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유니버설픽처스
[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시공간의 마술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다시 한번 세계 극장가를 뒤흔들 대작을 내놨다. 영화라는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스펙터클과 시각적·감정적 카타르시스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 신작 ‘오디세이’는 단순한 고전의 재해석을 넘어, 거장의 야심과 아날로그 영화 제작 기법이 완벽하게 결합한 시대의 걸작이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를 원작으로 한 ‘오디세이’는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왕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맞닥뜨리는 거대한 시련과, 신과 괴물들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린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영화적 실험을 이어온 놀란 감독은 이번에는 3000년 전 호메로스의 서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전편을 아이맥스(IMAX) 전용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끝없이 펼쳐진 사파이어빛 바다와 장엄한 자연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오직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압도적인 영화적 체험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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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상업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고전 서사가 지닌 품격과 무게를 끝까지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볼거리에 의존하기보다 절제된 연출과 치밀한 미장센을 앞세운 놀란은 전쟁과 신, 마녀와 거인 등 신화의 세계를 단순한 스펙터클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빚어낸다. 이는 막대한 제작비나 첨단 기술만으로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영화적 성취다. 놀란이라는 이름이기에 가능한 미학적 완성도이자 거장의 위엄이 스크린 곳곳에서 드러난다.
CG를 최소화하고 실제 특수효과를 극한까지 활용한 영상미 역시 작품의 품격을 한층 끌어올린다.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선 트로이 목마의 위용부터 거친 절벽의 질감, 실제 동굴에서 촬영한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와의 기괴한 사투까지 모든 장면이 묵직한 현실감을 전한다. 여기에 트로이 공성전 회상 장면을 가득 메우는 화염과 폭발, 루드비히 요란손의 육중한 타악기 중심의 음악이 더해지며 극장은 관객을 압도하는 거대한 체험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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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절대적 영웅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긴 전쟁과 끝없는 방랑에 지친 한 인간이자 살육의 가해자이며 수많은 병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지휘관으로 그려진다.
맷 데이먼은 리더십의 무게와 전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인간의 고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에서 부하들의 희생을 선택해야 하는 절박한 순간, 저승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과 마주하며 죄책감에 무너지는 장면은 그의 깊이 있는 연기를 통해 강렬한 감정적 울림으로 이어진다. 덕분에 고대 신화는 단순한 영웅담을 넘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인간성과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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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를 더욱 빛나게 하는 또 하나의 강점은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초호화 캐스팅이다. 놀란 특유의 정교한 비선형 서사 속에서도 배우들은 짧은 등장만으로도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다.
왕위를 노리는 구혼자들 사이에서도 왕비의 품위를 잃지 않는 페넬로페를 연기한 앤 해서웨이는 절제된 연기로 중심을 잡고,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텔레마코스를 맡은 톰 홀랜드는 극의 감정선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오디세우스의 빈자리를 노리는 야심가 안티노오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은 서늘한 긴장감을 더하고, 병사들을 기괴한 돼지로 변모시키는 마녀 키르케 역의 서맨사 모턴은 신비롭고 음산한 분위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 젠데이아, 샤를리즈 테론, 존 레귀자모까지 빈틈없는 연기 앙상블을 완성하며 172분의 긴 러닝타임을 지루함 없이 촘촘하게 채운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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