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이상했다. 딱 특정 지을 수는 없지만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남편이 이렇게 시작하며 쓴 글이 24일 인벤을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퍼졌다. 이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처럼 돌고 있지만 실은 2년 전인 2024년에 올라온 글이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배우자 불륜 사연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축에 든다. 오래된 글이 다시 소환된 셈인데, 읽는 이들을 붙든 건 자극적인 전개가 아니라 감정이 지워진 담담한 문체였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쓴이는 '와이프 바람 났는데 화가 안 나 ㅎㅎ'란 제목으로 쓴 글에서 아내에게서 언제부터인가 위화감을 느꼈다고 먼저 언급했다. "평소와 거의 같아 보였지만 미묘하게 다른, 그런 게 쌓이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던 것 같다"고 적었다.
빨래를 전담하던 그는 낯선 양말을 발견한다. 자신은 신지 않을 요란한 문양의 양말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아내가 "스타킹이 구멍 나서 빌려 신었다"고 변명을 늘어놨다고 한다. 그는 "그냥 알았다고 했다"고 썼다.
이후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스킨십이 과해졌고, 반찬 가짓수가 늘었으며, 하지 않던 요리를 하고, 주말엔 시어머니를 모시고 쇼핑까지 갔다. 결혼 3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는 게 너무 느껴져서 일부러 퇴근을 늦췄다"며 "자꾸 전화해서 어디냐고 확인하는 게 오랜만에 당해보는 구속 아닌 구속이라 오히려 반가웠다"고 했다. 이어 "아마 그렇게 쭉 갔으면 그냥 덮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목격하고 만다. 야근 후 귀가하던 날 이중주차 자리가 없어 인근 상가 주차장에 차를 댔는데 그곳 모퉁이에 아내와 한 남자가 있었다. 실랑이 끝에 두 사람이 껴안고 입을 맞추는 장면을 지켜봤다. 글쓴이는 "신기할 정도로 화나거나 슬프지 않았다"며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을 보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갤럭시 스마트폰을 구입한 뒤 줌을 당겨서 사진을 찍은 건 처음이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주말을 평소처럼 보냈다. 일요일엔 함께 영화도 봤다. 이때 그는 자신에게 기대오는 아내를 순간적으로 피할 뻔했다고 적었다. 불쾌하고 닭살이 돋아서였다. 아내가 "사람 모양을 한 무언가처럼 느껴져서 소름이 돋는다"고도 했다. 그러다 아내가 잠든 사이 휴대전화 배경화면을 아내와 불륜남이 입을 맞추는 모습으로 바꿔놓고 새벽에 집을 나왔다.
그는 "화가 나지도 슬프거나 허탈하지도 않다"며 "그냥 이혼 절차를 검색해보면서 생각보다 간단하면서 복잡하다는 것만 생각 중"이라고 썼다. 상대 남성은 아내의 전 직장 상사였다. 아이 돌잔치 때 본 적이 있어 얼굴도 아는 사이였다. 배울 점 많은 선배라는 말을 아내로부터 여러 번 들었다. 팀장 승진을 이유로 출산을 미뤄왔던 터라 아이가 없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후속 글에서 글쓴이는 아내의 반응을 소개했다. 글쓴이에 따르면 아내는 기절하듯 울며 빌었다. 그러면서 글쓴이에게 "자기는 아무렇지 않으냐"고 물었다.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 모습이 이상하다며 "잘못한 건 맞지만 사람 취급은 해달라"고, "차라리 화를 내달라"고 했다. 글쓴이는 짐을 싸면서 건조기를 돌리고 재활용 쓰레기까지 챙겼다. 아내가 "이 상황에 그걸 버릴 생각이 나느냐"고 허탈하게 물었다. "왜 이랬는지 궁금하지도 않으냐"는 물음에 그는 "알아야 하느냐"라고 반사적으로 답했다고 적었다. 글쓴이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받아줄 거냐"고 묻는 아내에게 그런 말은 말라고 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한동안 집을 나갔다 돌아온 글쓴이에게 아내는 그동안 글쓴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던 일을 카카오톡 대화까지 출력해 늘어놨다고 한다. 회식으로 늦게 귀가한 일, 음력인 장모 생일을 잊은 일, 첫 결혼기념일 레스토랑 예약을 하지 않아 다툰 일, 결혼 전부터 키우던 강아지에게 사료를 잘못 줘 입원시킨 일 등이었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아무리 찾아봐도 이런 것밖에 없었다. 머리가 어떻게 돼서 저런 것들로 불행하다고 느끼고 그 남자에게 속풀이를 하다가 선을 넘었다.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그 순간 남편에게 남은 감정은 역겨움이었다. 그는 "화도 나지 않았고 슬픔도 없었는데 역겨움은 남았다"며 "창문을 열고 헛구역질을 하다가 충동적으로 난간을 잡고 올라가려 했다"고 적었다. 아내가 놀라 그를 붙잡았다. "내가 잘못했다"고, "이러지 말라"고, "하라는 대로 다 하겠다"고 했다.
