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라고 하기보다는 많이 봐주셔서 감사해요. 만드는 입장에서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거라, 공개 이후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자체가 고맙게 느껴져요."
권소라⋅서재원 작가가 구축한 거대한 세계관을 처음 마주했을 때 연출자로서 느낀 첫인상은 새로움과 도전 의식이었다.
"처음 든 생각은 '재밌겠다'였어요. 내용도 재밌을 것 같았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챌린징하고 두근두근한 작품이 될 것 같았어요. 그때는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지 실감하지 못하니까 '이런 거 멋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요."
극의 핵심 배경이 되는 '귀(⻤)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였다.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이질적인 공간을 빚어내기 위해 제작진은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
"작가님들과 처음부터 동의한 지점은 현실 세계와 딱 봤을 때 달랐으면 좋겠지만, 동시에 현실 세계가 반영되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콘셉트는 명확했는데 기술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현할지는 연출의 몫으로 넘어오면서 고민이 시작됐어요."
일각에서는 '귀의 세계'가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속 뒤집힌 세계가 연상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기묘한 이야기' 이야기를 듣고 놀랐어요. 너무 훌륭한 작품이라 영광이기도 했지만, 비주얼 레퍼런스로 삼은 건 아니었어요. 다만 두 명 혹은 몇 명의 인물이 어떤 상황을 돌파하는 모험의 감각을 이야기하다가 '기묘한 이야기'나 '엑스파일' 같은 이야기가 나온 적은 있었어요. 비주얼 구현에서는 지옥, 저승, 망자의 세계에 대한 전설·설화·신화에서 기본 이미지를 찾으려고 했어요. 현실 세계는 다채로운 컬러와 공간감을 살리고, 귀의 세계는 레드, 퍼플, 옐로우처럼 하나의 큰 컬러 콘셉트가 지배하는 방향으로 잡았어요. 같은 공간도 현실은 봄·여름에, 귀의 세계는 겨울에 찍어 느낌을 다르게 가져가려고 했어요."
수려한 영상미 뒤에는 촬영 및 조명 스태프들과의 합이 컸다. VFX(시각특수효과) 비중이 높은 장르임에도 기술에 온전히 기대기보다 피사체 본연의 힘을 살리는 정공법을 택했다. 현실과 귀의 세계를 분리한 세트를 직접 지어 올리며 질감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박정훈 촬영감독님과 김승규 조명감독님께 정말 많이 배웠어요. 사극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신 분들이고 저도 사극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한국의 과거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지 많이 이야기했어요. 정일성 촬영감독님을 찾아가 이야기도 나눴고요. 결론적으로는 뭘 많이 꾸미기보다 피사체와 풍경을 정면으로 돌파해보자는 쪽이었어요. '이건 VFX로 해결하면 돼'가 아니라 '이게 끝이다, VFX가 없다'는 마음으로 찍자고 했어요. VFX를 많이 쓴 작품은 맞아요. 다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VFX에만 의존하는 것은 최소화하자는 원칙을 잡았어요. 먼저 미술과 현실 세트를 만들고, 그 위에 리터치를 하거나 덮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귀의 세계 세트나 복도 장면도 현실과 귀의 세계를 따로 지어서 컬러감과 질감이 다르게 느껴지게 했고 기둥이나 바닥도 실제로 조금씩 기울여 관객이 명확히 인지하지 못해도 묘한 차이를 느끼게 하려고 했어요."
극 중 구천과 교감하는 귀매 '꺼먹살이'는 친근함과 기괴함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최 감독은 '꺼먹살이'의 디자인을 통해 설득력을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꺼먹살이 디자인은 정말 힘들었어요. 다른 귀매들은 역할이 비교적 명확한데, 꺼먹살이는 구천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친근한 존재가 돼야 하고 변신해서 조력하는 기믹도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설득력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이 많았고 여러 디자인을 거치다가 곳곳에 남아 있는 석상이나 토우, 돌과 흙의 질감에서 출발했어요. 원형이 되는 이야기에 검은색 이미지가 있어서 흙과 돌의 느낌으로 발전시킨 거예요. 구천과 계속 교류해야 하는 캐릭터라 귀여움도 중요한 요소였어요. 작가님들이 원형이 되는 이야기에서 '나는 꺼먹살이'라고 반복하는 지점에서 귀여움을 느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대본에서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 구성됐던 것 같아요."
극을 이끄는 남주혁(구천 역)과 노윤서(생강 역)는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작품의 뼈대를 단단히 지탱했다.
"구천은 굉장히 고독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툴툴거리지만 힘든 건 결국 자기가 다 하잖아요. 죽음을 넘나들고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이 처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물이에요. 주혁 씨와 캐스팅 단계에서 이야기했을 때 그런 캐릭터 이해도가 느껴져서 좋았어요. 밝고 장난스러운 친구인데, 동시에 멋있고 믿음직스럽고 가끔 보이는 고독하거나 외로운 눈빛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어요. 윤서 씨는 전작을 봤을 때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무언가를 돌파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 원천이 뭘까 궁금했는데 실제로 만나고 작업해보니 굉장히 스트레이트하고 대담한 매력이 있었어요. 담백하면서도 직선적인 지점이 인상 깊었어요."
장영남, 조승우 등 베테랑 배우들이 정통 사극의 무게감을 잡아주는 반면 두 주인공의 연기 톤은 비교적 현대적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는 인물 간의 관계성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대비였다.
"의도라기보다는 인물들의 위치와 관계에서 나온 대비인 것 같아요. 승우 씨와 영남 선배는 격식 있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인물들이고, 구천은 원래 그런 캐릭터이고 생강은 옹주임에도 구천과 가까워지면서 거리가 달라지잖아요. 그 대비가 더 커 보인 것 같아요. 두 분은 사극이 아니어도 뭘 해도 잘해주실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장영남 선배는 에너지 레벨이 높은 장면을 짧은 기간 안에 몰아서 찍어야 했어요. 기진맥진할 정도로 가는 상황이었는데도 카메라만 돌면 눈빛이 형형해지는 걸 보고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입이 돌아가는 연기도 직접 하신 거라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어요."
촬영 도중 발생한 대형 화재로 세트를 다시 지어야 했던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최 감독은 이같은 사고로 오히려 현장에서는 결속력을 다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화재가 작은 화재가 아니어서 어려움은 있었어요. 지었던 세트를 새로 지어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도 다친 분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제작사, 넷플릭스, 스태프분들이 오히려 저를 힘내게 해줘서 잘 돌파할 수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그분들이 오히려 저에게 '괜찮아요, 힘내시죠'라고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운이 짙은 엔딩을 둘러싸고 후속 시즌을 향한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확답 대신 두 인물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답변을 갈음했다.
"후속 시즌을 염두에 둔 결말이냐는 질문에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걸 먼저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하고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였어요. 다만 엔딩에 관해서는 작가님들과 토론하면서 '얘네가 너무 힘들고 불쌍했는데 조금 희망이 있으면 안 될까'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궁 안의 상황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지만, 어두운 곳에서 둘에게 조금의 희망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영된 엔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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