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그 바다]
여러분, 여름 하면 어디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무래도 바다겠죠. 그중에서도 한국인이라면 거의 자동으로 떠오르는 곳이 하나 있습니다. 파도는 시원하게 철썩이고, 백사장에는 빨강·파랑·노랑 파라솔이 발 디딜 틈 없이 펼쳐져 있던 곳. 네, 바로 부산 '해운대'입니다. 특히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여름휴가 좀 다녀봤다는 분들에게 해운대 여행은 온 가족이 손꼽아 기다리던 여름 최대 행사였죠. 자 오늘 르데스크 '4인용 책상'에서는 여름휴가 특집 첫 번째 이야기로 대한민국 국민 피서지 해운대가 오늘날 어떻게 세계적인 휴양지로 변신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신라의 천재가 반하고, 기네스북이 증명한 바다]
그런데 해운대라는 이름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여러분 혹시 한국사 배울 때 신라시대 학자 최치원 기억나세요? '시무 10여 조'를 써서 올렸다는? 그 최치원 선생이 이 해운대(海雲臺)의 절경에 반해서 바위에다가 본인의 자(字)인 '해운'을 새겼다고 해요. 그 뒤로 이 일대가 해운대라고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운대가 지금처럼 전국에서 피서객이 몰리는 관광지가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에요. 경제 성장 이후에 자가용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이제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게 됐거든요. 그러면서 1994년 해운대가 관광특구로 지정되고요. 2000년대 중·후반에는 여름 극성수기 주말 하루에만 100만명의 피서객이 몰려드는 최대 관광지가 됩니다. 100만명이면 수원이나 고양 같은 대도시 인구 전체가 해변 하나에 모인 거예요. '물 반 사람 반'이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죠. 2008년 8월에는 백사장 1.5km 구간에 무려 7937개의 파라솔이 설치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파라솔이 많은 해수욕장'으로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바다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해운대'에서 펼쳐진 거죠.
["여름 한 철 치킨 팔아 1년을 먹고 산다?"]
사람이 100만명씩이나 모이니 장사도 어마어마하게 잘됐겠죠. 당시엔 이런 말까지 있었습니다. "해운대에서 여름 한 철 장사하면 그걸로 1년은 먹고산다." 이게 과장이 아닌게요. 실제로 해운대 인근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치킨집 매출이요. 7월 말부터 8월 초만 되면 전국 매출 상위권을 힙쓸었습니다. 편의점에서는 얼음컵과 생수, 맥주 매출이 평소보다 열 배, 스무 배 가까이 뛰기도 했고요.
이때 해운대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넓은 백사장에서 사람들이 치킨을 시켜 먹었는데, 그 배달은 어떻게 했을까요?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공유할 수도 없고 수영한다고 자리를 비울 때도 있었는데. 해운대에는 아주 간단하고도 기발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사장님, 여기 반반 무 많이요. 어디냐고요? 여기 파라솔 350번" 수천개의 파라솔마다 번호가 붙어있어서 번호를 말하면 배달원이 귀신처럼 딱 찾아오는 시스템이었던 거죠. 이 독특한 '해변 배달 문화'는 해외 외신들까지 다룰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40·50의 뇌리에 박힌 날 것 그대로의 추억들]
요거 아마 40대 이상이시라면 공감하실만한 에피소드들이 정말 많은데요. 우선 이때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보니 안내방송도 엄청 나왔습니다. "아아, 서울에서 온 세 살 김OO, 김OO 어린이의 부모님을 찾습니다." 이렇게 사람 찾는다는 안내방송이 하루종일 울려퍼졌어요. 오죽하면 그때 해운대 최고 히트곡은 가요가 아니라 '미아 찾기 방송'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람이 백만명씩이나 모이다보니 애기들은 금방 길 잃어버리고, 울면서 돌아다니다 보면 주변에서 부모님 막 찾아주고 그랬죠. 자 그리고 우리 20대 청춘들은 해운대에서 뭘 했을까요? 그쵸. 새까맣게 탄 피부에 형광색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헌팅 기회를 노렸습니다. 막 마음에 드는 팀 보이면 괜히 그 옆에 가서 공놀이 하고. 그리고 꼭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바가지요금 피하겠다고 아이스박스 이따만한거 다 챙겨다니시곤 했죠. 안에 막 수박 음료수 그런 거 들어있고요. 물놀이가 끝나면 몸에 모래 묻은 채로 달달 떨면서 컵라면을 먹는데 그게 어쩜 그렇게까지 맛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운대에는 우리 모두의 추억 한 장면씩이 차곡차곡 쌓여 있죠.
[세계가 열광하는 글로벌 복합 휴양지]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피서 문화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찬 바다에서 고생하는 물놀이를 잘 안 하려고 하잖아요. 그리고 최근에는 광안리 같은 다른 해변들이 엄청 뜨기도 했고요. 해운대는 이제 바다 하나에만 의존하던 관광지에서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복합 휴양지로 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이제 스카이라인부터가 달라졌죠. 백사장 끝에는 무려 101층 높이의 초고층 '엘시티(LCT)'가 들어섰고요. 시그니엘과 그랜드 조선, 파라다이스 같은 고급 호텔들이 해변을 따라 자리 잡았습니다. 고층 호텔 객실에서 바다를 쫙 내려다볼 수 있는 '호캉스'의 성지가 된 거죠.
또 하나의 성공 사례는 해운대 블루라인파크(해변열차&스카이캡슐)입니다. 폐선된 동해남부선 철길을 활용해 만든 건데요. 특히 알록달록한 캡슐이 바다 옆 철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엄청 예쁘잖아요. 이 시설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사진도 잘 나오고, 바다도 편하게 볼 수 있고, 힘들게 걸을 필요도 없으니 관광객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죠. 특히 대만과 홍콩,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서요. 2023년에는 블루라인파크를 이용한 외국인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멋진 호텔도 많고, 볼거리도 많고, 해운대에 이제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모이고 있는 겁니다. 진짜 요즘 해운대 백사장 걷다보면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다 들리거든요. 미아 찾기 방송을 하던 국민 피서지가 어느새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국제적인 휴양지로 변한 것이죠.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K-휴양지 끝판왕]
한때 7000개가 넘는 파라솔 아래에서 온 가족이 치킨을 뜯던 국민 피서지 해운대. 이제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낭만이 흐르고,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을 타기 위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줄을 서는 글로벌 휴양지로 변신했습니다. 오래된 추억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곳. 이것이 우리가 여름만 되면 다시 해운대를 떠올리는 이유 아닐까요? 올여름 해운대를 찾게 되신다면요. 40여 년 동안 국민 피서지에서 세계적인 휴양지로 변해 온 해운대의 풍경도 천천히 둘러보시고요. 여행의 마지막에는 싱싱한 회 한 점에 시원한 대선소주 한잔 기울이며, 여러분만의 새로운 해운대 추억도 남겨보시기 바랍니다. 자, 여름휴가 특집 2탄에서는 또 어떤 휴양지가 우리의 추억과 여행 욕구를 자극할까요?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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