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국제유가와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함께 뛰는 가운데 국내 에너지·화학업계 손익은 엇갈릴 전망이다. 중동과 러시아 정제설비 차질로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공급이 빠듯해져 정유업계는 높은 수출 마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석유화학 분야는 제품값과 함께 원료인 납사 가격도 급등, 업황 회복으로 단정짓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 강세 보이는 글로벌 정제마진…산업계 파장 ‘촉각’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외신 등에 따르면 중동과 러시아 정제설비 가동 차질이 글로벌 석유제품 수급을 압박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 주요 정유시설 일부가 멈추거나 가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 여파로 정제량을 줄이고 디젤 수출을 통제 중이다. 중국과 아시아 정유사들도 원유 조달 차질로 가동률을 낮췄다.
IEA는 7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지난달 글로벌 정제 처리량이 전달보다 하루 150만배럴 증가했지만 전년 동월보다는 600만배럴 적었다고 밝혔다. 또 올해 연간 정제 처리량도 하루 24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유 공급은 일부 회복됐지만 이를 휘발유·경유·항공유로 바꾸는 정제설비가 충분히 돌아가지 못하며 제품 재고가 줄어들었다.
이같은 병목은 정제마진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미국 3-2-1 정제마진은 지난주 후반 배럴당 61.9달러에서 69.5달러로 12%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 정유설비 가동률이 96.2%에 달했는데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시아 평균 복합정제마진도 전주보다 8.8달러 오른 43.1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아시아 경유 마진은 52.4달러에서 66.7달러로 27% 뛰었다.
미국 휘발유 재고는 계절 기준 2012년 이후 가장 낮으며 경유 재고도 최근 20여년만의 저점에서 가까스로 반등한 수준이다. 미국의 원유·석유제품 주간 수출은 지난 4월 하루 1420만배럴로 정점을 찍은 뒤 최근 1070만배럴까지 줄었다.
원유 가격도 다시 불안정한 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과 이란 휴전 협상 기대가 가격 상승 폭을 제한했지만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 해상 봉쇄 위협 등이 여전히 불쏘시개로 남아 있다.
국내에서는 SK에너지와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이 수출 채산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중동 정유시설 제품 수출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높은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는 국내 정유사 공급 가치가 커져서다. 다만 실제 개선 폭은 원유 도입 조건과 수출 비중, 고도화설비 가동률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란 분석이다.
윤활기유를 함께 생산하는 에쓰오일과 SK그룹은 수혜 범위가 더 넓어진다. 경유 마진이 오르면 정유사들이 경유 증산 과정에서 윤활기유 생산이 줄어들 수 있다. 에쓰오일은 울산에 하루 4만4700배럴 규모 윤활기유 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SK엔무브도 울산과 스페인 카르타헤나, 인도네시아 두마이 생산망에서 그룹Ⅲ 윤활기유를 공급한다.
다만 정제마진 상승이 국내 정유사 이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정유사 주유소·대리점 공급가에 상한을 두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 중이다. 아울러 이에 따른 손실 보전 제도도 마련했지만 원가 산정과 적정 마진, 정산 범위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 석화업계, 원료가 인상 따른 셈법 복잡…향후 추이 주목
석유화학업계 사정은 더 복잡하다. 지난주 납사 가격은 톤당 801달러로 9.5% 올랐다. 같은 기간 에틸렌은 9.9%, 프로필렌은 3.9%, 벤젠은 9.9%, 스티렌모노머(SM)는 10.6% 상승했다.
선형저밀도폴리에틸렌(LLDPE)과 폴리프로필렌(PP) 상승률은 각각 6.0%, 5.6%로 납사 상승률에 못 미쳤다. 부타디엔과 모노에틸렌글리콜(MEG)은 각각 14.0%, 12.2% 올랐지만 제품별 온도 차가 컸다.
이번 가격 반등 의미 역시 다각도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중국 다운스트림 가동률과 재고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료와 중간재 가격만 오르면 국내 업체가 최종 제품 판가를 올리기 어렵다. 범용 제품 비중과 중국 노출도가 높은 업체일수록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처럼 납사를 투입해 기초유분과 합성수지를 생산하는 입장에서는 제품 가격보다 납사 대비 스프레드가 중요하다. 가격 상승기에 재고평가이익이나 래깅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고가 원료 본격 투입 후에도 제품값을 올리지 못하면 수익성이 다시 나빠진다.
금호석유화학 역시 부타디엔 급등을 곧바로 호재로 보기는 어렵다. 지난주 원료인 부타디엔이 14% 오른 반면 합성고무 SBR 가격은 보합에 머물렀다. NCC 구조조정에 따른 부타디엔 공급 감소가 BR·SBR 판가 상승으로 이어지면 가격 전가력이 높아지나 당장은 원료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정유업계로서는 석유제품 공급난 지속, 국내 가격통제에 따른 손실 보전 여부 등이 하반기 실적을 좌우할 전망이다. 석유화학업계는 제품값 반등보다 납사 대비 스프레드와 중국 수요 회복이 먼저다. 같은 가격 상승 국면이라도 정유는 공급 부족 수혜를 누리지만 석유화학은 원가 부담을 동반한 ‘반쪽 반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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