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전까지 폭염은 걱정거리였다. 미국의 높은 기온과 습도, 멕시코시티의 고지대 환경이 선수들의 체력을 떨어뜨리고 경기를 망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실제로 일부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숨을 헐떡였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자주 물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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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회 전체를 놓고 보면 뜻밖의 변화도 있었다. 글로벌 스포츠매체인 ‘디애슬레틱’은 “이번 월드컵에선 선수들이 90분 내내 전력으로 압박할 수 없게 되면서 공을 무작정 쫓기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고 소개했다.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축구가 한발 물러나고, 공을 오래 소유하며 경기를 풀어가는 팀들이 힘을 얻었다.
최근 세계 축구의 유행은 ‘무한 압박’이었다. 공격수도 상대 수비수를 쫓아다녀야 했다. 창의적인 선수에게조차 화려한 패스보다 활동량이 먼저 요구됐다. 경기 속도는 빨라졌다. 하지만 정작 공을 잡은 선수가 주변을 살피고 전략적인 선택을 내릴 시간은 줄어들었다.
북중미의 뜨거운 햇볕은 이 흐름에 잠시 제동을 걸었다. 선수들은 언제 달리고 언제 쉬어야 할지를 계산했다. 공을 빼앗은 뒤에도 서둘러 전진하기보다 패스를 주고받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빠르게 뛰는 능력만큼 공을 영리하게 다루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런 환경을 가장 슬기롭게 이용한 팀이 스페인이었다. 스페인도 공을 잃으면 적극적으로 압박했다. 하지만 온종일 뛰어다닌 것은 아니었다. 공을 되찾기 위한 짧고 강한 압박을 펼친 뒤에는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다. 높은 수비 라인 뒷공간은 골키퍼 우나이 시몬이 부지런히 메웠다. 많이 뛰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반대로 압박에 크게 의존했던 오스트리아는 32강전에서 스페인에 0-3으로 졌다. 공이 없을 때는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막상 공을 되찾은 뒤에는 갈 길을 찾지 못했다. 공을 빼앗는 것보다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경기였다.
물론 폭염이 반가운 것은 아니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노르웨이의 8강전은 높은 기온과 습도 때문에 엘링 홀란을 비롯한 선수들의 움직임이 후반 들어 눈에 띄게 무뎌졌다. 스톨레 솔바켄 노르웨이 감독은 “공을 쫓는 데 체력을 쓰면 정작 공을 잡았을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월드컵은 작은 질문 하나를 남겼다. 축구가 반드시 더 빠르고 더 격렬해야만 재미있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수들이 잠시 속도를 늦추자 패스의 길이 보였고, 스타들의 재능이 빛났다. 뜨거운 날씨는 축구를 오히려 조금 더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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