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 임신중지’ 산모 2심서 무죄…7년째 방치된 입법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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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주 임신중지’ 산모 2심서 무죄…7년째 방치된 입법 공백

투데이신문 2026-07-24 15:46: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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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후기 임신중지 여성 살인죄 적용 사건 항소심 선고에 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br>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후기 임신중지 여성 살인죄 적용 사건 항소심 선고에 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아 살인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산모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병원장과 집도의도 감형받은 가운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이어진 ‘입법 공백’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김용석 부장판사)는 전날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150만원, 추징금 900만원을 선고하고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을 제한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는 징역 2년 6개월과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반면 산모 권모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1심은 병원장에게 징역 6년, 집도의에게 징역 4년, 산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권씨가 당시 태아가 이미 사산된 상태로 배출되는 것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진이 살아 있는 태아를 살해할 것이라는 점을 권씨가 인식하거나 이를 용인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임신을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속하는 영역이라고 전제하면서 임신중지 결정과 출생한 영아를 살해한 의료진의 행위는 법적으로 구별해 평가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해당 사건은 2024년 권씨가 유튜브를 통해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이후 보건복지부의 수사 의뢰를 받은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가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제왕절개로 분만된 태아를 의료진이 사각포로 덮은 뒤 냉동고에 넣어 숨지게 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경영난을 겪던 병원장이 브로커를 통해 약 2년간 527명의 임신중절 환자를 소개받아 약 14억6000만원의 수술비를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형법상 살인죄의 대상은 ‘사람’이다. 대법원은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시점부터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는 태아가 제왕절개를 통해 산모와 완전히 분리된 상태였던 만큼 검찰은 태아를 ‘사람’으로 보고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인권·여성단체들은 “임신중지 무죄, 제도 공백 유죄”라고 평가하며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째 이어지고 있는 입법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는 판결 당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국회 등을 향해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보건의료체계와 의료 가이드라인 마련, 임신중지 약물 도입,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 체계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피고인 권씨 변호인인 김명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단순히 피고인 개인의 무죄를 넘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장기간 이어진 입법 공백과 국가의 책임 방기가 의료현장과 임신중지 당사자들에게 초래한 혼란을 확인한 판결”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제도와 절차를 조속히 마련해 더 이상의 혼란과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8월 1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출범식에서 관계자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2022년 8월 1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출범식에서 관계자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도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판결은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보장할 법적·제도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진에게 형사책임을 물은 것으로, 한국 사회에서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여전히 제도적으로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인권법 및 기준에 따르면 임신중지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이자 인권의 문제이며 임신중지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제공한 사람, 또는 이를 지원한 사람을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며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것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축시키고 필요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 예방 가능한 산모 사망과 질병의 위험을 높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임신 후기 임신중지와 태아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를 규율할 법적 기준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째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국회에 2020년 말까지 관련 법률을 개정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기존 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하는 한편, 태아의 생명 보호 역시 국가가 보호해야 할 중요한 헌법적 가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는 현재까지 임신 중지 시기, 의료 절차, 의료인의 책임 범위, 국가의 지원 체계 등을 규정하는 후속 입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임신 후기 임신중지와 관련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법원이 개별 사건의 사실관계와 기존 형법 규정을 토대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현재 미허가 임신중지 약물인 ‘미프진’의 허용 방안을 법 개정 전이라도 검토해야 한다고 관계부처에 주문하면서 임신중지 입법 공백 문제에 대한 해소 방안이 재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회에는 임신중지 제도 정비를 위한 모자보건법 개정안 여러 건이 계류 중이다. 진보당 손솔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법률상 ‘인공임신중절’을 ‘인공임신중지’로 바꾸고 수술뿐 아니라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도 제도권 안에서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이수진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개정안에도 임신중지 약물의 사용 근거를 마련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조사관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건에서 산모는 결과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는 법원이 자기결정권을 폭넓게 인정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개별 사실관계에 따른 판단”이라며 “입법 공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다른 사건에서 얼마든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7년째 관련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채 법원이 개별 사건마다 판단을 내리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번 사건은 임신중지 관련 의료체계와 임신 주수 기준, 상담·숙려 절차 등을 조속히 법률로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라며 “저출산 문제와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임신중지 권리는 별개의 사안인 만큼 정부, 국회는 두 문제를 분리해 논의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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