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 사먹을 돈이면 다른 시간과 다른 세계, 다른 나를 살아볼 수 있는 좋은 세상입니다. 장르, 국가, 러닝타임 불문 보통의 애호가 입장에서 이런저런 영화를 보고 이모저모 이야기합니다.[편집자주] |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7세기 에도 시대 일본, 시마바라의 난이 진압된 직후 막부는 천주교를 철저히 탄압한다. 일본에서 선교하던 페레이라 신부가 끝내 배교했다는 소식이 포르투갈에 전해지고 이를 믿지 못한 제자 로드리게스와 가루페 신부는 스승의 진실을 확인하러 일본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숨어서 신앙을 이어가는 신자들을 만나지만, 그곳에서 맞닥뜨리는 건 믿음을 지키면 사람이 죽고 사람을 살리려면 믿음을 버려야 하는 선택이다. 신은 좀처럼 응답하지 않고 로드리게스는 침묵하는 신 앞에서 끝없이 흔들린다.
작품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거침없이 배교하면서도 신을 놓지 못하는 기치지로다. 그는 막강한 권력이 요구하면 누구보다 먼저 후미에를 밟고 침까지 뱉는다.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리지 않은 순간에도 포상금에 눈이 멀어 로드리게스를 팔아넘긴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신부를 찾아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살아남기 위해 망설임 없이 배교하지만 살아남았기 때문에 다시 신을 찾는다.
기치지로가 매력적인 건 그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안위를 위해 움직인다. 후미에를 밟는 것도, 신부를 팔아넘기는 것도 전부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이 저열하고 노골적인 생존 본능이, 결과적으로는 인간을 사랑해 스스로 십자가를 진 성자의 뜻을 이 땅에서 반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팔아넘긴 신부를 찾아가 팔아넘겼음에 대한 고해성사를 청하는 뻔뻔함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배신한 사람 앞에 매번 다시 무릎 꿇는 일은 낯 두꺼운 짓이지만 동시에 신자로서의 의무를 잊어버리지는 않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사일런스> 속 인물들은 믿으며, 더욱 믿고자 애타게 신을 찾지만 작품이 치밀하게 쫓아가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믿는 행위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일런스>
로드리게스 역시 배교자가 된다. 그는 신자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며 배교 행위를 해도 된다고, 살아남으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정작 성화를 밟고 살아남은 기치지로를 이전처럼 대하지 못하고 냉대하면서도 그가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 목숨을 부지한다. 신자들이 자신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끝까지 자신의 배교는 망설인다. 물론 그는 신부이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처절히 괴로워하며 인간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과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 사이에서 끊임없이 정답을 구한다.
믿음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후미에를 밟았다고 믿음이 사라지지 않고 성화에 침을 뱉었다고 신을 잊는 것도 아니다. 일본인 통역관은 답답해하며 로드리게스에게 말한다. "그저 형식입니다. 형식일 뿐입니다." 신앙을 탄압하는 자들조차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순교만을 절대적인 선으로 보기도, 배교 '행위'를 곧바로 악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살아남은 기치지로는 계속 신을 찾고 계속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로드리게스에게 신앙인으로서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든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기도할 수도 회개할 수도 없다. (물론 죽은 이들은 천국에 갔을 수 있겠지만) 살아남은 사람만이 지상에서 신앙을 생존하게 할 수 있다.
결국 종교가 형식이 아닌 인간을 향할 때 아름다워진다고 작품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훨씬 이전에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는 절대 배교하지 않겠다는 로드리게스에게 말한다. "신부는 그리스도처럼 행동해야 해.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셨다면 저들을 구하려고 배교하셨을 걸세. (···) 계속 기도하게. 하지만 눈을 뜨고 기도해야 해." 신만 바라보지 말고 지금 눈앞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마침내 로드리게스는 후미에 앞에 선다. 신자들은 그가 배교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때 영화 내내 침묵하던 신의 음성이 들린다.
"날 밟아라. 나는 너의 고통을 안다. 인간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 이제 네 생명은 나와 함께 있다. 밟아라."
통역관이 냉소로 걷어낸 형식을 신은 자비로 걷어낸다. 밟아도 된다는 말은 같지만 그 결이 다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는 게 아니라, 인간을 살리기 위해 신앙의 형식을 내려놓으라는 허락. 실제로 유일신이 존재한다면 저렇게 말해주는 존재이길 기대하게 된다.
다만 그 바람과 실제로 그런 신의 존재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신이 내내 침묵하는 이상 배교라는 행위 자체에 신이 정말로 진노하는지는 알 수 없다. 순교해서 곧장 천국에 가는 것과, 배교하고 살아남아 몰래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밸런스 게임에서 무엇이 더 신의 뜻에 가까운지는 정말 모른다. 다만 인간이 기대하는 바로서 신이라면 인간에게 죽음을 요구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계속 자신을 믿어주길 바라지 않을까? 기치지로가 초라하고 졸렬하게 목숨을 보전하면서도 끝내 신을 놓지 않은 것이, 어쩌면 순교보다 신의 뜻에 더 부합하는 선택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로드리게스가 후미에 앞에서 들은 목소리 역시 신의 음성이 아니라 로드리게스 스스로 내린 결론이었을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지만 작품 전체를 통틀어 신이 실제로 입을 연 건 이 순간이 유일하다.
이 목소리가 신에게서 온 게 아니라 로드리게스가 자기 자신에게 내린 면죄부였다면? 무종교인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쪽이 반갑다. 면죄부라면, 그건 신이 인간을 구원한 게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과 여럿의 목숨을 구원한 셈이 된다. 인간이 애초에 그 정도의 강함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배교한 로드리게스는 일본식 이름을 받고 주기적으로 성화를 밟으며 감시 당한다. 이때도 기치지로는 고해성사를 하러 온다. "나는 더 이상 신부가 아니고 걸리면 큰일 난다"며 거절하다가도 로드리게스는 결국 부탁을 들어준다. 그를 여러 번 죽을 고비로 몰아넣은 배교자였음에도 죽을 날이 다가오자 로드리게스는 기치지로에게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처음 후미에를 밟은 날부터 이날까지 신과 신앙의 존재를 상기시켜준 사람이 바로 그 살아남은 배교자였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스는 사후 불교식으로 화장된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작은 십자가가 들려 있다.
로드리게스도 기치지로도 완벽한 신자는 못 됐지만, 엉망이고 부족해도 할 수 있는 만큼 믿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강함을 느낀다. '절대 배교하지 않겠다'고 단언하는 로드리게스를 바라보던 페레이라의 오묘한 얼굴에서는 역설적으로 명확한 길을 볼 수 있다. 후미에를 밟고 난 이후에도 살아가는 힘—그건 오롯이 인간만이 보일 수 있는 인간의 힘이라고 '믿어'본다.
사일런스(Silence), 2016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각본 제이 콕스, 마틴 스코세이지
촬영 로드리고 프리에토
음악 킴 앨런 클루그
원작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
감상 DVD
침묵>
*신앙심 깊고, 엄청 고생하는 앤드류 가필드를 한번 더, <핵소고지(hacksaw ridge, 2016)>핵소고지(hacksaw>
※ [영화보기]는 기자 개인의 감상을 담은 코너입니다.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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