이혼은 글쓴이 표현대로라면 '싱거울 정도로 무난하게' 진행됐다. 아내는 자신이 가져온 만큼만 들고 나갔다. 다 끝난 줄 알았다는 게 그의 서술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왔다.
회사 업무가 엉망이 됐다. 본인은 평소처럼 했다고 여겼지만 자료가, 특히 숫자가 어긋났다. 간단한 덧셈조차 되지 않았다. 걷다가 멈춰 서고, 대화 중 허공을 응시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돌린다는 지적을 동료에게서 들었다. 그는 "말은 그렇게 안 했지만 내가 미친 것 같다, 그거였다"고 적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30, 29, 28…" 하고 세는 검사를 받던 중 그는 중간 기억이 사라졌다고 했다. "혼동한 게 아니라 그냥 없었다"며 "영상 속 나는 그 짧은 순간에 경련하듯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고 썼다.
6개월 넘게 치료를 받고 있다고 그는 적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인척의 공장에 적을 뒀다. 가장 심할 때는 '고맙습니다'를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단어마다 몇 초씩 끊어 말했다. 억지로 이으려 하면 과호흡이 왔다고 한다. "마치 내 몸이 기능하는 걸 거부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기쁘지도 않다"며 "감정을 거세당한 것 같다"고 했다. 글쓴이는 의사가 "감정을 직면해야 한다. 외면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파먹을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전하고 "모든 설정과 전개가 간편화된 채 독백만 있는 삼류 소설을 썼다"며 글을 맺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이라 부르며 거리를 두려는 시도였다.
네티즌 반응은 크게 세 갈래였다. 우선 글쓴이의 정신 상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가장 많았다. 한 이용자는 "이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져 버렸다"고 적어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다. "고장이 났다. 뇌가 일부러 기억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마 생존하려는 방어본능인 듯하다"는 해석도 있었다. "시간이 약이니 부디 살아남으시길 바란다", "약을 먹으면 점차 나아진다"는 위로도 이어졌다.
사실 여부를 두고도 의견이 갈렸다. "'전화 온다'는 마무리 때문에 지어낸 이야기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불륜 커플이 상가 주차장에서 껴안고 입을 맞추겠느냐"는 의심도 나왔다. 반면 "불륜 상대가 집 근처는 들킬까 봐 조금 떨어진 상가에 주차했고, 남편이 마침 자리가 없어 거기로 갔다가 들킨 흐름 같다"는 반박, "집에서도 벌이는데 상가 주차장쯤이야"라는 반응도 있었다. 한 이용자는 "지어낸 이야기라면 작가로서 소질이 있는 듯하다. 감정이 이렇게까지 느껴진다"고 평했다.
글을 소설로 받아들이려는 반응도 눈에 띄었다. "그냥 소설이라고 치부하고 살고 싶다는 얘기 같다"는 해석에 "정신과 상담에서 감정에 직면하라는 조언을 듣고 자기 이야기를 요약해 소설로 쓴 것 아니냐. 너무 슬프다"는 공감이 뒤따랐다. "소설이든 아니든 (마음이) 망가져 있다"는 반응이 사연을 접한 이들의 대체적인 정서에 가까웠다.
현재 블라인드에서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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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이상했었어. 딱 특정 지을수는 없지만 위화감이 느껴졌었거든. 평소랑 거의 같아 보였지만 미묘하게 다른, 그런게 쌓이다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던 것 같아.
우리는 빨래를 내가 전담해. 모르는 양말이 있더라. 나는 절대로 신지 않을 요란한 문양의 양말. 와이프가 그걸 보더니 나는 아무말도 안했는데 변명을 하는거야. 자기 스타킹이 구멍나서 빌려 신었다는 .. 정말 너무나 허술한 그런 말을 하더라. 그냥 알았다고 했어.
