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를 싣고 아시아로 향하던 유조선들이 방향을 틀며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 위협 영향력이 현실화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시장조사업체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해양정보업체 케이플러 등 자료를 인용해 21일(현지시간) 홍해 항구인 사우디 얀부항에서 원유 70만배럴을 싣고 인도 서해안으로 향하던 라이베리아 선적 소형 유조선 '로도스'가 수에즈 운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보도했다. 역시 인도로 향하던 유조선 '아마존' 또한 수에즈 운하로 향했다. 전날 홍해에서 사우디산 원유 200만배럴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신룽양' 또한 수에즈 운하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사우디 얀부항에서 원유를 싣고 아시아로 향하는 최단 경로는 홍해 남쪽 통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 아라비아해로 진출하는 것이다. 바브엘만데브 해협 인근에 위치한 예멘의 후티 반군이 이 해협 봉쇄를 선언하자 유조선들이 북쪽 통로인 수에즈 운하로 방향을 튼 것이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면 홍해를 빠져 나올 순 있지만 지중해를 거쳐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야 아시아로 진입이 가능해 기존 경로에 비해 최대 4주가 추가로 소요되고 운송 비용이 급증한다.
<로이터>는 해운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유사 현대오일뱅크도 21일 얀부항에서 선적한 원유를 수에즈 운하 및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이집트 수메드(SUMED) 송유관을 통해 한국으로 나를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을 물색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번 주 후반 얀부항에 도착한 원유를 실을 예정이었던 초대형 유조선 '뉴프라임호'도 홍해 진입 전 오만 해역에서 회항했다고 덧붙였다.
후티 반군은 21일 봉쇄를 통해 선박 6척을 회항시켰다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후티 반군은 전날 해운 회사들에 메일을 보내 사우디 항구에서 화물을 싣거나 내릴 경우 자신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예멘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원한 사우디와 반목해 온 후티 반군은 지난주 예맨 사나 국제공항 공격 배후로 사우디를 지목하고 20일 사우디 대상 홍해 봉쇄를 선언했다. 후티 반군은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이를 빌미로 이스라엘 연계 선박에 대한 홍해 봉쇄를 선언한 적 있는데, 당시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는 선박들도 공격 대상이 됐다.
후티 반군 관계자 3명은 21일 <AP> 통신에 바브엘만데브 해협 통항 방해를 몇 달간 계획해 왔고 이 계획엔 기뢰 및 폭발물을 실은 배 이용, 무인기(드론) 및 헬리콥터를 이용한 전투원들의 승선 조치 등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미국에 대한 이란의 협상력 강화를 위해 홍해 봉쇄를 계획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1일 홍해 폐쇄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가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해 폐쇄가 현재 진행 중이든 아니든 선박들이 이미 위협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로이터>를 보면 케이플러의 상품연구국장 맷 스미스는 "유조선들이 방향을 바꾸는 건 그들이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짚었다.
미국과 이란 충돌 격화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된 상황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막힐 경우 전세계 원유 공급이 또 다시 중대한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전세계 에너지 수송의 20%를 차지했던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폐쇄되면 원유 공급 7% 가량이 추가로 위협을 받게 된다.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석유공사 자료를 보면 사우디발 원유는 5월 한국 원유 전체 수입량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더구나 2월 말 이란 전쟁 발발 뒤 중동산 원유 공급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사우디산 원유 공급은 회복세를 보였다. 호르무즈 해협 폐쇄 영향이 본격화된 4월 중동 원유 수입량은 3248만배럴로 전달 5111만배럴에 비해 크게 줄고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기 쉽지 않은 쿠웨이트, 이라크 등으로부터의 공급은 급감하거나 끊기다시피 했다. 반면 사우디 원유 수입량은 4월 1595만배럴로 전달(2504만배럴)보다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중동 전체 공급량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고 5월엔 1884만배럴로 늘었다. 사우디는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홍해를 통한 원유 수출을 크게 늘렸다.
유가는 다시 흔들리고 있다. 국제유가 기준 브렌트유 9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21일 한 달여 만에 다시 90달러선을 넘어 거래를 마쳤다. 22일에도 상승세를 이어가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영국 시간(BST) 오전 8시25분 기준 전날보다 배럴당 2.41달러(2.65%) 오른 배럴당 93.42달러에 거래 중이다. 장중 한때 배럴당 93.55달러까지 올랐다. 유가는 미·이란 재충돌 이전인 이달 초엔 전쟁 이전 수준인 70달러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미군은 11일 연속 이란을 공습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미 동부시간 21일 오후 8시15분까지(이란 수도 테헤란 시간 22일 오전 3시45분) 75분간 이란 군사작전센터, 해상 역량, 항공기 격납고, 무인기 저장시설, 군 물류시설 등을 타격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상선 위협 역량을 약화했다고 밝혔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이날 테헤란에서 방공망 가동음이 들렸지만 당국자들에 따르면 실제 공격은 없었고 폭발음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달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뒤 테헤란 방공망이 가동된 건 두 번째다.
중재국들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수수료 징수를 협의할 열흘 휴전안을 제시했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분석가들은 미군 사망으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받는 보복 압력이 커지면서 협상이 쉽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싱크탱크 퀸시연구소 부소장 트리타 파르시는 알자지라에 군사 작전이 지속되는 한 이란이 협상에 복귀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그는 "군사 행동이나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를 진정으로 접어 두고 외교에 전념하기 전까진 외교가 성공하는 걸 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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