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안정·경제발전 내세우며 야당후보 탄압…마무리 잘하는 지도자로 남을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우간다 대통령 요웨리 무세베니는 올해 초 7선에 성공함으로써 아프리카의 몇 안 되는 장기 집권 지도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우간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어서 2030년까지 집권하면 그는 86세까지 대통령직에 있게 된다.
그는 1986년부터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해서 올해로 40년을 맞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처음 집권할 때 문제를 제기한 지점이 바로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장기 집권이었다는 것이다.
정작 이제는 자신이 장기 집권 지도자가 돼 '사돈 남 말'식이 됐다. 도리어 아들에게 군 총사령관직을 맡겨 향후 부자간 권력승계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그에 대해 우호적이던 서방의 시각도 비판적으로 바뀌고 있다.
무세베니는 1944년 우간다 남서부 은툰가모에서 소몰이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몰이꾼 모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어린 시절 선교사들의 교육을 받고 빅토리아 호수 건너편에 있는 이웃 나라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대학에 유학해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당시 탄자니아는 국부로 일컬어지는 줄리어스 니에레레가 토착 사회주의로 청년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무세베니도 아프리카 해방운동과 연관된 좌파 학생단체의 의장이 됐다.
1971년 우간다에서 이디 아민이라는 악명 높은 독재자가 들어서자 무세베니는 탄자니아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구국전선이라는 반군 조직을 창설했다. 마침내 1979년 탄자니아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아민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1980년 과도 정부에서 무세베니도 국방장관 등을 맡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부정 선거로 밀턴 오보테에게 패배하자 반기를 든다. 5년의 반정부 게릴라전 끝에 오보테를 축출하고 결국 자신이 권좌에 올랐다.
그는 집권 초창기 경제 재건과 사법개혁에 나섰다.
1990년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다당제 도입 등 민주화 바람이 부는 가운데 1995년 새 헌법을 마련하고 이듬해 우간다 최초의 직선 대통령이 됐다.
무세베니는 2001년과 2006년에도 재선됐다. 2005년 개헌으로 임기 제한을 없애는가 하면 같은 해 국민투표에서 '다당제 복귀'에 대한 압도적 찬성표가 나오자 이듬해, 1980년 이후 처음으로 다당제 선거를 치르기도 했다.
2011년과 2016년에도 다시 재선됐으나 야권과 국제 선거 감시단은 투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2017년에는 대선후보의 75세 연령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2021년에는 우간다 첫 여성 총리를 지명하기도 했다.
그는 외형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장기집권을 연장했으나 뒤로 갈수록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야당 후보를 탄압한다는 논란을 빚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대선에서 그와 맞붙은 팝 가수 출신 야당 후보 보비 와인에 대한 박해이다. 와인 후보는 신변 위협 때문에 유세에서 방탄모와 방탄복을 착용했고, 2020년에는 유세 중이던 그를 체포한 것에 항의하던 지지자들도 군경의 강경 진압으로 최소 54명 숨졌다.
무세베니는 여론 조작 등을 이유로 선거 이틀 전에 젊은 층의 소통창구인 소셜미디어를 전격 폐쇄하기도 했다.
다른 권위주의 지도자들과 비슷한 행보였다.
우간다는 중위연령이 16.7세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젊은 나라이다. 35세 이하가 전체 인구(약 4천600만명)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나 만성적 청년 실업에 시달린다.
이들은 무세베니 집권 40년 동안 다른 리더십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그는 장기 집권을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 인프라 개선으로 정당화했다.
올해 유세 당시 "40년 전만 해도 우간다는 가장 많은 난민 발생 국가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난민 최대 수용 국가 중 하나가 됐다"고 자부했다.
그는 서방에서 '아프리카의 비스마르크'라는 평가도 받은 바 있다.
우간다는 2013년 남수단 내전에 개입해 비난받기도 했지만, 수단 내전 등에서 발생한 난민을 많이 받아들였다.
또 폭탄 테러 등이 끊이지 않은 소말리아의 유엔 평화유지군에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내는 국가이기도 하다.
콩고에서 모부투 독재정권을 축출해 로랑 카빌라를 지도자로 세우고 르완다 투치족 반군을 지원해 폴 카가메 현 대통령의 정권 창출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최근 분디부조 에볼라가 이웃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발병해 사망자만 1천명에 육박한 가운데 우간다는 감염자 20명 선에 그쳐 상대적으로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무세베니 정권이 이미 집권 말기에 들어갔으며 부자 세습을 둘러싸고 집권층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가 롱런한 성공적 지도자로 남을지 아니면 결과적으로 우간다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했다는 평가를 받을지 두고 볼 대목이다.
한편 비동맹과 반식민주의를 내세운 그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1987년, 1990년, 1992년 세 차례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농촌개발형 새마을운동을 주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해 그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방한한 외국 정상이 되기도 했다. 2016년 박 전 대통령의 우간다 답방과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군사적 외교 중단을 발표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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