갑자기 애정행위, 특히 스킨쉽이 과해졌어. 반찬 가지수가 늘었고 잘 안하던 요리도 해주더니 급기야 주말에는 엄마 데리고 쇼핑도 가더라. 결혼 3년만에 처음 겪는 일이였어. 뭐랄까 좀 실소가 나왔다? 애달팠다? 그랬던 것 같아. 내 눈치를 보는게 너무 느껴져서 일부러 퇴근을 늦췄어. 자꾸 전화해서 어디냐고 확인하는게 너무 오랜만에 당해보는 구속 아닌 구속이라 오히려 반가웠어. 아마 그렇게 쭉 갔으면 그냥 덮었을 것 같아.
봐버렸어. 야근하고 퇴근하는데 그날따라 이중주차 자리도 없어서 인근 상가주차장에 댔어. 모퉁이에 둘이 있더라. 약간 다투다가 와이프가 가려하니 남자가 잡고 실랑이 하더니 서로 껴안고 키스하는걸 쭉 봤어. 신기할정도로 화나거나 슬프지 않았어. 나랑 전혀 상관없는 타인을 보는, 드라마나 영화보는 그런 감정이 느껴지더라. 사진은 딱 한장 찍었어. 갤럭시 사고 줌땡겨서 찍어본건 처음이였는데 성능 좋더라. 주식살까?
평소처럼 주말 보내고 일욜날은 같이 영화도 봤어. 와이프 잠자길래 바탕화면 그 사진으로 바꾸고 새벽 3시에 나왔는데 지금까지 그냥 주차장에 있는 중이야. 앞에 썼지만 화나지도, 슬프거나 허탈하지도 않아. 그냥 이혼절차 검색해보면서 생각보다 간단하면서 복잡하다는것만 생각중이야.
와이프는 8시 조금 넘으면 일어나. 항상. 이제 곧 깰거고 연락이 오겠지? 사과 같은건 필요없으니 그냥 물흐르듯이 이혼하고 싶다. 더 이상 어떤 형태로든 엮이는게 싫어. 솔직히 말하면 와이프가 약간 사람 모양을 한 무언가처럼 느껴져서 소름 돋거든. 일요일날 영화보면서 기대는데 순간적으로 피할 뻔 했어. 불쾌하고 닭살돋아서.
아 상대 남자는 아는 사람이야. 와이프 전 직장 상사거든. 그 사람 아이 돌잔치 때 봐서 얼굴도 알아. 정말 배울 점 많은 선배라는 말 여러번 들었었는데 너무 배우다보니 감정도 섞였나봐. 이혼하고 와이프 만난건지 어쩐건지 모르지만 뭐 상관하고 싶지는 않네.
팀장까지는 가보고 싶다고 해서 아이 계속 미뤘었는데 다행이다 싶어. 이것만은 와이프에게 고맙다. 진심이야.
전화온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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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건조한 지옥이 시작되었어. 와이프는 하루를 거의 기절하듯이 울면서 빌고 다음날은 죽기 직전인 사람처럼 눈만 뜨고 있더라. 어느순간 잠들어 있길래 이불 덮어줬는데 갑자기 눈을 뜨더니 날 쏘아보기 시작했어.
'자기는 아무렇지 않아?'
실소가 나왔어. 내 반응이 너무 건조한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그 특유의 말투로 힐난했어.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 내가 너무 이상하대. 자기가 잘못한건 맞지만 사람 취급은 해달라더라. 차라리 화를내달라면서 또 울길래 다 듣고 있다가 내가 나간다고 했어.
짐을 싸고 건조기를 돌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챙겨서 나오는데 와이프가 허탈하게 웃더라. 이 상황에 그걸 버릴 생각이 나냐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냐고 물어보면서
'항상 나만 나쁜x이지. 그래 내가 다 망쳤어. 그런데 너 진짜 이상해. 왜 이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라고 하는데 즉각적으로 대답을 했어. 항상 생각을 하고 대답하느라 약간의 딜레이가 있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반사적으로 입이 움직이더라.
'알아야해?'
세번 쯤. 입술을 달싹이고 손톱을 세번 쯤 뜯고는 주저앉더라.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받아줄거냐기에 하지 말라고 했어. 차 앞에 멍하니 서서 10분쯤 있었던 것 같아. 난 '멍 때린다' 라는걸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왜 하는지 알게 되었어. 머리를 비우니까 편해지더라고.
갈 곳은 없었지만 차를 몰았어. 보이는 도로에서 직진만 하다보니 왠 공단이 나오길래 담벼락에 차를 대고 허리를 젖혔는데 눈뜨니까 다음날 이였어. 출근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지만 연락은 없었어. 팀장님께 전화했더니 질책 대신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어. 적당히 변명 하려했는데 요 며칠 너무 이상했다고 급한 일 없으니 연차 몰아써도 된다고 하시더라. 오후에 출근했지만 다시 같은말 하시길래 사정 설명 드리고 쉬기로 했어.
