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 한 잔을 시켰는데 취하지 않는다. 잔을 부딪치고, 목으로 넘어가는 청량감도 즐기지만 다음 날 숙취는 없다. 요즘 사람들은 술을 끊는 대신 취할 순간을 고른다. 논알코올 맥주 한 캔에 담긴 것은 맥주 맛만이 아니다.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을 권리와 내일의 멀쩡한 컨디션까지 함께 산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논알코올 맥주 시장은 2014년 81억원에서 2024년 704억원으로 10년 만에 약 9배로 커졌다. 2027년에는 946억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말 논알코올 맥주를 취급하는 음식점도 약 5만5000곳으로 전년 3만2000곳보다 70% 이상 늘었다. 논알코올 맥주가 집에서 혼자 마시는 대체 음료를 넘어 식당과 술자리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주류업체들도 바빠졌다. 하이트진로음료가 지난 3월 내놓은 ‘테라 제로’는 출시 100일 만에 400만캔이 팔렸다. 오비맥주의 올해 1분기 논알코올 맥주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7.7% 늘었고, 롯데칠성음료의 ‘클라우드 논알콜릭’ 매출도 기존 제품보다 약 40% 증가했다. 맥주 맛부터 과일 향, 알코올 함량까지 선택지도 넓어졌다.
과거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필요했다. 건강검진을 앞뒀거나, 약을 먹고 있거나, 차를 가져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제는 반대다. 마시지 않는 데 별다른 이유가 필요 없다. 술자리는 즐기되 취기는 사양하고, 오늘의 흥보다 내일의 일상을 택한다.
논알코올 맥주가 파는 것은 절제가 아니다. 술을 마실지 말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다. 분위기는 누리면서 건강과 컨디션도 놓치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오늘 밤에도 누군가는 맥주잔을 힘껏 부딪친 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집에 돌아갈 것이다. 건배는 했지만 취하지 않았다. 분위기값만 정확히 계산했기 때문이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