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꿈'을, 이재명은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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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꿈'을, 이재명은 이룰 수 있을까?

프레시안 2026-07-25 00:10: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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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재건축론'을 들으면서, 그래도 집권 여당이 노선을 두고 토론을 한 적이 언제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권 민주당'의 역사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에서 시작한다. 단군 이래 최초의 정권 교체라 불렸지만 기쁨은 잠시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눈물을 흘렸다. 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맞아 그는 국민에 호소했다. 신자유주의식 개혁의 시작이었다.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미국을 위시한 서구 선진국은 '역사의 종말'을 외치며 신자유주의 개혁을 가속화했다.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으로 시작된 이 트렌드는 체제 경쟁 세력의 패배를 확인한 후 날개를 달고 전 세계의 국경을 누비며 영미식 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이식했다.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사실상 이 시스템을 계승했고, 이제 막 민주주의의 체제에 들어선 한국도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뼈를 깎는 심정으로 시장과 규범을 재편했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을 요체로 했다. 민영화, 금융 자유화, 노동 유연화, 규제 완화, 기업 구조 조정 등을 통해 한국은 글로벌 경제 무대 입장료로 막대한 유무형의 비용을 지불했다. 그리고 마침 중국의 WTO 가입으로 시작된 글로벌 분업 체계에 성공적으로 편입했다.

이 개혁은 한국의 좌파 진영을 분열시켰다. 2001년 전농 의장 강기갑은 김대중 대통령의 농민 간담회에서 손을 번쩍 들고 "농사꾼으로서 대통령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외치다가 경호원들에게 '들려' 나갔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최대 피해자들인 농민과 노동자는 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만들었고, 리버럴 세력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라졌다. 그런 맥락 속에서 집권한 민주당 2기 집권기, 노무현 정부는 진보적 의제를 내세우며 등장했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의 후속 작업을 위해 집권 후 진보적 공약들을 다수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놓지 않은 '개혁'은 이념적 잔재 청산이었다. 이른바 4대 개혁, 교육, 언론, 과거사 진상규명,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였다.

이때 집권 민주당 안에서 처음으로 노선 투쟁이 발생한다. 그 결과 온건파는 '사쿠라'로 몰려 밀려났고, 강경파는 개혁이 안될바에야 차라리 판을 깨는 걸 택했다. (이후 우리는 2026년에도 '국가보안법'이란 유물을 여전히 안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동안 민주당은 강경파와 온건파가 뒤섞인채 분열과 반목을 거듭했다. 강경파는 노무현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규정했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다. 물론 나는 이것이 '역사의 퇴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언젠가 겪어야 했을, 민주주의의 비용이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주당 내에서 벌어진 노선 투쟁을 기억한다. 총선에서 대패한 후 의석수 80석대로 쪼그라든 정세균 대표 체제 하에서 민주당은 '중도 확장'을 주장해 온 온건파를 중심으로 '뉴민주당 플랜'을 내놓았다. 집권 가능한 정당을 구축하기 위해 당의 지지기반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강경파는 이를 '민주당 정체성에 합치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수행한 김대중 정부와 한미 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의 후예들은 '충분히 진보적이지 못해서 정권을 내 줬다'고 생각했고, 결국 '뉴민주당 플랜'은 흐지부지됐다.

이 노선 투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탄핵'이라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집권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이른바 '조금박해'로 알려진 당내 온건파 그룹은 끊임없이 '중도 확장'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강경파에 의해 번번히 좌절당했다. 그리고 윤석열에게 정권을 내 줬다.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노선 투쟁' 대신 '윤석열 정권'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뭉쳤다. 하지만 윤석열이 스스로 자폭하는 바람에 민주당은 노선 투쟁 없이 두 번째로 '국가 비상사태'에서 집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민주당과 한국 정치 역사를 장황하게 나열한 이유는, 우리가 민주당과 민주당 계열이라 부르는 정당들 안에서 언제나 '중도 확장론'은 소수파였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단 한번도 중도 확장론은 민주당 내부의 노선 투쟁에서 주류였던 적이 없었다. 민주화 이후 네 번의 집권 경험 중 두 번이 보수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 비상사태' 하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어떤 노선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검증할 기회도 갖지 못한채 지금껏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뉴이재명'으로 불리는 민주당 내 '중도 확장파'가 헤게모니 싸움에서 중심을 잡고 다수파가 된 일이다. 유시민의 '이재명 정부 필패론'이나 '증축론을 벗어난 재건축론'에 대한 비판은 이제 당내 '강경파'가 소수가 됐음을 시사한다.

