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주도한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보유세 강화와 대출 규제 조정, 공급 확대 등 정부의 향후 정책 방향이 공개됐지만 정부가 마련한 온라인 여론 수렴 창구에서는 규제 강화보다 완화와 실수요자 예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집값 상승과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이미 주택을 계약했거나 이사·전세보증금 반환 등을 앞둔 실수요자까지 획일적인 규제를 적용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불만이 집중됐다.
토론회에서도 보유세를 높여 부동산 보유 부담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양도세·취득세를 낮춰 매물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동시에 제기됐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둘러싸고도 공급 확대 필요성과 원주민 재정착 문제를 놓고 견해가 엇갈렸다. 정부가 집값 안정과 거래 정상화, 투기 억제, 실수요자 보호라는 여러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면 규제의 강도보다 적용 대상과 예외 기준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유세 강화·전세대출 조정 꺼낸 정부…온라인 제안 40%는 주택금융
정부가 보유세와 대출 규제 강화를 부동산 시장 정상화의 주요 수단으로 제시한 것과 달리 온라인 여론 수렴 창구에서는 규제를 풀어 달라는 요구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르데스크가 정부가 개설한 '부동산토론회.kr' 게시판을 분석한 결과 국민 부동산 정책 제안은 총 6765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주택금융 관련 제안이 2740건으로 전체의 약 40.5%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주택공급·규제 분야는 2140건, 부동산 세제 분야는 1880건이었다.
주택금융 관련 게시판 내 단순 키워드 검색에서도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표현이 비교적 많이 확인됐다. '완화'라는 단어가 포함된 게시물은 500건, '풀어'는 100건, '유연'은 40건으로 집계됐다. 반면 '강화'가 포함된 게시물은 101건이었다. 키워드가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 각 게시물의 찬반 입장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게시판 전반에서 획일적인 규제 적용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특히 주택금융 분야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총량 규제와 은행별 한도 축소로 이미 계약을 체결한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분양계약을 마친 뒤 잔금대출을 받지 못하거나 이사 시점에 따라 대출 조건이 달라지는 문제, 중도금·잔금 집단대출 한도를 확대해 달라는 요구가 대표적이었다.
전세대출 규제와 관련해 한 게시자는 "투기를 막아야지 자녀양육, 교육, 부모님부양, 직장문제 등 실제 필요한 상황에서는 상환 가능한 만큼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게 맞지 않나"며 "1주택자를 잠재적 투기꾼으로 몰아세우는 건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는 "부동산 대출 규제 여파로 무주택자 생애최초 신혼부부인데 디딤돌대출을 아예 받을 수 없게 돼 고금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자산 축적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2030세대가 현행 대출 규제로 내 집 마련 기회까지 잃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세퇴거자금대출 정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한 대출까지 투기성 대출과 동일하게 제한하면 임대인뿐 아니라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임차인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 폐지된 정책모기지 상품을 복원하거나 청년·신혼부부에 대한 대출 한도를 확대해 달라는 제안도 이어졌다.
이러한 민심은 23일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이 대통령의 규제 강화 기조와 엇갈린다. 이 대통령은 토론회에서 주택금융 규제와 관련해서는 전세자금대출 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세대출이 지나치게 쉽게 공급되면서 전셋값과 집값을 끌어올리고 전세사기의 토대가 됐다는 판단으로 완화보단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다만 청년과 신혼부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등에게는 정책 목적에 맞는 선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이 대통령은 부동산 보유세 인상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통상적인 선진국 수준으로 하려면 3배는 올려야 한다"면서도 급격한 인상에 따른 조세 저항을 고려해 단계적 차등 과세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통상적인 1주택을 기준으로 기본 보유 부담을 설정한 뒤 실거주 주택과 서민·중산층 보유 주택, 지방 주택에는 세 부담을 낮춰 주고 초고가 주택과 다주택, 비거주 투기 목적 주택에는 가중하는 방식이다. 같은 1주택자라도 주택 가격과 이용 목적, 거주 지역에 따라 세금을 다르게 부과하겠다는 구상이다.
