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가족과 친구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던 전속 설계사의 영업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설계사가 직접 고객을 찾아다니는 대신 보험사가 상담할 고객 명단을 제공하는 ‘DB(고객 데이터베이스) 전속조직’이 잇따라 등장하면서다.
지인 영업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시도지만, 배경에는 보다 현실적인 채널 전략이 깔려 있다. 높은 수수료와 다양한 상품 비교를 앞세워 몸집을 키운 법인보험대리점(GA)에 맞서 원수사들이 설계사를 붙잡을 새로운 유인책을 꺼내 든 것이다.
하나손보 이어 삼성화재도…고객 쥐어주는 전속조직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하나손해보험은 최근 고객 DB를 기반으로 영업하는 전속 대면조직을 출범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그동안 전속 텔레마케팅(TM) 채널을 중심으로 영업해 온 하나손보는 올해 초 전속영업추진실을 신설한 데 이어 회사 내부에 별도 조직을 마련했다. 회사가 확보한 고객 DB를 설계사에게 제공하고 이를 대면 상담과 장기보험 판매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초기 조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운영 성과에 따라 주요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면채널 중심의 판매구조를 보완하고 장기보험을 판매할 대면 기반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삼성화재도 지난 6월 수도권 2곳과 대전·부산 각 1곳 등 전국 4곳에 고객 DB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TC(Total Consultant)지점’을 열었다.
TC지점에 등록한 설계사에게는 1년 차 월 30건, 2년 차 월 20건, 3년 차 월 10건씩 3년 동안 총 720건의 고객 DB가 제공된다. 신규 고객 발굴 부담을 덜고 상담과 보장 분석에 집중하도록 한 구조다. DB 활용법과 상담 기법을 다루는 교육 및 현장 코칭도 지원한다.
삼성화재는 과거에도 전화 상담과 대면 영업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조직을 운영했다. 다만 안정적인 DB 확보가 쉽지 않아 조직 확대에 한계가 있었고 최근 DB 수급 여건이 나아지면서 TC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다시 꾸렸다.
삼성화재는 신규 설계사의 정착을 돕는 별도 채널을 추가한 반면 하나손보는 비대면 중심의 판매구조를 보완할 대면 영업 기반을 마련했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고객 DB로 전속채널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방향은 같다.
수수료 대신 ‘팔 고객’…GA 쏠림 막을 새 카드
보험사들이 고객 DB까지 제공하고 나선 것은 설계사를 모집하는 것만큼 조직에 정착시키는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기존 고객 기반이 없는 신입 설계사는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 가까운 관계부터 영업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지인 영업이 소진된 뒤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득이 줄고 결국 조직을 떠나는 흐름이 반복돼 왔다.
지난해 전속 설계사의 1인당 월평균 소득은 329만원으로 전년보다 줄었다. 1년 정착률도 51.4%에 머물러 설계사의 절반가량이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반면 GA는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비교해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과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를 앞세워 설계사를 빠르게 끌어모았다. 원수사 입장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수료 경쟁에 뛰어들 경우 모집비용 부담은 커지고 판매 현장의 주도권도 외부 채널에 내줄 수 있다.
이에 보험사들은 현금성 지원 대신 ‘상담할 고객’이라는 실질적인 영업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GA가 상품 선택권과 수수료를 무기로 삼는다면 원수사는 고객 DB와 교육·관리 체계를 차별점으로 내세우는 셈이다.
보험사 홈페이지와 앱, 다이렉트채널 등을 통해 유입됐지만 온라인 가입으로 이어지지 않은 잠재 고객을 대면 상담으로 연결하면 디지털채널과 전속조직의 결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건강·간병보험 등 장기보험은 상품 구조가 복잡해 설계사의 설명과 보장 분석이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성패는 DB의 양보다 질에 달려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거나 가입 의사가 낮은 고객이 반복적으로 배정되면 DB는 지원책이 아니라 또 다른 실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적법한 정보 활용 동의와 상담 이력 관리도 전제돼야 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GA가 높은 수수료와 상품 선택권으로 설계사를 끌어모았다면 원수사는 고객 DB를 통해 안정적인 영업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결국 상담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꾸준히 확보하고 이를 실제 계약과 설계사 정착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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