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벼랑 끝 한국 축구, 새 판 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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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 벼랑 끝 한국 축구, 새 판 짤 수 있을까?

이슈메이커 2026-07-27 09:45:2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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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벼랑 끝 한국 축구, 새 판 짤 수 있을까?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의 충격적인 조별리그 탈락 참사 이후, 한국 축구계가 전례 없는 격랑에 휩싸였다. 48개국으로 참가국이 확대되며 그 어느 때보다 32강 토너먼트 진출의 기대감이 높았던 대회였기에, 1승 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가 남긴 상흔은 깊고 뼈아팠다.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홍명보 감독이 자진 사퇴한 데 이어, 13년 5개월여를 이어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의 장기 집권 체제가 결국 국민적 공분을 견디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하지만 축구 팬들의 분노는 단순한 수장 교체를 넘어, 그동안 철저히 가려져 있던 축구협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뜯어고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K-축구 혁신위원회’가 전격 출범하며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을 위한 거대한 수술대에 메스를 올렸다. 벼랑 끝에 선 한국 축구, 과연 이번 쇄신은 해묵은 카르텔을 끊어내고 투명한 그라운드로 나아가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사진=손보승 기자
사진=손보승 기자

 

예견된 참사와 불명예 퇴진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앞설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기대하셨던 결과를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고, 그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감독인 저에게 있습니다.”


  지난 6월 29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위치한 대표팀 현지 숙소.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홍명보 감독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마지막 경기였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전에서 0-1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조 3위로 추락, 끝내 32강 진출이 좌절된 직후였다. 체코와의 1차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며 쾌조의 출발을 알렸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최상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멕시코전(0-1 패)과 남아공전(0-1 패)에서 대표팀은 전술적 한계와 무기력한 경기력을 노출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이번 대회는 참가국이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대폭 확대된 첫 월드컵이었다. 조 3위 팀 중 상위 8개 팀까지 32강에 진출할 수 있는 구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 커트라인조차 넘지 못했다. 아시아 축구의 맹주를 자처하던 한국으로서는 치욕적인 결과였다. 대표팀 선임 과정에서부터 절차적 정당성 논란에 시달리며 무거운 짐을 지고 출항했던 홍명보호는 결국 성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데 실패하며 쓸쓸히 퇴장했다. 6월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선수단 본진을 맞이한 것은 환호가 아닌 수많은 팬들의 야유와 ‘축구협회 해체’가 적힌 분노의 현수막이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마지막 경기였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전에서 0-1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32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대한축구협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마지막 경기였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전에서 0-1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32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대한축구협회

 


  감독 사퇴라는 일차적 수습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들불처럼 번진 비난의 화살은 대표팀 운영의 궁극적 책임자인 대한축구협회 최고위층, 정몽규 회장을 정확히 정조준했다. 2013년 제52대 KFA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무려 4번의 임기를 거치며 13년 5개월 동안 한국 축구를 이끌어온 그의 장기 집권 체제는 이미 안팎으로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과거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경질 사태, 승부조작 등 비위 축구인 기습 사면 파동 등 불투명한 행정과 독단적인 의사결정은 누적된 불신의 뇌관이었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 참사는 그 뇌관을 터뜨린 거대한 폭약이 되었다.


  거센 퇴진 압박에 직면한 정몽규 회장은 당초 월드컵 폐막일인 7월 20일 이후 사임하려던 일정을 앞당겼다. 지난 7월 6일 충남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열린 마지막 임원회의 직후, 정 회장은 “모든 과오는 제 책임”이라는 짤막한 입장과 함께 공식 사임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길고 길었던 정몽규 체제는 붕괴되었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반성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또 다른 충격이 찾아왔다. 사임 발표 불과 사흘 뒤인 7월 9일, 정 전 회장이 KFA 회장직만 내려놓았을 뿐 국제축구연맹(FIFA)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 등 국제 축구계 요직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국내에서는 불명예 퇴진한 인물이 국제사회에서 계속 ‘한국 축구의 대표’ 행세를 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팬들은 이를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꼼수 사임’으로 규정했고, 축구협회 수뇌부 전체를 향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대표팀 선임 과정에서부터 절차적 정당성 논란에 시달리며 무거운 짐을 지고 출항했던 홍명보호는 결국 성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데 실패하며 쓸쓸히 퇴장했다. ⓒ대한축구협회
대표팀 선임 과정에서부터 절차적 정당성 논란에 시달리며 무거운 짐을 지고 출항했던 홍명보호는 결국 성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데 실패하며 쓸쓸히 퇴장했다. ⓒ대한축구협회

 

‘K-축구 혁신위원회’의 출범, 밀실 행정과의 전쟁
초유의 수장 공백 사태를 수습하고 바닥까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정부와 체육계가 직접 개입에 나섰다. 7월 6일 정 회장의 사임과 동시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K-축구 혁신위원회’가 전격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단순히 차기 회장 선거를 관리하는 과도기적 조직을 넘어, 무너진 협회의 시스템을 근본부터 재설계하고 카르텔을 끊어내기 위한 전권을 위임받았다.


