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 방산 수출, 원전과 에너지, 인공지능과 핵심광물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외교의 성격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 외교가 국가 간 관계 관리와 의전, 정무적 교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오늘날 재외공관은 현지 정부와의 협상을 넘어섰다. 우리 기업의 시장 진입을 지원하고, 공급망 이상 징후를 파악하며, 대규모 수주를 뒷받침하고, 전쟁과 재난 상황에서 재외국민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복합적인 전진기지가 됐다.
외교부도 이미 재외공관 경제 안보 담당관 회의를 운영하고, 공관에 현지 진출 기업 및 유관기관과의 협력과 기업 애로 해소를 주문하고 있다. 이에 아주경제는 국내외 공관장 현황을 통해 재외공관의 역할과 의미를 짚어본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 실용외교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 꺼내든 특임공관장 카드가 ‘외교의 다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22일 관가·외교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재외공관장 인사의 특징 중 하나로 특임공관장 강화를 꼽을 수 있다. 특임공관장은 대통령이 특별한 외교 업무를 맡기기 위해 현직 외교관이 아닌 별도 전문가를 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정부는 출범 후 30~40명의 특임공관장을 임명해 전략적인 외교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공적개발원조(ODA) 전문가로 손꼽히며 국제개발협력학회장을 역임한 손혁상 주파라과이대사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해외 무상원조를 전담하는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전직 수장이 외교 최일선의 공관장으로 나가는 것은 손 대사가 최초였다.
남미 정중앙에 위치한 내륙국 파라과이는 볼리비아, 콜롬비아, 페루와 함께 한국의 중남미 4대 중점 협력국으로 꼽힌다. 한국은 1991년 첫 지원을 시작해 2024년 기준 교육·보건 등 분야에 총 1억8229만 달러를 투입했다. 한국은 파라과이 정부의 행정 현대화와 디지털 접근성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과거처럼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한국이 가진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의료 기술 등과 파라과이가 지닌 다양한 발전 잠재력을 유기적으로 접목해 상생하는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재외국민의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지난 3월 ‘사막의 빛’ 작전을 수행했다. 이로 인해 중동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발이 묶였던 국민들은 군 수송기를 타고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시그너스’ 1대는 지난 3월 15일 한국인 204명과 외국 국적 가족 5명, 일본 국민 2명 등 총 211명을 태우고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했다. 14일 오전 한국에서 출발한 시그너스는 14일 오후(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도착했으며, 저녁에 탑승객들을 태우고 한국을 향해 출발했다.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사막의 빛’을 밝힐 수 있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인 강신철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와 외교부 본부 신속대응팀은 리야드에서 중동 내 체류 중인 국민의 안전한 귀국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정부는 ‘사막의 빛’ 작전을 위해 수송 경로상의 10여 개 국가에 영공 통과 협조를 구했다.
외교부는 지난 5월 실시한 제2회 특별성과 포상금 수여식에서 중동전쟁 발발 이후 현지에 고립된 우리 국민들의 대피와 귀국 지원에 기여한 중동 지역 13개 공관 직원 13명과 본부 해외위난대응과 직원 11명을 포상했다.
대상 공관은 △주사우디아라비아대사관 △주이스라엘 대사관 △주이라크대사관 △주레바논대사관 △주쿠웨이트대사관 △주바레인대사관 △주아랍에미리트(UAE)대사관 △주두바이총영사관 △주카타르대사관 △주투르크메니스탄대사관 △주요르단대사관 △주이집트대사관 △주오만대사관이었다. 외교부는 “폭격 등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현지에 발이 묶인 우리 국민 6600여명의 신속하고 안전한 대피와 귀국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경우도 공관장의 다변화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일본의 경우 대부분 외무성 직원 가운데 대사를 꼽지만, 직업 외교관 외에 각계 전문가와 타 부처 공무원이 퇴임 후 각국 대사로 임명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아라키 에이키치 전 일본은행 총재가 주미 대사를, 후루가키 데쓰로 NHK회장이 주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바 있다.
미국은 대사 임명 시 외무공무원 선발을 통과하고 국무부 근무경력을 쌓은 고위 외무공무원을 대상으로 선발하거나, 대통령에 의한 정치적 임명을 통해 이뤄진다. ‘어떤 개인도 정치 캠페인에 대한 재정적 기부를 이유로 대사직을 부여받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뒀다.
이제 ‘외교 전문성’의 정의는 새로 쓰여야 한다. 2026년 현재는 첨단 기술과 자본, 외교, 안보 등을 아우를 수 있는 ‘분야별 통찰력’이 중요하다.
민간의 유연함, 정무적 판단력, 각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성을 갖춘 특임공관장이 활약해야 대한민국의 실용외교가 전 세계 곳곳에 깊이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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