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7월 22일 15시에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TV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검찰이 적발한 정유 4사의 대규모 담합 의혹은 일부 임직원의 일탈을 넘어 국내 정유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시장을 사실상 독점한 과점 체제와 폐쇄적인 유통망이 결합되면서 경쟁은 사라지고 가격 동조화가 일상화됐다는 지적이다. 서로를 견제해야 할 사업자들이 경쟁 대신 유사한 가격 흐름을 유지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검찰에 따르면 시장점유율 1·2위인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가 가격 인상을 주도했고, GS칼텍스와 S-OIL은 이를 뒤따르는 형태의 '의식적 병행행위'를 지속했다.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 간 담합 규모만 14조2000억원으로 추산됐으며, GS칼텍스와 S-OIL의 가격 동조 효과까지 포함하면 경쟁 제한 규모는 2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담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배경에는 국내 정유시장의 과점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국내 정유시장은 상위 4개사가 시장점유율 98.6%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구조다. 정유업은 국제유가 영향을 크게 받는 산업이라는 특성상 가격이 일정 부분 비슷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경쟁 약화와 결합되면서 가격 경쟁 자체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공급가격은 빠르게 인상하지만, 유가가 하락할 때는 인하 속도가 현저히 느린 이른바 '비대칭적 가격 결정' 현상이 반복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 수사는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제시했다. 미국·이란 간 군사 충돌 당시 국내 정유사들은 이미 상당량의 원유를 기존 가격으로 확보해 둔 상태였음에도 공급가격을 이례적인 수준으로 일제히 인상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원가 부담보다 시장 가격을 먼저 끌어올렸다는 의심을 받는 대목이다.
가격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폐쇄적 유통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국내 자영주유소 상당수는 특정 정유사와 체결한 전량구매계약에 따라 해당 회사 제품만 공급받을 수 있다. 다른 정유사 제품은 물론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상표 석유제품이나 전자상거래를 통한 공급도 사실상 차단된다. 결국 후발 업체가 공급가격을 낮춰도 주유소를 확보하기 어렵고, 기존 사업자 역시 가격을 인하해 시장을 확대할 유인이 크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정유사가 공급가격을 크게 낮추더라도 기존 주유소들이 계약으로 묶여 있어 다른 회사로 이동하기 어렵다"며 "가격 경쟁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실익 자체가 크지 않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유사들은 유통망 확보를 위한 공격적인 가격 경쟁보다 기존 거래선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가 가격 경쟁 없이 굳어지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법적 사각지대도 가격 동조화를 고착시키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검찰이 지목한 GS칼텍스와 S-OIL의 '의식적 병행행위'는 경쟁사의 가격을 의식해 동일한 방향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사전에 가격을 맞추기로 한 명시적 합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현행법상 형사처벌은 어렵다. 과점 시장에서는 경쟁사의 가격 변화를 참고해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고 주장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가격 동조가 반복돼도 이를 제재하기 쉽지 않은 구조가 사실상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내 정유산업의 수직계열화 구조 역시 담합 의혹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보고 있다.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대표는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부터 정제, 석유제품 판매까지 정유사가 전 과정을 수행하는 구조인데 이런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며 "일본처럼 석유제품을 수입하거나 유통하는 다양한 사업자가 존재하는 시장과 달리 국내는 4개 정유사가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어 담합 의혹이 반복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담합 적발을 넘어 국내 정유시장의 경쟁 구조와 유통 체계 전반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격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에서는 소비자 부담이 구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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