저녁이 되고 와이프한테 연달아 전화가 왔어. 세번 쯤 넘기다가 받았는데 집으로 와달래. 안오면 자기가 무슨 짓 할지 모른다고 소리지르길래 결국 갔더니 그 동안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던 것들을 펼쳐놓더라. 카톡은 출력까지 해놨었어.
회식 때문에 규칙 어기고 늦게 귀가한 일, 음력인 장모님 생신 잊었던 일, 첫 결혼기념일날 가기로 했던 레스토랑 예약 안해서 싸웠던 일, 결혼전부터 키우던 강아지 내가 사료 잘못줘서 입원해야했던 일 등등
하나하나 다 언급하더니 갑자기 무릎 꿇으면서 '아무리 찾아봐도 이런 것 밖에 없었다.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되버려서 저런것들로 불행하다 느끼고 그 남자에게 속풀이 하다가 선을 넘고 돌아오지 못했다. 평생 내 잘못 잊지 않겠다. 제발 용서해달라' 고 빌더라. 눈도 못 마주치고.
화도 나지 않았고 슬픔도 없었어. 그런데 역겨움은 남았더라. 창문을 열고 헛구역질을 하다가 충동적으로 난간을 잡고 올라 가려했어. 와이프가 놀라서 잡더라.
자기가 잘못했다고
이러지 말라고
하란대로 다 하겠다고
싱거울 정도로 무난하게 쭉- 지나갔어. 모든게 그대론데 그 사람만, 아니 그 사람과 몇가지 가전만 사라진 상태가 되더라. 딱 자기가 가져온 것 만큼만 들고나갔고 장인 장모님과는 죄송합니다 통화 한번이 전부였어. 엄마는 그저 안아만 주셨고.
그렇게 다 끝난 줄 알았어. 다소간의 혼잡함이 있었지만 인생의 이벤트 중 하나로, 시간이 해결해줄거라 믿었어. 일어나서 출근했다 퇴근하고 티비보다 잠드는, 아 목요일과 토요일엔 복권을 사는 그런 삶이 언제까지나 쭉- 이어질거라고.
팀장님이 부르시더라. 힘든건 아는데 일은 프로답게 하자고. 엉망이였거든. 난 분명히 평소처럼 했는데 자료가 엉망이였어. 특히 숫자가. 정말 간단한 덧셈도 잘 안되더라. 웃긴건 주변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다는거야. 팀장님도 나한테 한소리 하시고는 퇴근쯤에 오히려 사과하시더라. 난 이유를 몰랐어. 정말 친하게 지내던 타부서 선배가 정말 굳은 표정으로 말해주기 전 까진.
내가 이상하대. 걷다가 갑자기 몇초간 우두커니 서있고 서로 눈을 보면서 대화하다가 갑자기 허공을 보고 한참 자료정리 하다가 미친놈마냥 머리를 오만군데로 돌렸다더라. 말은 그렇게 안했지만 내가 미친 것 같다- 그거였어.
아직도 기억해. 맞은편 의사 선생님이 제법 큰 목소리로 30,29,28 .. 25,24 .. 19 -
분명 하나씩 카운트 하시는데 중간 기억이 없었어. 혼동한게 아니야. 그냥 없었어. 테스트 동안 나를 찍은 영상을 보여주시는데 30초 카운트 하는 그 짧은 순간에 쉴새없이 눈을 깜빡이더라. 그냥 깜빡 이 아니라 깜빠바박. 경련하듯이 ㅎㅎ
6개월 넘게 치료를 받고 있어. 퇴사했고 인척분 공장에 들어왔어. 재택근무 라지만 사실상 백수야. 가장 심했을때는 '고맙습니다.' 를 '고맙-2초-습니-1초-다.' 로 말했어. 억지로 '고맙습니다.' 하면 과호흡이 왔어. 마치 내 몸이 기능하는걸 거부하는 그런 느낌.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눈물이 나지 않아. 기쁘지도 않고. 그냥 모든일에 그래. 감정을 .. 그래 거세당한 것 같아.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단절되더라도 놀랍지 않을거야.
선생님은 감정을 직면해야 한다셨어. 외면하고 모른척해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더라. 느릴수는 있지만 끊임없이 나를 파먹을거고 종국엔 삼켜질거래. 아주 순화되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셨지만 의미는 다르지 않았어. 그래서 소설을 썼어. 모든 설정과 전개가 간편화 된 채 독백만 있는 삼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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