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중 남편 폭력에 대비해 CCTV를 설치한 여성이 자동 녹음 기능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 AI 생성 이미지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A씨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집에 CCTV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 CCTV가 A씨를 형사재판에 서게 만들었다.
CCTV에 포함된 자동 녹음 기능 때문이었다. A씨는 영상 촬영이 목적이었을 뿐 녹음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검찰은 A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정식재판에 넘겼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방어 목적으로 설치한 CCTV 때문에 처벌받을 수도 있는 걸까?
가정폭력 증거 잡으려다 '도청' 혐의로 정식재판
A씨의 지인은 최근 A씨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으로 정식재판을 받게 됐다며, 법률 상담을 구했다. A씨는 현재 남편 B씨와 이혼 소송 중이다.
B씨는 이혼 과정에서도 집에 찾아와 폭행을 하거나 기물을 부수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B씨는 이 일 이후 A씨를 폭행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아동학대 혐의로도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계속되는 폭력에 위협을 느낀 A씨는 집에 CCTV를 설치했다. 그런데 A씨가 설치한 CCTV에는 기기 작동과 동시에 자동으로 대화가 녹음되는 기능이 있었다. A씨는 녹음 기능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영상 촬영이 주된 목적이라 녹음 기능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고 한다.
설치 당일, B씨는 CCTV를 발견하고 메모리 카드(SD카드)를 빼내 A씨를 고소했다. 검사는 A씨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약식기소가 아닌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녹음 기능 인지'가 '고의'와 같을까…변호사들 “다툴 여지 충분”
변호사들은 이 사건의 핵심을 '고의성'으로 봤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다'는 고의가 있어야 성립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소울 정진권 변호사는 “지인은 CCTV를 설치했을 뿐 별도로 녹음을 켠 것이 아니고, 녹음 기능을 세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정황이 있다면 ‘고의’를 다툴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명중 임승빈 변호사 역시 “'타인 간 대화를 청취·녹음할 의사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라며 “영상 촬영 목적이었고 녹음 내용을 실제로 청취·이용한 사실이 없었다는 점이 고의 부인의 관건이 된다”고 짚었다.
실제로 A씨는 설치 당일 B씨에게 SD카드를 빼앗겨 녹음 내용을 확인하거나 활용한 적이 없었다. 이런 사정은 재판에서 A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케이앤디법률사무소 한수연 변호사는 “녹음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아예 모르고 재생하지 않은 정황이 있지 않다면 무혐의는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해, 녹음 기능에 대한 인지 자체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도 시사했다.
유죄여도 실형 가능성 낮아…'가정폭력'이 중요 양형 사유
만약 법원이 A씨의 고의를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리더라도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변호사들의 중론이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법정형에 벌금형이 없다.
그럼에도 변호사들은 A씨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방어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한 점, 실제 녹음 내용을 활용하거나 유포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선고유예나 집행유예 가능성을 높게 봤다.
법률사무소 평정 김단 변호사는 “반복적 가정폭력 피해라는 설치 경위, 녹음 내용의 미활용, 남편 역시 폭행 등으로 기소된 사정은 모두 유리한 양형 요소”라며 “실무상 이러한 사건에서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로 마무리된 사례가 다수 있다”고 밝혔다.
와이에이치 법률사무소 김영호 변호사도 “초범이고 실제 피해가 없으며, 오히려 피해자 지위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실형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정식재판, 왜 변호사 선임이 필수적인가
검사가 벌금형 등으로 약식 기소하지 않고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실에 A씨는 위축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통신비밀보호법의 법정형에 벌금형이 없다는, 절차적인 측면이 크다.
법무법인 우선 이민철 변호사는 “통비법 위반은 법정형에 벌금형이 없고 오직 징역형과 자격정지만 규정되어 있어, 기소될 경우 절차상 반드시 정식재판을 거치게 된다”며 “재판 회부 사실 자체에 위축될 필요 없다”고 조언했다.
변호사들은 정식재판까지 가게 된 이상, 복잡한 법리 다툼을 위해 전문가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의성 부인부터 가정폭력 피해 사실 입증까지, 체계적인 변론 전략이 재판 결과를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한강 허은석 변호사는 “통신비밀보호법 사건은 고의와 설치 목적에 대한 법리 다툼이 중요한 만큼,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구체적인 방어 논리를 준비하는 것을 권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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