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123협정'으로 이란핵 견제구…'중동 라이벌' 사우디에 핵기술 승인
미국 주도 질서 유지 포석…"이스라엘·이란 분노 촉발"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우라늄 농축을 잠재적으로 허용하는 원자력 협정을 선물로 안겼다.
미국이 이란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며 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역내 라이벌인 사우디에는 사실상 핵보유로 이어질 수도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이번 원자력 협정이 중동 전쟁이 격화하는 와중에 사우디를 미국 주도 질서에 묶어두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원자로 건설은 10년 이상 소요되고, 이후에도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사용하게 되는 만큼 양국 간 안보 및 상업적 유대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란과 전쟁이 격화하면서 중동 내 미국의 동맹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불만을 표출해왔다.
이란의 보복 공격 표적이 된 데다 중동 산유국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수출길이 막혀 경제적 타격도 받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을 유지해온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한때 미군 항공기의 사우디 영공 사용을 제한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이런 시기에 미국이 원자력 협정을 승인한 것은 사우디를 달래고 양국 간 관계를 강화하는 조치일 수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이란 전문가 디나 에스판디아리는 이번 협정과 관련해 "사우디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극심한 불만을 품고 있는 시점에 주어진 '당근'"이라고 평했다.
그는 "미국이 한발 양보한 것"이라며 "최근 미국이 사우디에 양보한 적은 사실상 거의 없으며, 적어도 사우디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원자력 협정은 빈 살만 왕세자의 성과로도 꼽힌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의존형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해 원자력 협정 체결에 공을 들여왔다.
특히 그는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한다면 사우디도 핵을 보유할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이란을 경계해왔다.
이란이 핵 보유 문턱까지 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사우디는 사실상 미국의 승인 속에 핵 잠재력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 정책센터의 카렌 영 선임연구원은 "이번 협정은 사우디에는 역내 위상을 높이고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할 기회"라고 분석했다.
그는 사우디로서는 "이란의 역량을 따라잡거나 능가할 수 있는 능력을 미국의 승인 아래 이뤄냈다고 자랑할 기회"이며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이란 전쟁 와중에 "사우디를 미국의 편으로 더 끌어들이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협정이 중동 지역에서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미국은 그간 핵 비확산을 기조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도 높은 사찰을 전제로만 예외적으로 우라늄 농축을 허용해왔다.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와 맺은 원자력 협정에도 IAEA의 엄격한 핵사찰을 받아들이고 자체 핵연료 생산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른바 핵 비확산의 '골드 스탠더드'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우디와 협정에서는 이런 골드 스탠더드가 생략된 '파격적' 승인인 것으로 보인다.
에스판디아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시점에 사실상 "수십 년에 걸쳐 유지해온 미국의 핵 비확산 기조를 뒤집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영 연구원도 중동 전역에서 핵기술 확보 경쟁을 촉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쿠웨이트대의 역사학 조교수인 바데르 알사이프는 이번 협정이 역내 권력 균형이 이미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노를 촉발하고"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e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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