유시민 작가나 정청래 대표와 같은 이들이 주장하는 이념적 선명성(혹은 개혁의 선명성)은 '뉴이재명'들 입장에선 '쿨'하지 못한 낡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게 이익이 되는 정책에 따라 이리저리 지지 정당을 바꾸는 '스윙보터'는 이제 시대의 '미덕'으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유시민이든 정청래든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정통 민주당의 가치와 이념을 중시하는 핵심 지지층'(이른바 A그룹)을 자처하기에 좀 부끄러운 역사들이 많은 인물들이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입장을 이리저리 바꿔온 세월이 켜켜히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시민, 정청래 뿐 아니라 송영길, 김민석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의 '입장 바꿈'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아전인수로 해석하곤 하는 '민주당의 전통과 가치, 이념'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당 내에 '합의'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유시민 작가 말대로 A그룹과, B그룹과, C그룹이 각각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런 게 있긴 있는 것인가? 권력 투쟁의 외피 속에서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이 시대에 맞는 '비전'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고, 민주당 내 세력들은 그 비전을 자신있게 말하고, 추진할 수 있는지 여부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리버럴 세력' 안에서 두 그룹이 본격적으로 집권을 위한 노선 투쟁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이재명 대통령이 '재건축'을 기획하고 있다면 오히려 흥미로운 일이다. (유시민 작가는 '분당'이나 '정계개편'을 얘기했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리버럴 세력 안에서 다수를 점한 이재명 대통령은 일단 자신의 카드를 내 놓았다. 국가 비전으로는 차세대 국가 기반 산업으로 'AI 강국'을 내세웠고, 정치적으로는 '구조적 다수론'을 제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를 만들기 위한 '중도 확장론'이 정권 재창출에 유리할지, 그 길은 필패의 길이라며 개혁의 선명성을 주장하며 이른바 '진보 성향 유권자'들을 확실히 붙잡아 두자는 유시민·정청래의 노선이 유리할지 지켜볼 일이다.

여기에서 안타까운 건 진보 정당의 부재다.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서구 선진국의 시스템 속에 안착하면서 '지표상'의 경제적 풍요를 달성했다. 한국 유권자는 그래서 더이상 '체제 경쟁'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제 한국은 서구 선진국들이 겪어온 '정체성 혁명'을 맞이했고, 역시 서구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극우주의의 부상을 체험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고도화되고, 정당간 선거 경쟁이 완전히 확립되면(즉, 무장투쟁 같은 게 사라지면), 체제 자체를 둘러싼 투쟁보다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경쟁하게 된다. 전통적 의미의 좌파는 힘을 잃고 리버럴 세력과 보수 정당의 '양자 대립(양당제)'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의제는 주류화되지 않았을지언정 민주당에 거의 다 흡수된 상태다. 당분간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유의미한 위치를 차지하기 어려워졌다. 정의당과 같은 포퓰리즘을 차용한 진보정당도 '정체성 정치'에 매몰되며 한계를 보이고 스스로 소멸해 버렸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미국처럼 '민주사회주의자' 그룹이 의미 있는 세력을 이루는 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전제 조건이라는 게 트럼프라는 사실은 끔찍하다.) 지금은 유권자들에게 진보정당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 시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양당제의 시대, 민주당의 역할은 더 막중해졌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노무현 정부가 소환된다. 노무현은 당내 강경파의 비토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보수정당에 '대연정'을 제안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구조적 다수'를 이루고자 한 정치 실험에서 실패했다. 그의 '대연정 제안'은 권력을 일부 이양하는 방식이었다. 그 실패의 위험성을 이재명이 모를리 없을 것이다. 이재명은 아직 임기 초반이고, 노무현에 비하면 당내 우군이 꽤 탄탄한 편이다. 그는 노무현보다 실용적이고, 노무현보다 유연하다. 판도 다르다. 노무현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격동기 속에서 실패를 맛 봤지만, 지금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고착화된 시대다.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체념이 주류가 되어 버린 시대에서 개혁을 수행해야 하는 이재명은, 노무현이 이루고자 한 '구조적 다수'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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