영한 귀신 소재 드라마만 해도 <노무사 노무진> <귀궁> <견우와 선녀> 등 굵직한 작품이 손에 꼽힌다.

조선 그루트
‘꺼먹살이’

올해에도 <신이랑 법률사무소> <신입사원 강회장> <오싹한 연애> 등 드라마가 귀신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었다. 연초부터 흥행 몰이에 성공한 <살목지>를 비롯해 <교생실습> <신사: 악귀의 속삭임> 등 공포 영화도 쉬지 않고 개봉했다.

그렇다면 콘텐츠 제작사와 투자사는 왜 오컬트에 주목할까? 첫 번째 이유는 한국만의 차별화된 이야기 자산에 있다. 좀비와 뱀파이어, 마법사는 이미 전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흔하게 소비하고 있다. 반면 무당, 굿, 살풀이, 원혼과 같은 요소는 한국 고유 정서를 담고 있어 참신하게 여겨진다.

서양 오컬트는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악마와 엑소시즘, 구마 사제를 주로 다룬다. 반대로 한국 오컬트는 샤머니즘, 토속 신앙, 조상신, 민간 전승 설화 등 서양인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세계관으로 펼쳐진다.

실제 해외 시청자들에게 무당의 굿 장면은 매우 이색적이면서도 낯설고, 신선한 볼거리로 받아들여진다. 글로벌 OTT 플랫폼 입장에서는 신선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아시아 문화권 전반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장르로 받아들여지는 셈이다. 또 누군가가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는 큰 장점 역시 확보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장르 확장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K-오컬트는 공포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극에서 시작해 범죄물, 역사극, 로맨스 등까지 확장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셈이다. 제작사로서는 기존 장르에 오컬트 요소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긴장과 자극을 소구할 수 있다. 이렇듯 K-오컬트는 장르적 활용도가 매우 높다.

세 번째 이유는 OTT 플랫폼과의 궁합이다. 오컬트 작품은 하나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비밀과 떡밥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시청자들은 등장인물보다도 사건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기대한다.

이렇듯 미스터리를 좇는 구조는 자연스럽게 연속 시청을 유도한다. OTT 플랫폼이 중요하게 여기는 체류 시간과 정주행 효과를 만들어내기 쉽다는 의미다.

문화평론가들은 K-오컬트 열풍을 단순한 콘텐츠 트렌드 이상으로 해석한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사회적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과 초자연적 존재에 관심을 끌게 된다는 것이다. 콘텐츠 산업 역시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공포물 밖으로 뛰쳐나온 무당
평범한 사람들의 한 풀어준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유튜브와 SNS에서는 점술, 사주, 무속 관련 콘텐츠가 큰 인기를 얻었다. 올해 초 디즈니+가 선보인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운명전쟁49>는 공개되는 회차마다 이슈가 될 만큼 화제성이 강했다.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무속인과 역술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늘었다. tvN <구기동 프렌즈>와 MBC <나 혼자 산다> 등에서도 무속인이 등장해 연예인의 미래를 점치는 장면이 심심찮게 방영됐다.

귀신과 저주, 원혼과 무속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AI가 내놓는 답변은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일 수 있지만, 우리 삶은 비합리적이고 배반적이다. 우리 고민에서 비롯한 불안과 공포가 귀신과 무속과 더 가깝게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궁>에서 궁궐 내 권력 투쟁을 위해 동원되는 저주와 주술은, 인간이 품은 탐욕이 악귀나 요괴보다 더하다는 오싹한 공포감을 안긴다. 무속 신앙이라는 포장지를 벗기면, 그 안에 인간끼리 벌이는 정치적 암투‧계급 갈등‧가족 간의 잔혹한 비밀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청자들은 이 지점에서 단순히 공포를 소비하는 대신, 귀신이 지닌 사연에 얽힌 인간의 부조리와 비극을 발견하고 몰입하게 된다. 결국 무속과 오컬트 콘텐츠가 이 시대에 주목받는 이유는 ‘인간의 한을 다루는 이야기’로 풀어 쓴다는 데 있다.

<동궁>에서 구천과 생강은 저주를 푸는 과정에서 각 귀신이 품은 한 역시 풀어준다. 한국 무속은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고 떠나보내는 천도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상처 입은 존재를 구제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이야기로 확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천이 연못 귀신과 궁녀들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는 장면에서는 어쩐지 시청자도 함께 위로받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평범한 일상에서 억울하게 누명 아닌 누명을 뒤집어쓴 채 살아가는 약자라는 점에서는 우리와 귀신이 다를 바 없다.

무속이 소환되어 최근 K-오컬트 콘텐츠 흥행을 이끄는 배경에는, 시대 불안에 반응하는 대중 감정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계층 이동이 막힌 사회,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 속에서 무속은 운명을 바꾸는 주술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 들어주는 매개다.

판 키우는
K-오컬트

한때 B급 장르 취급을 받던 오컬트가 이제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핵심 투자처가 되고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이 수백억 원을 투자하는 대형 프로젝트의 중심에 K-오컬트가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해석한다.

<younm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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