보유세를 높이는 대신 주택을 처분할 수 있는 퇴로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보유세만 강화하면 매물이 잠길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한시적으로 양도소득세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반면 1주택 양도세 비과세 혜택은 생애 횟수나 총액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규제 풀되 실수요자 구분해야"…세제·공급 정책도 예외 장치 요구
토론회 현장에서도 규제의 일률적인 적용을 경계하는 의견이 이어졌다. 수원의 한 아파트 입주 예정자는 실거주 목적으로 2년 전 분양을 받았지만 최근 은행별 가계대출 한도가 소진돼 잔금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 계약자에게 경과 조치나 예외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기존 제도를 믿고 계약한 실수요자가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으로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며 관련 상황을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한 대출 규제 기조는 유지하되 기존 계약자와 청년, 신혼부부, 생애 최초 구매자에게는 구체적인 사정을 반영한 핀셋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역별 금융 여건을 반영하지 않은 전국 단일 규제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제주 등 지방은 수도권보다 소득 수준과 주택 가격, 거래량이 낮은데도 동일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면서 무주택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까지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혼인이나 상속 등 개인이 선택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금융 지원에서 배제되는 문제도 거론됐다. 결혼 이후 소득 합산으로 대출과 청약 조건이 불리해져 혼인신고를 미루는 이른바 '결혼 패널티'와 미성년 시절 상속받은 소수 지분 때문에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은 예외적 사안을 별도로 심사해 구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제 분야에서도 보유세 강화 자체보다 과세 기준과 예외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컸다. 이 대통령과 일부 참석자들은 '똘똘한 한 채' 선호가 서울 초고가 주택으로 수요를 집중시키고 주변 집값까지 끌어올렸다며 주택 수뿐 아니라 자산 가액을 기준으로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실거주 1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를 획일적으로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직장이나 자녀 교육, 가족 간병 등의 이유로 본인 소유 주택을 임대하고 다른 지역에 세 들어 사는 경우까지 투기 목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유세 강화가 임대료 상승으로 전가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주택자와 비거주 주택 보유자의 세 부담이 높아지면 임대인이 이를 전세보증금이나 월세에 반영해 세입자 부담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유세 인상과 함께 세입자 보호, 고령자 납부 유예, 한시적 양도세 완화 등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공급 분야에서는 인허가와 착공 지연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 대통령은 3기 신도시를 비롯해 이미 발표된 공급지의 착공이 늦어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통상 60개월가량 걸리는 행정 절차를 절반 이하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재개발·재건축에 대해서는 공급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비사업 이후 주거 환경은 개선되지만 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이 지역을 떠나고, 사업 구조에 따라 전체 가구 수가 크게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현장에서는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도심 공급이 수도권 주택 부족을 해소할 핵심 수단이라는 반론이 나왔다. 이주비 대출 규제로 조합원들이 높은 금융 비용을 부담하고 사업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비강남권과 실거주 조합원에게는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됐다.
비아파트 공급 확대와 관련해서도 규제 완화와 안전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빌라와 다세대주택, 주거용 오피스텔을 주택 수 산정에서 일부 제외해 공급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문제를 막기 위한 보증보험 개선, 임대인 정보 공개, 주거 품질 기준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부동산 연속 토론회를 마무리한 뒤 늦어도 다음 달 초 세제 개편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대토론회가 단순한 의견 청취 행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는 집값 안정과 투기 억제뿐 아니라 거래 정상화와 실수요자 보호를 정책 목표에 함께 반영하고, 규제 강화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줄일 구체적인 예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보유 부담을 높이면 투기 수요를 억제할 수 있지만 매물이 잠기거나 임대료가 오를 수 있고, 거래세와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 거래가 살아날 수 있지만 집값 상승 기대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정책의 성패는 규제를 강화할 것인지 완화할 것인지의 양자택일보다 적용 대상을 얼마나 세밀하게 구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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