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계 "방향성 공감하지만…인력·조직 역량 강화부터"
"정치권 자리로 전락 될수도…예산 확보·국립 위상 저하 우려"
(전남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운영권을 특별시에 넘겨달라고 건의하면서 국가 문화기관 운영 방식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단순히 운영 주체를 바꾸는 것을 넘어 20년 가까이 이어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을 국가 주도에서 지역 주도로 전환하자는 의미라는 평가도 있지만 국립 기관의 위상, 예산 확보, 독립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 시장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후 이어진 오찬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ACC 운영권을 특별시에게 이관해달라고 건의했다.
이 대통령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에 대해 거론하자 민 시장은 "ACC 건물 하나 세우고 끝날 일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문화도시로 우뚝 서야 한다"라며 "비용은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은 지역이 맡아보겠다"라고 말했다.
문화 역량을 지방에 배치해 지역 균형 발전을 추진하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 완성을 위해, 사업의 한 축인 ACC 운영을 지역에서 직접 하며 도시 전체의 문화생태계를 조성해나가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ACC가 2015년 개관 이후 아시아 문화 교류와 창·제작 사업을 활발하게 해왔지만, 지역 예술인 참여나 지역 문화기관과의 연계가 부족하고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지역 주요 예술 행사와의 시너지도 크지 않다는 지적이 지속해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45년간 지역에서 연극배우이자 창작자로 활동해온 김진호 전문예술극단 예인방 이사장은 "전당 운영권을 넘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본래의 철학으로 되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국가가 공간을 만들 수는 있지만 작품을 만들 수는 없다. 문화도시의 품격은 결국 지역 예술인과 시민이 만든 콘텐츠가 결정한다"며 "ACC가 그동안 지역 문화와 함께하지 못했는데 통합특별시가 운영한다면 지역의 대표성 있는 작품을 키우고 세계적으로 활성화하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방향성은 공감하지만 전문가·전문 조직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권을 가져오는 것은 성급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류재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지원포럼 회장은 "운영권 이양의 방향성은 옳지만, 즉각적인 전면 이관은 위험하다. 제도 보완과 역량 강화를 하면서 단계적으로 운영권을 넘겨받아야 한다"며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류 회장은 "통합특별시 내에 전문성을 갖춘 전담 기구를 갖추고 창·제작과 기획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 확보 방안도 필요하다"며 "정치권의 자리 나누기로 전락하지 않고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시민 사회 논의·조직 진단·전문가 토론 등 숙의를 거쳐야 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동안 ACC는 대규모 예산 지속 투입 필요성, 국제적 외교·문화 거점이라는 국책 사업 목적 달성과 안정적 운영 담보를 위해 지자체가 아닌 문체부 직접 운영을 지역에서도 원했는데 이를 갑작스레 바꿔 특별시가 이를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시각도 있다.
지자체가 운영권을 가져오는 것이 ACC 위상과 성장에 도움이 될지, 운영과 예산 주체 분리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2015년 개관 당시에도 문체부 직접 운영과 법인 및 기타 기관 위탁 운영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사업 취지와 예산 지원 안정성 유지 등을 이유로 문체부 직접 운영 방식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ACC는 부지 면적만 약 16만㎡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공 복합문화시설로, 올해 기준 454명(공무원 118명·공무직 336명)의 상근 인력을 운영 중이며 연 635억원의 운영 예산이 투입됐다.
이론적으로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을 일부 개정하면 지방정부로의 운영권 이관이 가능하고 국가가 예산을 지속적으로 부담하면 '국립' 지위는 유지될 수 있지만, 예산을 따오는 기관과 쓰는 기관이 따로인 상황에서 안정적인 예산 확보를 담보하기 어렵고 법 개정도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체부는 이와 관련해 본부 차원에서 법령과 전환 사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지역에서 정책이나 전문가 운영 역량이 갖춰지지 않은 채 지자체가 운영을 주도하면 인력이나 사업 운영에 지방 정치·행정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무용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남광주시가 ACC와 적극 협조하고 연계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지만 운영 자체를 지자체가 하게 되면 오히려 지역 이해관계에 좌우될 수 있고 전문성에도 한계가 올 수 있다"고 "국립 기관이라는 위상 자체가 낮아지고 창·제작 작품의 질과 국제 교류 성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교수는 "국가든 지자체든 경직된 운영시스템을 보다 창의적으로 하도록 전문가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글로컬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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