  혁신위의 인적 구성은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대변한다. 박지성 국제축구연맹(FIFA) 분과위원회 위원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중심을 잡았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웅이자 한국 축구의 상징인 박지성이 행정 쇄신의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은 팬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었다. 여기에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이영표, 박주호 등 현장과 행정을 두루 이해하는 신망 받는 레전드들이 대거 합류하며 개혁의 동력을 확보했다.


  혁신위의 역할 중 우선 당면한 대한축구협회의 거버넌스 개혁과 관련해서 박 위원장은 “모든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많은 축구인이 참여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회장) 선거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면서 “또한 ‘현행 제도로는 안 된다’는 엄중한 인식에 따라 혁신위에서 논의된 사항들을 협회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해 검토하고 (상급 단체인) 대한체육회도 적극적으로 행정적인 뒷받침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홍명보 감독 사퇴라는 일차적 수습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으며 비난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대표팀 운영의 궁극적 책임자인 대한축구협회로 향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홍명보 감독 사퇴라는 일차적 수습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으며 비난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대표팀 운영의 궁극적 책임자인 대한축구협회로 향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이처럼 혁신위가 정조준하고 있는 최우선 과제는 바로 ‘차기 회장 선거 방식의 전면 개편’이다. 기존 KFA 회장 선거는 소수 대의원 및 선거인단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폐쇄적인 간선제였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현직 회장이나 주류 파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며 ‘축구계 카르텔’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방패막이가 되어왔다. 박지성 공동위원장은 지난 7월 13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2차 회의 직후 “과거와 같은 방식의 축구협회장 선출은 안 된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며, 불가피할 경우 60일로 규정된 신임 회장 선출 기한을 연장하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 제도를 ‘직선제’ 혹은 그에 준하는 개방형으로 완벽히 뜯어고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현재로선 회장 궐위시 새로운 회장 선출 기한을 기존 60일이 아닌 최대 6개월까지 보장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혁신위의 쇄신 작업은 이미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혁신위가 선거 제도 개편 논의에 한창이던 시점, 대한축구협회가 일선에 기존 방식대로의 ‘차기 회장 후보 등록 안내 문자’를 발송하며 개혁 엇박자 논란이 불거졌다. 협회 측은 “비상 상황이라도 규정에 따른 통상적인 행정 절차를 밟은 것일 뿐”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익숙한 시스템을 수호하려는 내부의 강력한 관성과, 이를 뿌리 뽑으려는 혁신위 간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수면 위로 드러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내부의 힘겨루기 외에도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외부의 압박은 전방위적으로 조여오고 있다. 가장 치명적인 뇌관은 경찰 수사다. 홍명보 전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 무시와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의 월권 논란 등에 대해 이미 시민단체의 고발이 접수되었고, 현재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사건을 배당받아 강도 높은 수사에 돌입한 상태다. 이름값에 의존한 주먹구구식 감독 선임 방식과 투명성을 잃은 행정 절차의 민낯이 사법 기관의 수사를 통해 낱낱이 밝혀질 상황에 놓인 것이다.

 

수장 공백 사태를 수습하고 바닥까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K-축구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수장 공백 사태를 수습하고 바닥까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K-축구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여기에 입법부도 칼을 빼 들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이번 월드컵 참사와 축구협회의 방만 경영에 대해 대대적인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다. 정몽규 전 회장을 비롯해 홍명보 전 감독, 협회 고위 관계자들의 국회 출석이 강력히 거론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그간의 밀실 행정과 예산 집행 내역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개입이 자칫 국제축구연맹(FIFA)이 엄격히 금지하는 ‘정부의 부당한 간섭’으로 비화되어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지만, 국민적 분노가 워낙 거세 정치권 역시 물러설 기미가 없다. 혁신위 입장에서는 FIFA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도 체질 개선을 이뤄내야 하는 고도의 외줄 타기를 해야 하는 셈이다.


  한국 축구는 지금 뼈를 깎는 쇄신이냐, 또다시 과거로 회귀하느냐를 결정지을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K-축구 혁신위원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차기 회장을 투명하게 뽑는 것을 넘어, 외부 압력이 개입할 수 없는 독립적인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시스템 구축, 협회 예산 집행의 철저한 투명성 확보, 그리고 철저히 배제되었던 축구 팬들과 일선 지도자들의 목소리를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공식적인 소통 창구의 제도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옛말은,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고 땅을 갈아엎는 처절한 수고로움이 동반될 때만 성립한다. 잃어버린 팬들의 신뢰를 되찾고 수십 년 묵은 낡은 카르텔을 온전히 해체할 수 있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차기 회장 선출까지 남은 짧은 골든타임 동안 합리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새롭게 재건해 내지 못한다면, 한국 축구의 끝없는 추락은 단순한 일회성 참사가 아닌 걷잡을 수 없는 몰락의 서막이 될 것이다. 한국 축구의 명운이, 지금 혁신위의 어깨와 시계의 초침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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